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시인 고향에서 열린 1주기 추모 문학제
이상기 2025. 5. 23. 08:33
충주 노은면에서 22일, 시낭송대회, 학술대회, 추모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 진행
도서로는 최근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발간된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와 대표 시집 <농무>(農舞)가 시인의 묘소 앞에 바쳐졌다. 도서 봉정 후 도종환 시인은 "시집을 내기 위해 시들을 정리 분류하고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신경림 시인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좋은 시를 쓰셨다. 한편도 버릴 게 없다"고 말했다. 유족대표로는 둘째 아들 신병규씨가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바리톤 이상열이 <목계장터>를 추모 노래로 불렀다.
신경림을 잘 아는 두 사람이 말하는 신경림의 삶과 시
고향마을에서 만난 시인의 자취
[이상기 기자]
신경림 시인 묘소에서 진행된 1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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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림 문학제 포스터 |
| ⓒ 이상기 |
신경림 시인은 2024년 5월 22일(수) 고양시 일산의 국립 암센터에서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5월 25일 고향인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151번지 아주신씨(鵝洲申氏) 선영에 안장되었다. 1년이 지난 지난 22일(목)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곳곳에서 1주기를 추모하는 문학제가 열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시민참여 프로그램, 시낭송대회, 학술대회, 추모공연이 진행되었다.
오전 11시부터 신경림 선생의 자취를 찾아가는 답사가 있었다. 신경림 시인 생가, 벽화길, 시인이 다닌 노은초등학교, 묘소를 답사했다. 오후 1시부터는 신경림 시인 묘소에서 1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헌화와 헌주, 시인의 약력 소개와 추모사, 추모시 낭독, 도서 봉정식, 유족대표 인사, 추모 노래 순으로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추모시는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장백문화재단 김선정 시인이 낭송했다. 제목은 <그대, 들길을 따라 오시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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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소 앞에 헌정된 유고시집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와 <농무> |
| ⓒ 이상기 |
이제 그대는 말이 없어도
들길 가득 핀 민들레로 남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그리움 마저 시가 되는 날,
우리는 당신을 다시 읽고
당신을 다시 부릅니다.
도서로는 최근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발간된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와 대표 시집 <농무>(農舞)가 시인의 묘소 앞에 바쳐졌다. 도서 봉정 후 도종환 시인은 "시집을 내기 위해 시들을 정리 분류하고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신경림 시인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좋은 시를 쓰셨다. 한편도 버릴 게 없다"고 말했다. 유족대표로는 둘째 아들 신병규씨가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바리톤 이상열이 <목계장터>를 추모 노래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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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림 작시 최영섭 작곡 <목계장터> 악보 |
| ⓒ 이상기 |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찬바람이 되라네.
신경림을 잘 아는 두 사람이 말하는 신경림의 삶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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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 비나리를 부르는 권재은 명창 |
| ⓒ 이상기 |
오후 2시부터 청소년부와 일반부로 나눠 신경림 시낭송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고운소리 시낭송회가 주관해 행정복지센터, 농협, 노은초등학교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오후 3시부터는 <신경림 시인의 생애와 문학세계>라는 주제로 2시간 동안 학술대회가 열렸다. 네 사람이 발표했는데, 두 사람은 신경림 시인과 교유하며 가까이 지낸 염무웅 선생과 도종환 시인이다. 다른 두 사람은 문학평론가 남승원과 김춘식 교수다.
식전 행사로, 신경림 시인과의 인연으로 고향 충주에서 국악을 전파하고 있는 권재은 명창이 20분 동안 시절가인 <육칠월>과 신 시인이 좋아하던 사설 <통일 비나리>를 불렀다.
