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 같은 학교... 교직 경력 27년차도 전화 받기가 무섭다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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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일 제주도교육청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학생 가족의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제주 모 중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 ⓒ 연합뉴스 |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장해 달라는 당연한 요구가 요즘처럼 비루하게 느껴진 적은 없다. 지금 교사에겐 교육의 '의무'만 주어져 있을 뿐, '권리'를 요구할 힘조차 없다.
제주도에서 또 한 분의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육활동에 대한 학생 측 가족과의 갈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과거 학부모나 가족과의 통화는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한 '상담' 위주였지만, 시나브로 교육활동에 대한 '민원'으로 바뀌었고, 최근엔 '악성'이라는 수식어까지 달고 있다.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아 노트북 앞에 앉았다. 교직 경력이 27년이니, 교권이 추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참견 정도는 할 수 있는 깜냥은 된다고 감히 자신한다. 학부모와 맞부딪히는 최전선인 학생부장 업무를 작년에 이어 2년째 맡고 있다. 10년 전에도 학생부장이었는데, 돌고 돌아 다시 맡게 됐다.
민망한 고백이지만, 학생부장의 보임을 받았을 때부터 스스로 '교사'가 아니라 '행정 직원'이자 '콜센터 상담사'라 여기며 살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교칙 위반과 학교폭력 사안으로 생활지도하고 관련 서류를 챙기느라 수업 준비가 사치처럼 느껴진다. 교육청에서도 수업 시수를 줄여주는 등 이러한 학생부장의 고충을 배려하고 있다.
적어도 학생부장에겐 수업보다 사안 처리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특히 학교폭력 사안은 챙겨야 할 서류만 십여 종이 넘고, 보고 절차 또한 까다로워 연이어 발생하는 경우엔 말 그대로 '멘붕'이 온다. 사안 인지 후 48시간 이내에 서류를 갖춰 교육청에 보고해야 하므로, 이따금 점심 식사조차 거를 때도 있다.
그나마 서류 작업은 시간에 쫓길 뿐이어서 견딜 만하다. 관련된 아이들을 불러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진술서를 받는 것까지도 괜찮다. 일상 속 담임교사의 생활지도와 상담의 일환이라 여기면 그만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함부로 특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요즘 아이들의 고민을 파악하는 데 도움도 된다.
문제는 학부모와의 '밑도 끝도 없는' 통화다. 학교폭력 사안을 인지하면 곧장 보호자에 통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루라도 늦으면, 절차적인 하자를 문제 삼아 학교를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 매뉴얼'을 숙지하는 건, 학생부장을 비롯한 모든 교사의 책무다.
돌림 노래 같은 통화... '콜센터 상담사'가 된 교사의 현실
학부모에게 자녀가 학교폭력에 연루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순간 학생부장의 업무는 '콜센터 상담사'로 전환된다. 규정상 사안의 개괄적인 내용과 처리 절차만 안내하면 되지만, 그들은 웬만해선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항의와 하소연이 뒤섞인 그들의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들어야 했던 적도 있다.
"얼마나 힘드십니까." "저 역시 부모로서, 그 심정이 이해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학부모들에게 건네는 말은 이 세 가지가 사실상 전부다. 차마 매몰차게 끊질 못해 수화기를 댄 귀가 뜨거워진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 나중에 다시 통화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곤 한두 시간 뒤에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 온다.
양쪽 학부모로부터 돌림노래처럼 통화를 이어가다 보면 이따금 정신이 혼미해질 때도 있다. 시쳇말로 '진이 빠져'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축 처진다. 커피를 연거푸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시간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허겁지겁 교실로 뛰어가는 상황에서 수업이 제대로 될 리도 없다.
그들과의 통화가 여느 경우와 달리 유난히 고통스러운 이유가 있다. 그들의 질문에 응대하다 자칫 자녀를 가해자나 피해자로 지목하는 말이 튀어나올 수도 있어서다. 아무리 정황과 증거가 명확해도 교사는 가해와 피해를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럴 권한이 없을뿐더러 나중에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
교육청에 사안을 보고할 때도 피해자나 가해자 대신 '피해 관련자'와 '가해 관련자'로 표기한다. 언뜻 말장난 같지만, 사소한 학교폭력 사안에도 전문 변호사를 대동해 학교를 압박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아서다. 법률 지식을 앞세워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 교사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학생부장에게 사안이 접수된 순간부터 학급 담임교사는 공식적으로 손을 떼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행정적인 절차에서일 뿐 학부모의 민원 전화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반인 경우엔, 그들과의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온통 '살얼음판'이자 '지뢰밭'이다.
그렇다고 담임교사로서 그들에게 사안이 학생부로 이관되었으니, 그쪽과 통화하라고 무지를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간 또 다른 민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학부모는 학생부장과 학급 담임교사는 물론, 교감과 교장에까지 전화를 걸어 떼쓰듯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드물게는 오로지 자녀의 편에 서서 막말을 일삼는 학부모도 있지만, 대개는 선처와 관심을 바라는 하소연이다. 결코 '악성' 민원이라고 할 수 없는 통화다. 그런데도 힘들긴 매한가지다.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상담해야 할 시간에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부터가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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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온전히 수업 준비에만 매진할 수 있는 교사는 단 한 명도 없다. |
| ⓒ glenncarstenspeters on Unsplash |
학교의 일상 속에선 수업이 최고의 생활지도 방안이며,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최선의 대책이다. 민원 응대와 행정 업무로 인해 교사가 본연의 책무인 수업과 멀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당장 끊어내야 한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는 금언을 되새길 때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학교 울타리 밖에서 벌어지는 사안은 학교폭력으로 규정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아울러, 여러 학교와 엮여있는 경우, 모든 절차를 교육청 등에서 처리해야 하는 게 맞다. 학부모와의 통화도 버거운데, 사안 처리를 위해 경찰이나 다른 학교의 담당 교사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게 교사의 할 일인가 싶다.
얼마 전 학교폭력과 교칙 위반 사안이 겹쳤던 어느 날, 관련 학부모들과 연달아 세 시간 넘게 통화한 적이 있다. 그들에게 똑같은 답변을 반복해서 되뇌는 자신이 마치 자동응답기가 된 듯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순간, 이대로 잠든 뒤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슷한 고통을 겪었을 선생님을 떠올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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