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100도로, 절경 뒤 아픈 역사... 그 길을 직접 걸었다
2025년 4월 24일부터 7일간 제주 트레킹한 기록입니다. <기자말>
[안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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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도로는 제주에서 516 도로와 함께 상징적인 도로이다. 제주시에서 출발한 두 도로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횡단하여 서귀포시에서 만난다. 서쪽에 위치한 1100도로는 정상부가 해발 1100미터여서 1100도로라고 별칭을 붙였는데 행정 명칭은 1137지방도로이다.
해발 760미터인 516도로 정상부는 한라산 성판악 코스의 시작점이어서 사람들이 많지만, 1100도로 마루금은 완성도 높은 하나의 뛰어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항상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그곳은 해발이 높은 만큼 계절에 따른 환경의 변화도 무쌍하다.
특히 겨울철에는 육지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광을 연출한다. 대설 후 제설작업이 끝나면 하얗게 눈 쌓인 도로 중간에 백지에 선을 그은 것처럼 2차선의 검은 도로가 나는데, 그 도로를 천천히 드라이브하면 환상적인 풍경을 접할 수 있다. 또한 1100도로 마루금에서 습지를 거쳐 한라산 정상부에 이르는 드넓은 상고대의 파노라마는 시선을 압도한다.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 외에도 외국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관광 명소이다.
이런 연유로 20여 년 전 모노레일을 설치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지만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유보되었다고 한다. 이후 2007년 실제로 한라산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고, 2009년에는 1100도로에 접한 고지습지가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람사르 습지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개발론자들의 끈질긴 유혹을 슬기롭게 극복한 결과이다.
우리가 몰랐던 역사, 50여년 전 군사정부 시절 강제노역으로 만들어진 길
하지만 1100도로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역사가 묻혀 있다. 516도로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고, 일제 때는 군수물자를 운반할 수 있는 임도로 확장을 하는 등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1100도로는 1968년 이전까지는 사람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험준한 산악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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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7일. 1100도로, 한라산 둘레길 들머리 |
| ⓒ 안호용 |
하지만 군사정권 초기까지 운영하다가 비인도적이라는 말이 많아 해산시켰다가 몇 년 후 은근슬쩍 단체를 새롭게 조직하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노동력이 절실했던 것이다. 폭력배들을 검거한 후 교화사업의 명목으로 노역을 하면 형벌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당국은 그들을 수자원개발과 대간척사업과 도로건설사업 등 사회 기반시설 공사 현장에 투입하여 일반 사병보다도 적은 임금으로 강제 노동을 시켰다. 그 조직은 삼청교육대의 원형이었다.
이렇게 해서 1968년부터 1100도로 건설사업에 국토건설단 소속 인원 500여 명이 여러 차례에 나누어 투입되었다. 그 무리는 서울과 부산 같은 육지 대도시에서 검거되어 온 부랑자들과 제주에서 검거한 폭력배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일당 300원 받았지만 식비로 200원을 공제당하였다. 숙소는 한라산 어승생 부근에 군용 천막을 급조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가장 험한 일에 투입되었다. 제멋대로 우거진 원시림지대에 들어가 나무를 벌목하고, 너덜과 바위를 제거하면서 길을 내는 기초 토목작업을 하였던 것이다. 거의가 인력이었다. 사망자 기록은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 시 77명이 사망한 것을 견주어보면, 여러 가지 공사 환경을 보았을 때 당시 상당한 재해가 발생하였을 것이라고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육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난공사였던 것이다. 더구나 당시는 포클레인 같은 건설기계도 없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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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7일. 돌오름길 |
| ⓒ 안호용 |
간혹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를 따라 500여 미터 정도 올라가면 한라산 둘레길 들머리가 나타난다. 이번 트레일은 돌오름길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거리는 총 12km이고, 해발 910m에서 시작해 해발 730m 지점인 서귀포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끝난다. 하향 트레일이어서 전반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거친 하천이 많아 결코 편하지 않다.
