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사이서 올려다본 하늘…매 순간이 작품
![오정근은 유대인박물관에서 하늘을 보고 찍은 사진(아래 사진)으로 색면추상 ‘사이공간 베를린(유대인박물관)’을 그렸다. [사진 조은숙갤러리·오정근]](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26/joongang/20250526001103028wzaa.jpg)
매끈한 갈색 화면 한가운데 십자 모양으로 오톨도톨하게 물감을 쌓아 올렸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화면에서 가운데 튀어나온 면만이 서성이는 관객을 따라 빛나듯 일렁인다. 오정근(55)의 ‘사이공간 베를린(유대인 박물관)’이다. 세로 2m 캔버스에 묽게 희석한 물감을 매끈하게 바르고, 가운데는 0~1호 세필로 일일이 수놓듯 그렸다.
서울 청담동 조은숙 갤러리에서 여는 오정근 개인전 ‘사이공간(Zwischenraume)’에 신작 15점이 걸렸다. ‘사이공간’은 오정근이 2006년부터 일관하는 색면 추상 시리즈. 실은 하늘 그림이다. 19일 전시장에서 만난 오정근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하늘이고, 하늘엔 가장자리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그의 하늘은 건물과 건물의 사이공간이 만들어 내는 스카이라인이다.
다니엘 리베스킨트(79)가 설계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에는 49개의 사각기둥으로 이뤄진 ‘추방의 정원’이 있다. 기둥 사이사이를 서성이던 오정근이 올려다본 하늘은 네 개의 기둥에 가려져 십자가 모양이 됐다. 올리브나무 가지가 무성하다. 담아온 사진을 작업실에서 그릴 때는 하늘색도, 나뭇가지도 다 지운다. 붉은색을 채도를 달리 하며 인공미를 더한다.
자주 서성이는 그의 눈에 비친 하늘은 건물에 가려 때론 마름모꼴, 삼각형도 된다. 요즘은 변형캔버스로, 가운데 하늘을 뻥 뚫어 비워두기도 한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은 “흔들리는 나뭇잎이 바람의 실체를 알려주듯 오정근의 그림은 건물을 매개로 하늘을 다르게 보게 한다”고 평했다.
![오정근은 유대인박물관에서 하늘을 보고 찍은 사진. [사진 조은숙갤러리·오정근]](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26/joongang/20250526001103456wmup.jpg)
오정근은 서울대 서양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선화예고 교사로 8년, 대학 강사로 있다가 독일로 건너갔다. 그는 “익숙한 환경, 반복되는 만남을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나를 직시하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그의 그림을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에게도 낯선 풍경”이라고 평한 바 있다.
서른다섯 살, 베를린 독일문화원 앞마당에서 어학을 배우던 쉬는 시간에 심란한 마음으로 서성이다 바라본 하늘이 ‘사이공간’의 시작이었다. 여행 가이드로 생활하면서 그렸다. 2007년엔 독일 회화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특별한 2인전을 열었다. 일면식도 없던 리히터가 오씨가 전속으로 있던 한국계 화랑 대표의 편지에 미공개 소품 두 점을 보내왔다. 오씨가 그걸 보고 같은 크기 신작 두 점을 그리고, 그 네 점만으로 ‘대화(dialog)’라는 제목의 전시를 단 이틀만 열라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2022년, 오씨는 90세를 맞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연 리히터의 초대를 받았다. 리히터는 “멈추지 않았지? 열심히 하고 있지?”라는 짧은 인사로 그를 격려했다. 오씨는 “알아주는 이 없는 건 익숙해 괜찮다”며 “포기하지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진지하게 계속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6월 15일까지. 무료.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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