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금융, 트로이의 목마가 되지 않으려면

문진수 2025. 5. 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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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시대, 금융의 역할 ⑤

기후 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하고 중차대한 사안이다. 기후 위기와 금융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돈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가에 따라 위기를 증폭시킬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글은‘기후 위기 시대, 금융이 수행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최근 '전환금융'이라는 낯선 단어가 등장해 회자하고 있다. 전환금융이란 중공업, 운송, 에너지, 농업 등 탄소집약적 산업의 탈탄소화를 지원하는 금융을 일컫는 용어다.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는 영역이 탄소중립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금융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 200여 개 금융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유엔 산하 '환경계획 금융 행동(UNEP FI)'은 기후·환경과 관련된 금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①지속가능금융(sustainable finance) : ESG 요소를 감안한 금융
②녹색금융(green finance) : 제반 환경적 요소를 감안한 금융
③기후금융(climate finance) : 기후변화 요소를 감안한 금융

①지속가능금융 중 측정 가능한 변화를 창출하려는 시도를 ④임팩트금융(impact finance)이라 부르며, 고탄소 발생 산업의 탈탄소화를 돕는 ⑤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은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 기준에 따라 각 금융의 활동 범주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 기후·환경 관련 금융의 활동 범주 Navigating Transition Finance : An Action List (2024.3 / CFA Institute), 기자 재작성
ⓒ 문진수
바깥쪽 큰 삼각형이 ①지속가능금융이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시장 원리를 통해 해결하려는 접근법을 일컫는 개념으로,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가 꼭짓점을 이루고 있다. 전통적인 금융이 재무적 요소만 중시하는 반면, 지속가능금융은 비재무적 요소까지 함께 고려한다는 특징이 있다.

연두색 삼각형이 ②녹색금융이다. 생물다양성 보존, 오염 방지, 기후변화 대응 등 환경과 관련된 제반 요소를 감안한 금융으로, 이중 기후에 특화된 영역(파란색 원)을 ③기후금융이라고 부른다. 녹색금융은 기후금융을 포괄한다.

빨간색 원이 ④임팩트금융 영역이다. 사회와 환경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유의미한 변화(impact)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지속가능금융이 ESG의 모든 요소가 담긴 그릇이라면, 임팩트금융은 '투자'라는 특정 방식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노란색 삼각형이 ⑤전환금융이다. 한 발은 녹색과 기후금융에, 다른 발은 임팩트금융에 걸쳐 있다. 녹색과 기후금융 요건에 충족하려면 환경적으로 무해(無害)한 사업이어야만 한다. 이에 비해 전환금융은 유해(有害)한 사업이어도 '긍정적인' 변화를 창출하는 일이면 수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전환금융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철강회사가 탄소중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자. 철강업은 석탄을 주 연료로 하고 있어 온실가스 감축이 힘든 대표적 산업이다. 이 회사가 탄소 배출을 감축하려면 전기나 수소로 에너지원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실행하려면 설비와 인프라 교체에 큰돈이 투입되어야 한다. 은행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예전에는 담보와 신용 점수를 보고 돈을 빌려주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금융배출량(financed emissions)을 따져봐야 한다. 잘못하면 '환경에 해를 끼치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나쁜 은행'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면 탄소집약 업종에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금융회사가 이를 회피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철강회사의 탄소 절감 프로젝트는 연기되거나 좌초될 수 있다. 이처럼 고탄소에서 저탄소로 넘어가기 위한 '전환기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전환금융이다.

고탄소 업종이라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일이라면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현재 전환금융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영국을 포함한 유럽연합(EU)이다. EU 집행위원회는 ⑤전환금융을 ①지속가능금융 범주에 포함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향후 10년간 20조 엔 규모의 전환채권(transition bond)을 발행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도 이 영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바라보고, 시장 선점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한 걸로 관찰된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향후 전환금융 시장은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환금융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오용(誤用)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OECD는 최근에 작성한 보고서(23.9)에서 '전환금융이 탄소 잠김을 유발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탄소 잠김(carbon lock-in)이란 화석 연료 기반의 생산 공정에 기대려는 관성으로 인해 신재생에너지 기술 도입이 지연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완성차를 만드는 회사가 탄소중립을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대수를 줄이고 전기 자동차 생산량을 늘리고자 해도 조립 공정을 바꾸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전환으로 가는 길목에서 공급(S)이 수요(D)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탄소 전환과 시장 대응 사이에 시차(time lag)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회사는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하이브리드(hybrid) 차량의 생산량을 늘려 이 공백을 메우고자 할 가능성이 크다.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에 투입된 자금은 온실가스 절감을 위한 전환금융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는 전기 자동차의 양산이 지연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뜻이다.

녹색전환연구소의 최기원 선임연구원은 전환금융과 녹색금융을 비교하며 '전환금융은 녹색금융 확장의 발판이 될 수도 있지만, 녹색금융을 축소할 가능성도 동시에 안고 있다'라고 말한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긍정과 부정 요소를 함께 지녔다는 것이다.
▲ 전환금융의 두 얼굴 전환금융과 녹색금융 : 구원투수인가, 새로운 워싱인가
ⓒ 최기원
한국적 맥락에서 전환금융 논의는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고탄소 집약 산업 비중이 높은 데다가 기후 감수성이 낮아 '전환금융이 전환워싱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전환워싱(transition washing)이란 겉으로는 저탄소 이행을 말하지만, 실제 탄소 절감을 실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제 막 시작된 이 흐름의 미래를 예측하는 건 섣부르다. 하지만 전환금융을 탄소 배출 억제를 위한 산업구조 전환의 수단이 아니라 돈벌이 '기회'로 생각하는 금융회사를 볼 때마다 현실 금융의 어두운 단면이 떠오른다. 금융 자본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사회와 자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존재'라는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녹색금융을 넘어선 전환금융의 부상(2024,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이니 'ESG시대의 필수 키워드, 전환금융(2025/뉴스코리아)' 같은 금융회사와 일부 언론의 선정적 표현들은 이런 우려를 키운다. 전환금융은 전환기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는 임시적 방편일 뿐, 녹색금융의 대체재가 아니다.

유럽연합이 전환금융을 다루는 방식은 투명하고 엄격하다. 촘촘하게 짜진 분류체계(taxonomy)에 맞춰 요건을 정하고 사후 검증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은 '기후 악당'으로 분류되는 나라다. 기후 전환을 위한 인프라가 취약하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런 토대 위에서 전환금융을 허술하게 다루면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고.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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