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 찍은 그 한 표, 한국과 나를 잇는 하루

오영주 2025. 5. 2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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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살이 6년차 부부의 '왕복 5시간' 재외투표...의무를 다하는 길, 마음이 뿌듯

[오영주 기자]

한국을 떠난 지 벌써 6년. 미국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한국 뉴스를 더 자주 본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너무 잘 아는 탓일까? 정치·교육·사회 이슈까지 빠짐없이 챙기다 보면, 어느새 내 기분도 한국의 날씨에 따라 바뀌고 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그 말 참 맞는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6.3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재외국민 투표'(5월 20일~5월 25일) 사전 신청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남편과 나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투표를 하기로 마음 먹었었다.

원래는 가장 가까운 영사관이 있는 조지아 애틀랜타까지(왕복 8시간) 가야 했지만 뜻밖에도 우리집에서 더 가까운 랄리(Raleigh)에 임시 투표소가 생겼다는 안내문을 받게 됐다. 왕복 5시간이면 가능한 거리이기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재외국민 투표를 신청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안내사항을 이메일로 받게 된다.
ⓒ 오영주
그렇게 남편과 함께 투표하러 가기로 한 5월 24일 토요일 오전 7시, 차에 오르자마자 아침 햇살이 차창 너머로 쏟아졌다. 어쩌면 이렇게 딱 좋은 날씨일까! 창문을 살짝 열고, 음악을 틀었다.

"오늘은 투표도 하고, 드라이브도 하네?" 남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기대와 설렘이 뒤섞인 그 기분, 꼭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달까.

"투표소는 한국처럼 꾸며놨을까?"
"사람들 많겠지? 아는 사이도 아닌데 괜히 반가울 것 같네."

차 안에선 이런 대화를 주고 받으며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랄리 한인장로교회. 평소 한국 사람이 드문 지역에 살다 보니, 이렇게 많은 한인을 한자리에서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색하면서도 괜히 반갑고, 서로가 서로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 우리 다 같은 이유로 여기에 왔구나.' 그 순간, 이 낯선 타지에서 같은 목적을 향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참 멋져 보였다.
 미국 랄리(Raleigh)에 있는 21대 대통령 재외투표소
ⓒ 오영주
현장은 예상보다 더 차분하고 질서 있었다. 너무 붐비지도, 너무 한산하지도 않았고 조용히 안내를 따르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준비물은 간단했다. 대한민국이 발급한 사진 있는 신분증 하나면 충분했다. 우리는 여권을 내밀었고 신분 확인을 마친 후 드디어 투표용지를 받았다. 이게 왜 떨리지? 괜한 실수라도 할까 봐 긴장도 되더라. 그도 그럴 것이 이건 단순히 종이 한 장이 아닌 것이다. 내가 보여주는 심판이자, 내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단인 것이다. 기표하는 그 몇 초 사이, 묘한 감정이 스쳐갔다. 책임감, 자부심, 그리고 과연 이 한 표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긴장감.

해외 투표는 방식도 조금 달랐다. 한국에서는 신분 확인 후 투표 용지를 받고, 기표한 뒤 잘 접어서 투표함에 넣으면 됐다. 그런데 재외국민 투표는 신분을 확인한 후 투표 용지를 받을 때 봉투도 함께 받는다. 봉투 표지에는 내 신분 정보가 적혀 있는데 기표한 용지를 봉투에 넣어 밀봉한 뒤 직접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복잡하진 않았지만, 그만큼 신중하게 느껴졌다. 내 투표가 소중하게, 정확하게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이 절로 생기더라.

투표는 금방 끝났다.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난 것 같기도 했지만, 동시에 참 뿌듯했다. 멀리까지 와서 나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간다는 게, 마음 한켠에 자랑처럼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랄리의 대형 한인마트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간만에 먹고 싶었던 한식 재료도 트렁크 한 가득 실컷 살 수 있었다. 투표도 하고, 여행도 하고, 장도 보고, 맛있는 점심도 먹었으니 이건 뭐, 1석 3조가 아니라 4조, 5조짜리 하루인 셈이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 나는 한 표를 던진 게 아니라 마음을 잠시 한국에 다녀오게 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이었고, 작은 종이에 꾹 찍은 그 한 표가 나와 한국을 다시 이어준 것이었다.

투표는 끝났지만 출발할 떄 느꼈던 그 아침 햇살, 마음의 울림은 아직도 마음에 맴도는 느낌이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오늘 하루 제 마음은 한국에 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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