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교사가 부른 옛 노래... 아이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진 이유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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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 5.18 민주 묘지의 '대동세상' 조형물과 민중항쟁탑. 올해 5.18은 여느 해와 달리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
| ⓒ 서부원 |
5.18 주간은 5월 27일까지다. 18일 10시에 전남대학교 교문의 시위로부터 점화된 5.18은 27일 새벽 계엄군에 의해 전남도청이 함락되면서 열흘 간의 시민 항쟁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다채로운 5.18 기념행사도 17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27일 폐막식이 열릴 때까지 광주광역시 일원에서 계속된다.
민주화운동 사진전과 시민 문화제, 민주시민교육 포럼 행사가 열렸고, 5.18 문학상 시상식과 5.18 관련 영화제도 예정되어 있다. 주말에는 금남로 일원에서 5.18 거리 축제와 청년 토크콘서트도 치러진다. 폐막식을 앞두고는 5.18 정신 계승을 위한 학술대회까지 열려 45주년 5.18을 더욱 뜻깊게 하고 있다.
이렇듯 다채로운 기념행사는 주로 광주광역시와 5.18 기념 재단 등 관련 기관에서 주관한 것들이다. 예년과 달리 '행사를 위한 행사'를 지양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특히 작년 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올해 5.18은 남다른 감회를 안겨주고 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이 전시된 5.18 기록관에서는 지금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소년이 온다>는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숨진 고등학생 문재학 열사의 생애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서, 지금도 광주 시민을 넘어 전 국민의 독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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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제45주년 기념행사로 마련한 '윤상원 열사를 위한 작은 음악회' 모습. 200여 명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참여하여 5.18의 정신을 기렸다. |
| ⓒ 서부원 |
'대한민국 민주주의? '반딧불'의 힘!'
무대 뒤 현수막에 이렇게 적었다. 반민주적인 독재정권에 맞서 정의를 바로 세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름 없는 시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이룩된 거라는 의미를 담았다. 아이들에게서 흔히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고위공직자들의 능력과 헌신이 민주주의 발전의 동력이라는 '교과서적 허상'을 혁파하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
최근 퇴임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스승' 김장하 선생의 일갈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이끈 문 전 헌법재판관의 선고문이 아이들에게도 알려지며, 덩달아 김장하 선생이 웬만한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런 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놀라움과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이 지탱하는 거다."
김장하 선생을 부러 찾아온 그의 제자에게 건넨 말이다. 그의 장학금을 받고도 훌륭한 사람이 못 되어 죄송하다는 제자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김장하 선생은 수십 년 동안 한약업을 통해 번 돈을 장학과 기부 등 자선사업과 사회운동에 쏟은 이 시대의 '참 어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장학금으로 공부한 인재가 1000명이 넘는다.
윤 전 대통령의 탄핵과 김장하 선생의 일갈을 학교의 5.18 기념행사에 녹여낼 요량이었다. 그렇다고 윤석열과 김장하라는 이름을 직접 명시할 수는 없었다. 이마저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의 오해를 사면 어쩌나 하는 소심한 생각도 없지 않았다. 특히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인 요즘 교사는 선거나 정치에 관한 그 어떤 말도 하면 안 된다.
그렇게 길어 올린 단어가 '반딧불'이었다. 중식이 밴드가 처음 불렀고, 얼마 전 황가람 가수가 리메이크해서 큰 인기를 얻은 곡 '나는 반딧불'에서 착안한 것이다. 워낙 널리 알려진 노래라 아이들조차 악보 없이 '떼창'을 할 수 있어 행사의 진행에 맞춤했다. 코드 진행이 단순하고 반주하기도 쉬워 따로 반주 음원(MR)을 구할 필요도 없었다.
행사는 수업 등 학사일정에 큰 영향이 없도록 공강 시간을 활용했다. 독창과 합창, 제창을 섞어 여섯 곡으로 구성했다. 행사의 마무리는 모두가 일어나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 놓아 부르는 것이다. 윤상원 열사의 후배들로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 적어도 5.18 주간에는 청소 시간과 점심시간에 송출되는 '유행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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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학급 전체가 무대에 올라 '민중의 노래'를 합창했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삽입곡으로, 5.18의 정신과 프랑스 혁명의 그것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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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노래 '이 산하에'도 감동적이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가요 그룹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곡으로, 한 지상파 방송의 5.18 40주년 행사 때 불리기도 했다. 이 곡은 대학 시절 노래패를 이끈 경험이 있는 학년 부장 교사가 비장한 목소리로 소화해 냈다. 주위로부터 음악 교사로 곧잘 오해되는 그는 기실 수학 교사다.
'나는 반딧불'을 '떼창'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드럼도, 베이스도, 건반도 모두 빠진 채 오로지 통기타 한 대로만 반주했고, 200여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마이크도 없이 절규하듯 부르는 광경은 흡사 5.18 당시 민주 광장에서의 '민족 민주화 대성회'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노랫말은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였고, 5.18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다짐이었다.
우리 학교는 윤상원 열사와 더불어 계엄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뒤 암매장됐던 김평용 희생자의 모교이기도 하다. 학교 도서관에는 그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그의 생애를 새긴 동판을 제작해 세워놓았다. 희생을 기억하는 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해마다 5.18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5.18 당시 희생된 청춘들을 위로하기 위한 노래를 빼놓을 수 없었던 이유다. 이선희 가수의 노래 '오월의 햇살'이 맞춤했다. 이 곡은 이른바 '5공 청문회'가 한창이던 1989년 무렵 만들어졌는데, 지금껏 그들의 넋을 달래려는 진혼곡으로 여겨져 왔다. 직접 말하지 못하고 에두를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엄혹했던 현실까지 깨닫게 하는 곡이다.
이 노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임 교사가 불렀다. 한 세대도 더 지난 옛 노래를 그의 애절한 목소리에 담아냈다. 감동한 아이들의 기립박수가 한참 동안 이어졌고, 그렇게 또 한 사람의 음악 교사가 등장했다. 그도 음악과 담을 쌓고 지내 온 영어 교사였다.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어 노래를 통해 5.18의 정신과 자연스레 만나고 있었다.
이어진 수업에서 5.18 기념행사를 매조지듯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작은 음악회는 '맛보기'이자 '초대장'일 뿐이며, 5.18의 정신을 가슴에 아로새기기 위한 독서와 토론으로 이어져야 한다. 도서관에는 여러 5.18 관련 도서를 한데 모아둔 '오월 서가'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우리 함께 노래로 5.18을 만났으니, 이제 책으로 5.18의 정신을 깨달아야 할 때다. 지금 도서관에 가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윤상원 열사의 일기 <어떻게 살 것인가>, 두 권짜리 만화책 <망월> 등 다양한 책들이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눠보자. 이야말로 최고의 5.18 기념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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