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으로 살아남기] 혼자 온양온천 가는 70대 엄마를 따라가 봤습니다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송유정 기자]
"어머니~ 어디세요?"
"지하철이야. 온천 다녀오는 길이야."
"혼자서? 어느 온천요?"
"혼자지. 온양온천. 지하철이니까 나중에 전화할게~"
일흔을 넘긴 엄마가 가끔 혼자 온양온천에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는 젊었을 때부터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여행을 다녔고 늘 친구들과 함께였다. 그런데 60대에 들어서면서 이따금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열흘 남짓한 그리스 패키지여행뿐만 아니라 버스를 타고 혼자 천주교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대뜸 묻곤 했다.
"왜요?"
"혼자 다니는 게 편할 때가 있어. 어디서 뭘 먹을지 고민 안 해도 되고 상대 기분이 어떤지 신경 안 써도 되고. 홀가분하고 좋아."
온천 여행도 그런 맥락이었다. 문득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좀 녹이고 싶을 때, 집에만 있기는 따분할 때 엄마는 홀연히 집을 나섰단다. 간단한 간식과 단출한 목욕 가방을 챙겨 지하철을 타면,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여행이 시작됐다.
엄마의 여행이 문득 궁금했다. 혼자 다니는 길에는 어떤 재미와 의미가 있을까. 따라가 보기로 한 이유다. 나는 프리랜서 강사라 평일에 틈이 잘 안 나는데, 오후 3시 이전에 일정이 없던 5월의 어느 평일을 취재 일로 정했다.
엄마의 혼자 여행길을 동행 취재하다
엄마가 사는 수원역에서 수도권 전철 1호선 신창행을 타고 온양온천역까지 가는 데는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오고 가는 시간과 목욕 시간, 간단한 점심 식사 시간까지 계산하니 늦어도 9시 22분 전철을 타야 했다. 조금 서둘러야 했는데, 용인이 집인 나는 교통 정체를 만나는 바람에 어머니 댁 근처에서 만나기로 한 8시 40분을 10분이나 넘겨버렸다.
"너 오늘 바쁘다며. 부지런 떨면 제시간에 전철을 탈 수 있어."
"그렇게 뛰다가는 밤에 무릎 아프니 뛰지 말아요. 조금 늦어져도 괜찮으니 천천히 조심해서 갑시다."
나의 말에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70대 할머니가 그렇게 계단을 잘 뛰어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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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양온천역 개찰구 빨간 조끼를 입은 어르신들이 길 안내를 하고 있다. |
| ⓒ 송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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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가 싸온 과일 도시락과 커피 엄마 혼자 다니는 여행의 필수품은 간단한 간식과 커피다. |
| ⓒ 송유정 |
지갑을 두고 오는 바람에 교통비며 목욕비까지 엄마에게 신세를 진 나는 흡사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철마다 자식들을 이끌고 목욕탕을 찾아 한 명 한 명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끔히 때를 밀어주고 나면 그제야 자기 몸을 대충 씻었을 어머니가 떠올랐다.
"웬일이래? 어쩌면 이렇게 사람이 없대? 평소에는 평일에도 사람이 가득해서 자리 맡기도 어렵거든. 어떤 때는 어중간한 곳에 선 채로 때를 밀었다니까? 오늘은 내내 운이 좋다. 전철도 안 놓쳤지. 목욕탕에 사람도 이렇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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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양온천탕 목욕비 6000원이면 참 착한 가격이다. |
| ⓒ 송유정 |
모두가 혼자인 이곳에서 아무 위화감 없이 몸을 닦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 혼자일 때는 고요했을 엄마의 목욕 시간이 나로 인해 소란스러워졌다. 엄마는 쉴 새 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탕에서 몸을 불리고 난 후, 엄마는 자연스레 등을 내게 내밀었다.
"등 밀어 보는 거 너무 오랜만이다. 요즘은 서로 등 밀어달라는 부탁 안 하거든. 저번에 어떤 이가 먼저 얘기하길래 한 번 밀었던 적이 있지. 그이가 나보고 등이 젊다고 하대? 어쩜 이렇게 뽀얗고 애기 등 같냐고."
십수 년 전 닦아줄 때보다 한참이나 작아진 엄마의 등을 열심히 밀었다. 체구는 작아졌지만, 엄마의 등은 여전히 뽀얗고 매끈했다. 엄마는 목욕을 모두 마치고 나가기 직전에도 갑자기 또 가렵다며 한 번 더 밀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가려움을 남기고 가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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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양온천 시장 온천을 끝내면 다음 코스는 자연스럽게 시장 구경이다. |
| ⓒ 송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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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무보리비빔밥 온천을 끝내고 시장에서 먹는 열무보리비빔밥은 꿀맛이었다. |
| ⓒ 송유정 |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쌓이다 보면 인간관계가 하나씩 정리되기 마련이다. 가족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쁘다 보니 혼자 있는 '엄마'의 시간은 점차 늘어난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오는 것이다.
40대 후반인 나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내향인인 나에게는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자유'와 동의어로 느껴진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나도 지금의 엄마처럼 혼자 누릴 수 있는 다양한 놀이를 찾아 여행길에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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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양온천역 광장 넓은 광장에서는 이따금 어르신들의 춤사위가 펼쳐지기도 한단다. |
| ⓒ 송유정 |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임승차 덕분에 해소되는 노인들의 우울감과 무기력감, 다시 찾게 되는 활력, 그로 인해 절약되는 사회적 비용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에게 하루짜리 반짝 여행은 단순한 목욕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방구석에서 외로움에 몸서리치기보다는 당당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노후의 작은 사치. 그 정도는 국가가 보장해 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야? 어머. 빨리 가자. 너 늦을라."
또다시 엄마의 잰걸음을 따라가다 보니 1시 21분 급행열차에 늦지 않게 탑승할 수 있었다. 나 때문에 한순간도 여유로울 수 없던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가족들 챙기느라 잠시도 맘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을 엄마의 일생도 그러했을 것이다.
"옛날에 너를 포대기에 업고 네 아빠랑 외할머니랑 온양온천에 왔던 생각이 나네. 그때는 내가 네 외할머니를 모시고 왔는데, 이제 네가 엄마를 데리고 왔구나."
"오늘 상황을 봐서는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고 하기는 좀 그런데요? 내내 엄마가 이끄는 대로 뒤만 따라 다닌걸? 나 때문에 오히려 여유 있게 여행을 즐기지 못했네."
"아니야~. 친구랑 온 것 같고 재미있었어. 무엇 하나 놓친 건 없었잖아? 목욕도 했고 밥도 먹었고, 시간도 딱딱 맞았고."
"차가운 바람 불면 또 와요~"
어느새 나는 다음을 약속하고 있었다. 혼자만의 목욕 여행을 즐기는 엄마에게 어쩌면 나와의 갑작스러운 동행이 또 다른 사회 생활로 느껴져 피로감을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로 인해 문득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떠올리거나, 나에게 혼자 다니는 여행을 신나게 소개해 주는 엄마를 보며, 때로는 나와의 동행이 반가운 일탈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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