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위기에도 그 헌책방이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

김관식 2025. 5. 2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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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늘도 보물의 주인을 기다립니다... 대전역 인근 '중부서점' 이희석씨

[김관식 기자]

▲ 대전역 인근에 있는 헌책방 중부서점. 유동인구가 제법 많은 곳이지만, 이곳을 들르는 손님은 하루 중 겨우 손에 꼽을 정도다.
ⓒ 김관식
"여그, 가방 내려놓고 편히 보슈. 아니, 땅에 (내리지) 말고 의자 위에..."

쭈뼛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었다. 10평 남짓한 그곳엔 어렸을 적부터 익숙했던 책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차 타고 이동하는 동안 가볍게 읽을 책 한 권 사자는 생각이었다. 대전역에서 일을 마친 후 시간이 조금 남아 다행히 아침에 봐뒀던 헌책방에 들렀던 것이다. 그런 내게 책방 주인 이희석(78)씨는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보라는 투로 말을 건넸다.

중부서점이 위치한 대전역은 경부선과 호남선의 분기점이 되는 철도교통의 중심지다. 철도통계연보를 살펴보니 2023년 기준 일평균 이용객이 5만 500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래서 대전에서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손꼽힌다. 한 마디로 핫플인 셈.

하지만 중부서점은 예외다. 그 많은 사람이 눈앞에서 오가지만 하루에 들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평일이었던 이날은 퇴근 시간 무렵까지 4~5명이 찾은 게 전부다. 근처에 음식점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 이곳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읽고 싶은 책을 둘러봐야 하는데, 다른 생각이 앞섰다. '손님이 몇이나 올까?'부터 '임대료는 낼 수 있을까?' '헌책방을 언제, 왜 시작하게 된 걸까?' '중간에 업종을 바꾸고 싶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들.

잠깐 사이에 최일남의 <장씨의 수업>이라는 단편집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마침 현금 5000원이 있어 건네고 거스름돈을 받는 사이, 잠깐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 책방주인 이희석씨. 그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가게 문을 열 것"이라며"이 책 전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김관식
"책을 왜 선택했냐고? 아니지, 책이 내게 손을 내민 거지"

이희석씨가 헌책방을 운영한 지 올해로 45년. 1974년 대전 시내를 관통하는 대전천변에 위치했던 '홍명상가'. 지금은 철거돼 대전 시민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그곳에서 1980년, 이희석씨와 책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솔직히 책이 좋아서 선택했다기보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그는 18살에 집에서 나와 독립했다고 했다. 입 하나 줄이고자 한 것도 있었지만, 젊은 객기도 있었던 셈. 그렇게 그는 군 제대 후 20대 중반에 서울에서 일찍 가정을 꾸렸다. 자식도 태어났다. 가족과 함께 벌어먹고 살겠다며 아침저녁 가리지 않고 뛰었다. 그러다 큰아들 8살 무렵, 대전으로 내려왔다.

이사도 잦았다. 70~80년대 당시 방세도 문제였지만, 일 자체가 불안정하니 거처도 일정치 않았다. 그사이 크고 작은 사고도 잦았다. 그럴수록 젊은 시절이니만큼 건강한 몸 하나로 지탱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이 이씨에게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했다.

"그때 애 학교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줍디다. '이렇게 이사를 자주 다니면 애들에게 지장이 많으니, 가급적 한곳에 정착하시는 게 어떠시냐?'고 말이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어요. 그동안 제 생각만 했던 거죠. 그때만큼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어요."

이씨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골랐다. 그러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무렵 큰 사고로 이희석씨는 한쪽 다리를 다쳤다. 목발을 짚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상하고 나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건강한 몸 하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닥친 현실은 그렇지 않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고. 실패도 많이 했고, 벌어 놓은 돈도 많지 않았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책방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는 것.

