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서 반대" "하루전 수정"…이재명·김문수 슬로건 탄생 비화 [대선 인사이드]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정치 슬로건(구호)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했던 인물이다. 1917년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의 슬로건 ‘평화·빵·토지’는 1차 세계대전에 지친 노동자·농민 계급을 움직였다. 그 결과 10월 혁명이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보통 사람’(노태우) ‘준비된 대통령’(김대중) ‘사람이 먼저다’(문재인) 등 강한 인상을 남긴 슬로건들이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21대 대선에서도 슬로건 경쟁이 한창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지금은 이재명’,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새롭게 대한민국 정정당당 김문수’,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미래를 여는 선택 새로운 대통령 이준석’이 유세 현장을 장식한다. 이들 슬로건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세계를 주도해보자는 키 콘셉트”
이재명 후보의 슬로건은 마케팅 연구소 소장 A씨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민주당은 정치 컨설턴트 등에게 대선 슬로건 시안을 여러 건 받아 검토했다. 그 과정에서 이 후보 최측근 인사가 A씨에게 시안들에 대한 평가를 의뢰했다. A씨는 “키 콘셉트(핵심 개념)가 없다”고 지적했다. A씨는 21일 통화에서 “예컨대 BMW는 키 콘셉트 ‘드라이빙 머신’(운전 기계)이 있기 때문에 ‘순수한 운전의 즐거움’이라는 슬로건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키 콘셉트를 잡는 게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말 A씨는 이 후보와 대면했다. 그 자리에서 키 콘셉트로 ‘K-이니셔티브(주도권)’를 제시했다. “어젠다(의제)를 선점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려야 합니다.” A씨는 “선진국 모방이 아니라 이제 한국이 세계를 주도해보자는 콘셉트는 대한민국의 질적 레벨업을 바라는 중도층의 욕망도 자극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여기에 ‘K-이니셔티브’의 적임자가 이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는 작업이 더해졌다. 강영호 작가의 책 제목 ‘지금은 이재명’을 쓰기로 했다.
A씨의 제안을 듣고 난 일부 의원은 즉석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내란 극복’이라는 현 상황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후보가 A씨 슬로건을 쓰기로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A씨는 “논리 흐름에 대한 이 후보의 이해가 굉장히 빨랐다”며 “콘셉트와 슬로건은 사실상 이 후보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정정당당’, 김문수만 쓸 수 있는 표현”
국민의힘 후보 교체 파동을 겪은 김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12일)에 슬로건을 결정했다. 효율적 논의를 위해 경선 슬로건이던 ‘새롭게 앞으로 위대한 대한민국’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됐다고 한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김 후보는 ‘위대한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평소에도 많이 사용할 정도로 좋아했고, ‘새롭게 앞으로’는 김재원 비서실장이 좋아하는 문구였다”고 전했다. 막판 검토에서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이 “너무 길다”는 의견을 내 ‘새롭게 대한민국’이 최종 낙점됐다고 한다.

김 후보의 또 다른 슬로건인 ‘정정당당’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재명 후보를 견제하는 성격이다.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한 전 총리는 갑자기 점프해서 당으로 들어왔고, 이 후보는 재판을 받고 있지 않으냐”며 “지금 이 순간 가장 깨끗하고 당당한 후보가 누구냐 따져보면 그건 김 후보다. 그래서 ‘정정당당’을 붙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23일 공개한 3차 TV광고에서 ‘알고 보니 진짜는 김문수’라는 슬로건을 추가로 내세웠다. 서지영 선거대책위원회 홍보기획단장은 “민주당의 ‘진짜 대한민국’ 대응 성격도 있고 이번 대선이 ‘진짜 대 가짜’ 구도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환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 단장은 “김 후보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유능하고 청렴하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며 “그래서 ‘알고 보니 진짜’라고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선거는 과거와 미래의 대결”

이준석 후보의 슬로건은 개혁신당 선대위 소속 전성균 홍보본부장과 곽대중 메시지 단장이 도맡아 탄생시켰다. 곽 단장은 “이번 선거의 시대 정신이 무엇인지, 우리 후보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유권자의 바람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을 ‘과거와 미래의 대결’로 정의했다는 설명이다. 곽 단장은 “우리 후보는 상대적으로 젊고, 미래를 상징한다는 강점이 있다”며 “조기 대선으로 국가적인 낭비를 하는 상황에서 유권자가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는 의미를 반영해 ‘미래를 여는 선택’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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