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배임 앞에서 주춤해서야 되겠나? [‘할말 안할말’…장지호의 ‘도발’]

그럴 때마다 팀장들은 몸을 아낀다. 어지간하면 기존 관행대로 가려고 하지 새로운 시도에는 늦장을 피운다. 단순하게 일이 늘어나는 게 싫어서인 줄 알았는데 면담을 해보면 배임의 두려움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만큼 배임은 경영 환경에서 두려움 그 자체다.
배임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주어진 임무를 저버림. 주로 공무원 또는 회사원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국가나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주는 경우’라고 되어 있다.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극히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저버린 임무’라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규정된 바가 없고, ‘자기의 이익’이라는 기준도 애매하다.
결과적으로 손해가 난 경우 거꾸로 그 의도를 유추해 책임을 묻는다면 누구라도 논란이 되거나 불확실한 정책은 결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한다. 도전적인 시도는 도모되기 어렵다. 크지 않은 대학에서도 배임 우려 때문에 진취적인 경영이 어려운데, 하물며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서의 기업은 오죽할까 싶다.
우리는 배임을 형사처벌한다. 배임죄 종류 자체도 많고, 가중처벌까지 한다. 전 세계에 드물게 형법, 상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에 배임죄를 규정하고, 일반·업무상배임에 더해 특별배임까지 두고 있다.
형법 제355조 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5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 외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배임죄, 상법 제622조의 특별배임죄, 특경법 제3조의 가중처벌 등이 규정되어 있다. 특히 50억원 이상 범죄에는 특경법이 적용돼 5년 이상 무기징역 이하로 살인죄 수준이다.
배임죄는 개별 국가마다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배임죄 처벌 규정이 아예 없이 사기죄로 처벌하거나 개인 간 민사상 손해배상 등으로 처리한다. 독일은 형법상 일반배임죄, 일본은 형법상 일반배임죄와 회사법상 특별배임죄가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작년 11월 경총 간담회에서 배임죄를 폐지·완화할 수 있다고 언급한 이후 배임죄 존폐에 대한 공론화가 잠깐 있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상법 개정과 맞물려 배임죄 폐지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아직도 적지 않은 대기업에서 적은 지분을 보유한 사주가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거나 승계를 위해 계열사를 동원하는 현실에서 배임죄 완전 폐지가 국민 정서상 어려울 수 있다. 헌법재판소도 2015년 전원일치 의견으로 배임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형사처벌 적용 범위만이라도 축소하고 그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처럼 손해배상 범위를 넓게 인정하는 것을 고려해볼 만하다. 위험이 수반되더라도 과감한 투자와 새로운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이 배임 앞에서 주춤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적법 절차에 따른 의사 결정이라면 그 경영 판단 자체에 대한 법의 심판은 아무리 봐도 무리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1호 (2025.05.28~2025.06.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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