"배운 건 없고,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고 해서 시작한 일이 이 헌책방이었어요. 책이 제게 손을 내민 것이지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45년이 된 겁니다. 책을 꼭 읽지 않아도 함께 있으면 겸손해지고, 제목만 봐도 깊은 생각에 잠겨요. 좋은 생각만 하게 되죠. 제젠 큰 '인연'이에요. 글고 가족에게 고맙다는 생각보다 미안한 맴이 더 크고요."
 세월이 흐르고 시간에 바랬어도 그 책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오래된 책 역시 우리 삶의 역사며 흔적이 아닐까.
ⓒ 김관식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 없듯, 필요 없는 책도 없다

보물은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책은 금은보화처럼 번쩍거리지는 않아도 사람의 내면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데서 가치는 커진다. 그 책들이 그의 손에 들어오면 족족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진다. 이씨는 "내 눈엔 모두 보물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세월에 헤지고 누렇게 변색했지만 그 안에 녹인 내용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 세상을 바꿔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 없듯, 세상에 필요 없는 책은 없었다.

"좋은 책이 뭐냐고 많이들 물어요. 반대로, 덜 좋은 책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다 좋은 거죠. 어떤 책이든 필요한 책이라면 다 좋은 책이에요. 또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바랐던 보물이기도 하고요."

벽지를 대신하는 것도 모자라 천장에 닿을 듯 아슬아슬 책이 쌓인 곳. 그 사이 사이를 게걸음을 해야 만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 곳곳에 과학잡지, 패션잡지, 문학, 추리소설, 옛 교과서, 교육자료, 한자교본, 만화책, 오래된 동화책 등이 눈에 잡힌다. 마치 하나의 타임캡슐처럼.

"아들이 한번은 이러더라고요. 건강을 위해 좀 쉬시는 게 어떠시냐고. 저는 오히려 그러면 병난다고 생각해요. 돈을 떠나서 제가 늘 갈 곳이 있고, 무엇보다 이곳을 찾는 손님이 계시잖아요. 그분들이 원하는 책을 겨우 찾았을 때 표정을 저는 잊지 못해요. 그분들을 언제고 기다리는 겁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할 거예요."

그는 유독 한 손님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찾는 분이었다고. 국민 MC 송해 선생님과 동갑으로 알고 있다는 그 손님은 경주에서 대전으로 올 때마다 늘 이곳을 들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그 손님의 나이까지 기억했다. 그 손님은 95세가 다 되도록 이 책방을 홀로 찾았던 것. 그 손님에게 이곳은 책방 이상의 또 다른 중요한 곳이지 않았을까.

"자주 오셔서 기억하고 있어요. 언제부턴가 집에서 책을 집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안타까웠습니다. 사람 인연이, 생전에 한 번밖에 없지요. 우리 사회에 훌륭하고 아름다운 분이 많아요. 제가 다 말씀 못 드려서 그렇지. 이곳에 있으면 손님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책방은 유독 단골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몇 번의 폐점위기에도 버텨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장하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보통사람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이 맞나보다. 책 얘기를 하기보다 책과 함께 쌓인 인생 얘기를 나눴다.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그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웠지만 다음에 나눌 이야기 정도는 남겨도 좋겠다 싶었다. 참, 이희석씨에게 건강차 휴식을 권했던 아들이 궁금해 어디 계시는지 물었다. 그는 "충남대 의과대학 교수로 있다"면서 "갸는 갸인생이죠, 뭐"라고 말했다.

이렇게 짧은 얘기를 주고 받은 끝에 책방을 나섰다. 가게 밖에서 머뭇거리는 한 40대 직장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들어가보세요. 좋은책 정말 많더라고요. 내일이면 늦어요."
 이날, 평소 읽고 싶었던 최일남의 책을 손에 넣었다.
ⓒ 김관식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100번째 기사입니다. 마침 우연히 찾은 헌책방에서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어 기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도 작게나마 의미 있는 내용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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