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권위가 담긴 말 ‘대권’
왕정 국가였던 조선.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다. 백성들은 용안으로 불리는 왕의 얼굴을 함부로 쳐다볼 수 없었다. 행차라는 이름으로 왕이 길을 나섰을 때 백성들은 왕에게 복종한다는 뜻을 표해야 했다.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엎드렸다. 왕은 군사는 물론 행정, 사법,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다. 모든 권력은 왕으로부터 나왔다.
왕이 가진 권력과 권한은 ‘대권(大權)’이란 말로 표현됐다. 대권은 곧 왕권을 뜻했다. “벼슬과 녹을 주는 것은 임금의 대권이라.”(세종실록), “상벌은 임금이 세상을 다스리는 대권이라.”(성종실록), “폐하의 대권으로 협상해 잘 처리하라는 ….”(고종실록)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 대통령의 얼굴을 다른 말로 부르지 않는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얼굴을 편하게 쳐다봐도 된다. 헌법이 밝히고 있듯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지자면 ‘대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대권’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의식이 있다. 국어사전들에도 이런 생각이 반영돼 있다. 국어사전들은 ‘대권’을 “국가의 원수가 국토와 국민을 통치하는 헌법상의 권한” “대통령의 권한”으로 풀이한다. 헌법에서는 ‘대권’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대권’에는 이전 시대의 권위적 의미가 묻어 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사람들 앞에 ‘대권 후보’ ‘대권 주자’처럼 ‘대권’이란 수식어를 흔히 붙인다. ‘대통령 선거’를 줄이면 ‘대선’이다. ‘대선 후보’ ‘대선 주자’에는 괜한 높임과 권위가 없다.
이경우 기자 islba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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