염무웅 선생은 신경림 시인이 어렵던 시절 시집 출간을 도맡아 해준 편집인이다. 신경림 시인과 54년 인연을 돌아보며 그의 시에 나타나는 '위대한 평범성과 빛나는 소박성'을 이야기했다. 이것은 독일의 예술사가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이 조화와 아름다움을 추구한 그리스 예술작품의 특징으로 든 '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대성'을 참고해 만든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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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발표자 염무웅 선생(왼쪽)과 도종환 시인 |
| ⓒ 이상기 |
염무웅 선생은 신경림을 국민시인이라고 말한다. 이 시대 한국인 누구나 신경림 시인의 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와 같은 시인이 다시 출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별세로 생긴 공허는 너무 크다고 말한다. 신 시인이 평생 허무와 비관에 시달리면서도 우주적 높이의 달관에 이르렀음을 <눈>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다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었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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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림 학술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
| ⓒ 이상기 |
도종환 시인은 유고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를 중심으로 '한결같은 시인, 한결 같은 시'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시인은 발견하는 사람, 떠나는 사람, 내려놓는 사람, 아파하는 사람이다. 이 네 가지 카테고리에 따라 신 시인의 시를 분류해 설명했다. 첫째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행위에서 시가 나왔다고 설명한다. 둘째 머물러 있지 않고 떠나는 삶 속에서 그만의 시가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새떼> 역시 "둥지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셋째 시인은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매일 뿌연 미세먼지가 낀다. 현실이 안개뿐이고 허공뿐이어도 신 시인은 행복하다고 되뇌며 걷는다. 넷째 시인은 아파하는 사람이다. 시대의 고통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의 추악함과 허망함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날, 아아 그날'에서 세월호 참사를 아파하며 통곡한다.
깊고 차디찬 물속에 갇혀
안타깝게 어머니를 부르던 날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바다도 울던 날
고향마을에서 만난 시인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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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림 벽화와 시 <목계장터> |
| ⓒ 이상기 |
신경림 시인의 본명은 신응식(申應植)이다. 1935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470번지 상입장에서 태어났다. 상입장은 장이 서는 동네 위쪽이라는 뜻이다. 1943년 노은초등학교에 입학해 1948년 졸업했으니 이떄까지 노은에서 살았다. 그리고 충주사범 병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충주 시내로 나가게 되었다. 당시 노은에서 시내로 가려면 목계나루나 탄금대 나루를 건너야 했다. 그러면서 남한강이 자연스럽게 그의 문학의 주제 또는 소재가 되었다.
1956년 이한직의 추천으로 <문학예술>에 '갈대', '낮달', '석상'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1957년부터 1965년까지 신경림은 시인이기보다는 고향 주변을 떠도는 방랑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때의 체험이 나중에 위대한 평범성으로 되살아난다. 1965년 친구 김관식 시인의 권유로 상경, 잘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1970년 신동문 시인의 소개로 창작과 비평사 염무웅 편집장에게 신경림 시인의 시 다섯 편이 전해졌다. 이 시를 읽은 염무웅은 말할 수 없는 충격과 흥분에 빠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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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림 생가 |
| ⓒ 이상기 |
그래서 그해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신경림의 '눈길', '파장' 등 다섯 편의 시가 실리게 되었다. 이를 통해 신경림은 무명으로부터 벗어나 문단의 주류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시는 10년 동안 고향에서 겪은 체험과 방랑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민중 속에서 내적인 정직성을 찾아내고, 고독 속에서 사회적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못난 놈들의 대변자 신경림 시인이 고향 노은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가난을 노래한 신경림 시인의 시가 시판으로 걸려 있다. 벽화 속 청년 신경림은 시의 꽃을 피우기 위해 책상이 앉아 시를 쓴다. 그의 고향집 생가에는 오월을 맞아 꽃이 가득하다. 함박꽃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님을 맞는다. 상추, 청경채, 당귀 등 채소도 지천이다. 생가 뒤로는 모내기를 한 논에서 벼가 자라고 있다. 생가 앞 느티나무 정자에는 찻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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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은어울림센터 신경림 시책 마당 |
| ⓒ 이상기 |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노은 어울림센터에서는 추모공연이 열렸다. 시낭송, 춤극, 동요, 가요, 퍼포먼스, 사물놀이, 가야금 병창, 오페라 아리아 공연이 펼쳐졌다. 오후 6시에는 노은초등학교 강당에서 시낭송대회 시상식이 있었다. 인구 2,164명 밖에 안 되는 시골 동네가 신경림 시인 때문에 북적거리고 생동감이 있었다. 신경림 시인과 한 세대 차이 나는 함민복 시인도 고향 노은을 찾았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충주 IC에서 나와 5분이면 신경림 시인의 자취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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