그날 날씨도 우리 편이었다. 제주 일기예보는 믿을 수 없이 항상 날씨는 불규칙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하늘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도반은 1100도로에서 깊은 숲속으로 홀린 듯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1100도로를 지나다니다 보면 빈틈이 보이지 않는 저 빼곡한 숲 안에서 과연 사람이 다닐 수 있는지 의심하고는 했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길은 있었다.
처음엔 항상 그렇듯 무언가 기대감을 가지고 숲속 깊이 발길을 옮겨 놓는다. 임도 같은 널찍한 숲길이 굽이쳐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천아 계곡에서 시작한 둘레길과 만난다. 작년 노로오름에 가면서 걸었던 그 길이 바로 이곳과 연결되는 것이다. 아직 중산간 지역처럼 나뭇잎이 무성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숲내음이 진하게 풍겨왔다. 분기점을 지나 남쪽을 향해 걸어가면 서어나무 군락지와 삼나무 조림지가 이어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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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7일. 돌오름으로 오르는 길 |
| ⓒ 안호용 |
이름 모름 나무들이 숨 막힐 것처럼 빼곡하여 나와 일행의 발을 무겁게 한다. 그렇게 선명하지 않는 길을 찾아 20여 분 오르면 돌오름 정상이 나오는데 숲이 너무 무성해서 조망은 제한적이었다. 좁은 허공에 한라산의 일부만 보일 뿐 대부분의 시야는 막혀있다. 조망이 좋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노고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았다.
돌오름에 올랐다 원위치로 돌아온 나와 일행은 다시 본래의 트레일 숲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숲은 깊어지고 방향 감각도 상실한다. 이제부터는 대부분 좁은 오솔길이 계속 이어진다. 단풍나무, 때죽나무, 참꽃나무 등이 자신의 이파리를 한껏 내밀기 시작하고, 상록활엽수인 굴거리나무가 촘촘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고, 고비와 조릿대가 그 사이 공백을 채우고 있다. 숲의 밀도감은 한층 배가 되고 시야가 좁아지면서 하늘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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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7일. 돌오름길을 막고 있는 계곡 하천 |
| ⓒ 안호용 |
집채만 한 현무암 덩어리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는데, 이곳 열하분출 지대의 바위는 크기도 크고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게 특징이다. 한때 불덩이였던 검은 현무암 덩어리는 괴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우거진 숲과 함께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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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7일. 열하분출지대, 용바위 군락 |
| ⓒ 안호용 |
숲에 취해 걷다가 다시 하천을 건너면 기괴한 판상절리 지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판상절리로 인해 형성된 복잡한 형태의 계곡이다. 판상절리는 조면현무암의 한 형태로 그와 상반된 절리가 주상절리이다. 중문 대포 해안에 형성된 상하로 기다란 바위가 주상절리의 표본이라면, 판상절리는 종잇장처럼 얇은 바위가 켜켜이 누워서 접착해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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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7일. 판상절리 하천 |
| ⓒ 안호용 |
드디어 질식할 것 같은 숲에서 빠져나와 다시 1100도로에 발을 내디뎠다. 이제서야 참았던 긴 숨을 토해낸다. 하늘은 그새 짙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 나와 일행은 100여 미터 떨어진 서귀포 자연휴양림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아마도 휴양림 주변 둘레길을 걸은 듯한 몇 사람이 정류장 박스 안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도 제주 길을 미친 듯이 걷는 뚜벅이들이었다.
오래전 친구들과 함께 1100도로를 지나갈 때 거린사슴 아래에 차를 세워두고 전망대에서 제주 남쪽 풍경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 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서귀포 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법정오름에 올라 한라산의 장대한 풍경을 보고 역시나 감탄사를 토해냈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나다니던 1100도로를 언젠부터인가 나는 두 발로 걷고 싶었다. 저 거대한 숲 속의 기운을 느끼며 숨을 죽이고 길은 지르밟고 싶었다. 도반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번 트레킹 여정에서 첫 번째로 염두에 둔 곳은 바로 이 트레일이었다. 그래서 한번쯤 숲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숲이 된 나를 발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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