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소리 들은 노동자, 죽어서 돌아온 아빠... 이들이 글 쓴 이유
온라인에서 신간 소개를 보고 4월 30일 책을 구매했습니다. 하나의 사연을 읽을 때마다 슬픈 감정이 올라와 책을 덮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게 37편 사연을 읽고, 다시 읽으며 밑줄을 쳤습니다. 지난 5월 19일 SPC 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상반신이 끼여 숨졌다는 기사를 보고, 다시 이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기자말>
[전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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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책>이 엮은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 책 표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 누가 풀어 주나요. 직접 써서 알려야죠'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
| ⓒ 알라딘 |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는 앞서 <작은책>에 꾸준히 글을 보내온 노동자들의 기록 중 37편을 골라 엮은 책이다. 한 마디로 노동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오늘날 노동 현장에서 써내려 간 현실의 기록이다. 다음은 책 속 내용들을 옮긴 것이다(책은 전체 5장으로 구성돼 있다).
출근이 아닌 생존 대기의 불안
신주리씨는 로레알그룹의 하청업체인 삼경무역 소속이었다. 이름은 삼경무역, 일은 로레알그룹, 근무지는 면세점이었다. 세 조직 사이를 오가며, 신씨는 매일 '어디에 속해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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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고도, 복직도, 출근 시간도 모두 원청이 정했다.(자료사진) |
| ⓒ mikepetrucci on Unsplash |
해고도, 복직도, 출근 시간도 모두 원청이 정했다.
"하청업체 직원들은 영업점에 밉보일까, 로레알(원청)에 밉보일까, 회사에 밉보일까 여기저기 눈치 봐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160쪽)"
신주리씨는 결국 롯데백화점 앞에 섰다. 팻말에는 '집단교섭에 응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불안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아서였다.
말할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사람들의 고통
소부즈(가명)씨는 경기도 포천 한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과장에게 반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욕설을 듣고, 휴게시간이 아닌 때에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면 뺨을 맞았다. 과장은 쇠 연장을 던지기도 했다. 공장 내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과장은 사장의 처남이었다.
보다 못한 한국인 반장이 사장에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돌아온 건 반장의 해고였다. 이후에도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소부즈씨 역시 신고하지 않았다. 고용주의 서명이 없으면 다른 사업장으로 옮길 수 없었고, 재입국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장에게 밉보이면 그 사인을 못 받을까봐, 폭행을 당하고도 신고 안 합니다(262쪽)"
고용허가제(E-9 비자) 아래, 소부즈씨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자유롭게 말할 수도, 떠날 수도 없었다. 그는 고통을 기록하며 익명을 요청했다. 이 고발이 보복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피부색이 좀 검다고 모욕을 당하고 동물 취급을 받곤 했습니다. 그는 너희들은 동물 같다고 말했습니다. 원숭이처럼 보인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차별적 모욕은 물리적인 폭력이나 고문보다 더 나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260쪽, <나는 매일 밤 울었다> 중에서)
38일 만에 인정된 가장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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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측이 만든 카드뉴스 중 일부 |
| ⓒ 출판사 플레이아데스 |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가장 큰 문제는 안전관리자의 부재와 2인 1조 원칙 무시, 즉 그곳에 아빠(고 마채진씨) 혼자였다는 점이었다(59쪽)."
그는 두 딸의 아버지였다. 식사 자리에서 술 한잔할 때마다 딸들은 애정 어린 핀잔을 하곤 했다.
유족은 한 달이 지나도록 회사로부터 사과나 설명을 받지 못했다. 두 딸은 출근 시간과 점심 시간마다 한국건설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와 언론 보도가 이어진 끝에, 사망 38일 만에 한국건설은 사과문을 게시했다.
"안전관리자가 사고 현장에 있었다면", "2인 1조로 일을 했다면". 딸 마혜진씨는 여전히 그날을 되짚는다.
"지금쯤 아빠가 손녀를 안아 볼 수 있지 않았을까(63쪽)."
그 질문은 오늘도 가족 곁에 남아 있다.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공정한 조사와 함께 책임자를 합당하게 처벌해 달라 말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처럼 안전사고를 예방하자고 촉구하는 것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안전한 노동환경 구축'이라는 공공의 가치를 위해 다 같이 투쟁한다면 이 세상은 분명히 어제보다는 조금 더 안전해질 것이다. 늘 그렇듯, 누구나 그렇듯,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63~64쪽, <연대하는 세상으로> 중)
불안, 고통, 죽음이 없는 안전한 일터
욕설과 폭행, 갑질과 해고가 난무하는 노동 현장의 민낯.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에 실린 37개 사연은 이 현실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들이 기록하는 이유, "잊히지 않기 위해서."
그 기록 속엔 생산비 절감, 고강도 업무, 단축 공정 같은 익숙한 단어들이 반복된다. 책 속 '우리'는 묻는다. 왜 아직도 사람을 부품처럼 취급하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는 어디에 있는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일터'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써 내려간 이 기록은, 우리가 아직 잊지 않아야 할 지금, 우리와 함께하는 현실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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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책>가 엮은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 표지 노동자들이 쓴 사연은 현실의 고발이었다. |
| ⓒ 전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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