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16) 제주의 숨결, 은밀하고 아름다운 곶자왈

푸르다. 발길 닿는 오솔길, 시선에 그득 담기는 숲과 산그리메, '농'과 '담'이 다를 뿐 오롯이 푸름이다. 푸름을 헤집고 이팝나무 하얀 꽃들이 날씬날씬 피었다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며 이울어간다. 맘껏 펼친 백색의 향연, 꽃이 진 그 자리에는 별일 아니라는 듯 금세 푸름으로 덮이겠지…. 문득, 숲속에 맑은 종소리를 울리려는 듯 떼 지어 피어나던 때죽나무 하얀 꽃 무리가 나를 부른다. 그 향기를 따라 서늘하고 은밀한 비밀의 정원, 곶자왈 숲으로 '꼬닥꼬닥'들어선다.
이끼 낀 검은 돌의 바다는 기묘하게 자라며 어우러진 숲과 미끈한 나뭇가지 아래 고요하다. 숲은 서로 속살거리고 그곳에 깃든 뭇 생명은 제각기 분주하다. 화산암반 위에 자리 잡은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제주 아니면 볼 수 없는 색다른 경관도 다채롭다. 양치류가 우거져 자라고 콩잎 같은 동글동글한 식물이 나무와 바위를 뒤덮어서 또 하나의 신비하고 흥미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햇살이 나무 사이로 비껴들며 후광을 흩뿌리자 숲은 생동하는 생명의 에너지로 충만해진다. 빗살 같은 빛에 싸인 묘한 정경, 근심 걱정도 시샘도 부러움도, 세상사 칠정 오욕이 아무것이 아닌 듯 하찮다. 어디선가 숲의 요정이라도 "포로록" 나타날 것만 같은 오래된 숲속에 서니 마음 밭이 평화롭고 유순해진다. 이 숲은 수백 종의 동식물이 깃든 보금자리요, 일상에 지친 인간들의 영혼을 보듬는 안식처다.

곶자왈은 세계적으로 드문 식생 구조를 가진, 아름다운 숲이다. 생태계의 허파로도 불리며 나무, 덩굴, 바위가 뒤엉킨 제주만의 특이한 숲 지형이다. 원래 '곳','곶','고지'라고만 불렀던 곳으로 곶자왈이란 말은 90년대에 생겨난 순 제주말이다. 곶자왈은 우림 지대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일반적인 침엽, 활엽수 원시림과도 다른 화산 지대에 있는 독특한 원시림이다.
곶자왈이 주는 많은 혜택 중 하나는 특유의 암석 지형으로 인해 제주도민이 식수로 쓰는 대수층(지하수를 함유하는 지층)의 핵심을 이룬다는 것. 이 지대는 토양의 발달이 빈약하고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가 두껍게 쌓여 있지만, 그 덕에 일시에 많은 비가 내려도 빗물이 지하로 내려가 맑고 깨끗한 지하수를 만들어낸다. 암석층이 스펀지와 같은 거름막 역할을 하는 셈으로 최고의 물로 치는 용천수가 그것 아닌가.
곶자왈은 지형이 울퉁불퉁하고, 나무와 덩굴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이 우거져 있다. 본래 식물이 성장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나, 지하수가 풍부하고 보온, 보습 효과가 뛰어나 곶자왈만의 독특한 숲을 이뤄낸 곳이다. 여러 숨골에서 내뿜는 18도 내외의 온기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덕에 열대와 한대 식물이 공존할 수 있었고, 그 축축한 습기는 식물을 키우는 물조리개 역할을 한 것이리라.
드넓게 펼쳐진 곶자왈은 용암지대로 농사를 위한 개간이 어려웠던 탓에 지금껏 보존되어 있긴 하지만 끊임없이 훼손이 일어나는 것도 현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드넓은 위락시설 '에코랜드'라니, 몇 년 전 에코랜드를 탐방하며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목가적인 풍광을 즐겼던 무관심에 마음이 쓰인다. 언젠가 곶자왈 숲을 보전하고 가꾸기 위해 '곶자왈 한 평 갖기' 캠페인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반드시 해야 할 바람직한 일로 나도 곶자왈의 선한 주인장이 되고 싶다.

숲 가운데 자리한 4층짜리 전망대에 오른다. 곶자왈의 울창한 숲과 주변 오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솔길에서 곶자왈의 속살을 봤다면 전망대에서는 수북한 숲의 정수리, 우듬지의 일렁거림을 본다. 끝없이 이어진 푸름이 옹골지게 탐스럽다. 이렇게 거대한 숲을 이루기까지 장구한 시간과 햇볕과 빗물과 바람의 협업이 있었을 터, 자연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섭리에 뭉클하다. 저 홀로 스스로 나고 지고 수없는 천이 과정을 거치며 끈덕지게 살아낸 생명의 고귀함, 수없이 많은 생명을 품어 안은 숲, 생과 사가 함께 어우러진 곶자왈의 숲은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산은 숲을 품고 숲은 새를 품고, 새는, 새는, 새는 산을 품는다'는 어느 시인의 시어처럼 이 땅 위의 생명체는 공유하고 조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곶자왈에 든다는 것은 단순히 안식을 누리며 걷는 행위를 넘어 생명을 품은 자연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것. 훼손 없이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 우리네들 삶을 지키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아름답고 은밀한 생명의 숲 곶자왈이여! 그대 영원하기를….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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