영국연금은 '당연한 권리', 한국연금은 '당첨 복권'

김성수 2025. 5. 2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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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이 곧 국격이다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학교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때,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내가 느끼는 영국과 한국의 노인연금에 대해 나누고 싶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 김성수
요즘 뜨거운 화제 중 하나는 바로 '연금'이다. 은퇴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연금이 단순한 제도를 넘어 삶의 마지막 장을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기준처럼 느껴진다. 특히, 한국 뉴스에 등장하는 노인 연금 기사들을 영국에서 접할 때면, 체감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기본'이 되는 영국의 연금

영국의 국민연금(State Pension)은 만 66세부터 받을 수 있으며,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면 수급자격이 주어진다. 35년 이상 가입하면 '풀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2025년 기준으로 주당 약 220파운드, 한 달(4.3주)로 따지면 약 946파운드, 즉 174만 원 정도다. 이 금액은 매년 물가 상승률에 맞춰 자동 조정되며, 별도 신청 없이 일정 연령이 되면 정부로부터 연금 관련 안내 편지가 도착한다. 마치 국가가 정중히 초대하는 듯한, 노후를 준비하라는 배려다.

대부분 영국 노인은 1인당 월 평균 174만 원 국민연금에 추가로 직장연금을 받게 된다. 그래서 부부가 다 생존한 경우 부부의 월 국민연금 수령액은 348만 원 정도 된다. 국민연금 자체는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영국에서는 직장연금 없이 국민연금만으로도 비교적 안정적 생활이 가능하다. (외식은 말고)식료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지역에 따라 60~66세 이상은 기차를 제외한 대중교통이 무료(북아일랜드는 기차도 무료)이거나 90% 이상 할인된다.

직장연금의 경우 배우자가 사망하면 남은 배우자가 일정 부분 (통상 망자 연금의 절반정도)의 연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정확한 지급 여부와 액수는 연금종류와 제도에 따라 다르다. 또 겨울에는 정부에서 난방비 지원까지 더해지며, 노년층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국가가 개입하는 구조다. 또 의료비는 전액 무료다. 그래서 국민연금에 추가로 직장연금까지 받으면 솔직히 풍족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다.

한국연금, '자격시험' 같은 느낌

반면, 한국의 국민연금은 만 63세부터 수급이 가능하고, 마찬가지로 10년 이상 납부해야 수령 자격이 생긴다. 조건만 놓고 보면 영국과 비슷하지만, 그 내면은 다르다. 영국연금이 '기본권'에 가깝다면, 한국연금은 '자격을 입증한 뒤에야 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한국 노인은 연금을 신청하기 위해 복잡한 서류 절차를 밟아야 하고, 공인인증서 등 디지털 장벽도 넘어서야 한다. 수급금액은 대부분 월 60~70만 원 수준이며, 여기에 기초연금(소득 하위 70% 대상) 약 30만 원이 추가로 지급될 수 있다. 결국, 총액이 100만 원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마저도 운 좋게 '복권 당첨' 되듯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연금 수급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국민연금 고갈론은 계절마다 돌아오는 장마 예보처럼 반복된다. 이쯤 되면 "그거 내가 받을 수는 있나?" 하는 회의감이 퍼진다.

티백 문화로 본 두 나라의 연금 철학

영국 노인들은 연금으로 마트에서 티백을 사서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긴다. 한국 노인들은 그 티백을 말려 다시 사용하는 것처럼, 연금을 아껴 쓰고 또 써야 할지도 모른다.

영국에서는 연금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로 인식되지만, 한국에서는 "받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누군가는 "영국 부모는 손주 생일 선물에 연금을 쓰고, 한국 부모는 자녀 결혼자금에 연금을 보탠다"고 말한다. 그만큼 한국 노인의 삶은 여전히 가족 중심, 희생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연금이 곧 국격이다

연금은 단순한 노후 생계비를 넘어, 국가가 개인에게 보내는 '존중의 표시'다. 한 사람의 일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계약서 같은 것이다. 영국에서는 그 계약서에 당당히 사인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 뒷면에 '지급조건 있음'이라는 주석이 붙은 듯한 인상을 준다.

노인을 '쓸모 다한 존재'로 보는지, '축적된 경험'으로 보는지에 따라 연금 제도의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국은 그 시선의 전환을 제도에 담았고, 한국은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비유하자면 영국 연금은 느리지만 꼭 오는 예의 바른 집배원 같다. 반면 한국 연금은 바쁘고 귀찮은 택배 기사 같다.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

연금, 숫자가 아닌 인간 존엄의 문제

연금은 단지 '돈'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에게 얼마나 미안한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늙어서까지 뭐 하나 못 받나' 싶은 한숨은, '그래도 나라가 날 기억하네'라는 위안으로 바뀔 수도 있다. 영국은 완벽하진 않지만, 국민을 '부담'이 아니라 '권리자'로 대접한다.

한국은 이제라도 연금 정책에 사람의 얼굴, 부모의 주름살, 고단한 노동의 기억을 좀 더 담아야 한다.

연금은 결국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인간 존엄의 문제다. 한국의 월 70만 원이든, 영국의 174만 원 더하기 직장연금이든,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연금이 얼마나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연금은 제도이기 전에 인간 존중이어야 한다. 영국은 그것을 깨달았고, 한국은 아직 고민 중이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는 복권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를 받는 것이구나" 하고 느끼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그 날을 조금 더 앞당겨 주기를 기대한다. 오는 6월 3일 대선이 너무도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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