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대한민국의 '세계신기록'
[박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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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특별권을 외쳤는가, 기본권을 외쳐왔다. 기본권을 요구하기 위해 고공에 올라야 하는 세상이 이어지고 있다. 2017년 서울 여의도 광고판 위 건설노동자 고공투쟁. |
| ⓒ 노순택(굴뚝신문) |
2008년 서울 구로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서 67일, 2010년 공장 앞 포클레인 운전석 위에서 18일 농성 할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입맛도 없고 소화도 되지 않지만, 무엇보다 화장실 때문에 조금만 먹어야 하는 '하늘 감옥'의 끼니. 494일을 감옥에서 보낸 박정혜의 오늘 저녁은 어땠을까? 꿀잠 특식이 20년 일식 요리사 고진수와 고깃배처럼 흔들리는 철탑 김형수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다.
김소연이 20년 세월을 회상한다. 2005년 7월 비정규직노조(기륭전자분회)를 결성하고 공장에서 쫓겨난 여성노동자들에게 세상은 무심했다. 대법원은 불법 파견이지만 2년이 되지 않았으니 해고가 정당하다고 했다. CCTV 철탑, 미술관 옥상, 서울시청 조명탑...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올라 소리쳤다.
2008년 94일 단식, 2010년 포클레인 농성을 거쳐 1895일 만에 조합원 10명 복직에 합의했지만, 끝내 사장이 야반도주했다. 불 꺼진 사무실을 지키던 조합원들은 공장 울타리를 넘어 비정규직 노예제도를 없애라며 오체투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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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지럽게 오르내린다, 떨어진다. 오늘날의 노동은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불안한 노동이다. 노동은 있지만, 노동자를 지우는 불안정 노동이 삶을 옥죄고 있다. 법이 있어도, 법 안에 노동자가 없다. |
| ⓒ 노순택(굴뚝신문) |
우경화를 넘어 반동으로 치닫는 정치, 불로소득을 탐하는 세속화된 사회는 노동자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노조의 고립화와 법원의 반노동 판결은 고공농성의 장기화로 이어졌다. 기륭전자, 쌍용차, 세종호텔 모두 대법원에서 졌고, 살기 위해 하늘로 올라갔다.
"법이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으니, 당사자들이 삼보일배, 단식, 고공농성이라는 극한 투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죠."
고공농성은 경이로운 사회적 연대를 불러왔다. 2011년 6월 11일 김진숙의 85호 크레인 농성을 연대한 희망버스 승객들은 공장담을 넘어 1박 2일 축제를 벌였고, 7월 9일 버스 185대, 1만명의 희망버스로 이어져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을 모두 복직시켰다. 지난 2월 15일 윤석열 탄핵 광장에 모였던 수만 명의 시민들이 세종호텔로 몰려와 고진수를 응원했다. 여의도, 남태령, 한강진, 광화문 대첩을 경험한 시민들이 '하늘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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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파면하고도 여전히 같은 세상이라면 하늘에도 감옥이 있다. 저 하늘은 오르고 싶어 오르는 하늘이 아니다. 밀리고 밀려 설 자리를 잃은 이들, 눌리고 눌려 목소리를 잃은 이들이 죽을 각오로 오르는 한 뼘의 바닥. 그 위에서 그들이 말라간다. 우리가 말라간다. 사람이 말라간다. 이러려고 든 촛불이었나. 이러려고 든 응원봉이었나. 박근혜를 끝내고도, 윤석열을 끌어내리고도, 세상의 교체가 아닌 집권당의 교체라면 우리는 거부한다. 악랄한 자본세상, 더러운 차별세상, 역겨운 혐오세상. |
| ⓒ 윤성희(굴뚝신문) |
2017년 태어나 8살이 된 꿀잠은 비정규 투쟁 20년의 결실이자, 고공농성의 동반자다.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은 꿀잠에서 숙식하며 투쟁해 아들의 원한을 풀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일조했다. 동국제강, 디엘이엔씨, 쿠팡에서 남편과 자식을 잃은 유족들은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와 꿀잠 김소연을 찾았고, 꿀잠은 유족들의 참호가 되어 거대 재벌과 싸워 이겼다.
꿀잠뿐만 아니라 비정규 투쟁 20년은 많은 진지를 만들어냈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모여 함께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노조 밖 노동자들의 울타리가 된 직장갑질119와 온라인노조, 일하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을 지원하는 김용균 재단, 손배가압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손잡고...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가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집회와 행진이 끝났다. 시끌벅적했던 고공 아래는 고요해졌다. 김소연이 그릇을 싣고 꿀잠으로 향한다. 홀로 외로이 보내야 하는 굴뚝의 밤, 박정혜 고진수 김형수가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내려오길 기도한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고공을 거들떠보지 않는 시대, 진주의료원을 폐업해 노동자를 해고한 홍준표 총리설이 뉴스가 되는 나라라니, 김소연은 부끄럽고 암담하다.
"20년이 되도록 고공에 올라야 하는 이 참담한 현실이 이제는 바뀌어야 하는데, 결국 법과 정치를 바꿔야 우리 삶이 바뀐다는 간절한 생각이 드는 오늘입니다."
*이 칼럼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여성노동자의 고공농성 500일, 세종호텔 고진수 98일, 한화오션 김형수 68일을 맞아 제작된 <굴뚝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굴뚝신문> 제작에는 고공농성 해결을 촉구하는 14개 언론사 현직 노동기자들과 사진작가, 교수, 노동운동가들이 참여했습니다. ☞ <굴뚝신문> 구매 https://url.kr/wlcun3"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점규씨는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이자 온라인노조 기획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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