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007 제임스 본드는 어느 정도 사실일까?
[김성수 기자]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학교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최근 '발견한' 영국의 실제 007 제임스 본드 정보요원에 대해 나누고 싶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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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7, 제임스본드 |
| ⓒ 김성수 |
내 영국 대학 동창 30여 년 지기 중에 MI6(영국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하다 최근 은퇴한 친구가 있다. 나는 그 친구가 그동안 외무부 공무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지난 세월 동안 MI6에서 일했단다(이런 괘씸한 친구가 있나! 내게 그것을 지난 30여 년 동안 감추고 살았다니!). 하여간 억울하지만 사적은 감정은 일단 뒤로, 지난 주말 그를 우리 집에 초대 했다. 맥주 한 잔 하며 그의 지나간 직장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특별히 그에게 007 제임스 본드와 실제 영국 정보원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에 대해 물어봤다.
친구에 따르면 영화에 나오는 007과 실제 영국 정보원은 '하늘과 땅 만큼' 다르다고 한다. MI6 정보요원이라 해도, 대다수는 정해진 근무시간에 보고서 쓰고, 회의하고, 출장비 영수증 붙이며 하루를 마친다. 누가 봐도 '스파이'라기 보단 '공무원' 그 자체다. 본드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현실, 우리 같이 까보자. 그래서 다음은 그 친구와 인터뷰 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친구 신분과 사진을 공개 못하는 것에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본드는 얼굴로 뽑힌 걸까? - 현실은 '튀면 탈락'
영화 속 제임스 본드는 조각 같은 얼굴에 완벽한 수트 핏. 하지만 실제 MI6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선호한다. 내 영국 친구도 외모만 보면 그냥 동네 구멍가게에서 일하는 평범한 아저씨처럼 보인다.
BBC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정보요원의 이상형은 '옆자리 앉아도 기억이 잘 안 나는 평범한 외모'. 이 말인즉슨, 영화에 나오는 숀 커넬리나 로저 무어 같은 '얼짱', '몸짱' 제임스 본드는 실제 입사면접에서 1분 만에 탈락한다는 뜻이다.
면접관: "왜 이렇게 잘생기셨죠? 이건 명백한 보안 위협입니다."
'살인면허'는 영화 속 낭만, 현실은 '결재서명'이 전부
영화에선 '살인허가증'을 들고 적들을 쓸어버리지만, 현실에선?
실제 MI6 요원은 총 대신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죽이기보단, 죽지 않기 위해 오늘도 엑셀 표와 씨름한다. 무기보다 무서운 건 '보고서 마감'이라는 말도 있다.
친구가 현직에 있을 때 가장 자주 쓰는 도구는 무기도 아니고 가젯도 아니었다. 바로, 프린터였다고 한다. (물론 종종 고장 난다. 이건 정보기관의 영원한 적이었다고 한다.)
본드카 대 런던 지하철 정기권
007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본드카다. 미사일, 스모크, 자동 잠금, 레이저까지. 하지만 현실 요원의 주 이동수단은? 19세기에 만들어진 비좁은 런던 지하철이다. 해외파견을 가도, 경제도 어려운데, 고급 호텔은 커녕 B&B, 가끔은 호스텔에도 머무른다고 한다. 또한 영화에 나오는 고급 마티니는커녕, "자판기 커피가 어제보다 덜 싱겁다"며 기뻐하는 게 현실이라고 푸념한다.
본드걸? 아니, 보안서약
007이 등장하는 장면엔 언제나 본드걸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MI6에선?
"연애도 기밀이다"가 원칙이다. 연인에게조차 신분을 숨기느라 직업은 늘 'IT 쪽'. 가끔은 '프리랜서'라고 얼버무린다. 물론, 너무 자주 외근 나가면 상대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혹시... 첩보원이야?"
"…그건 내가 말하면 넌 죽어야 해."
"…아 농담이라고."
(하지만 진짜일 수도?)
큐(Q)의 가젯 대 실제 장비 – '레이저시계'? 아냐, USB다
폭발하는 만년필, 투명자동차, 휴대전화 EMP((고출력 전자기 펄스)… 이쯤 되면 정보국이 아니라 마블 유니버스다.
현실의 장비는 USB 드라이브, 암호화 통신 앱, 방음 이어폰 정도다. 최근엔 VPN 접속이 느리다는 게 최대 불만사항이었단다.
친구는 인터뷰 중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현실 장비는 은밀하고 효율적이긴 한데, 솔직히 말해… 별로 재미는 없어."
본드의 정체, 영국 국뽕의 결정체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제임스 본드는 스파이 영화가 아니라, 영국 국격 유지 프로젝트다. 냉전 이후 쇠퇴하는 대영제국이 "우린 아직 살아있어!"를 외치기 위해 창조한 판타지다. 미국이 슈퍼맨을 내세웠다면, 영국은 제임스 본드를 앞세운 셈이다.
'작지만 강한 나라'라는 허상을 007이 대변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정보전이 아니라 이미지전이 한국을 포함 전 세계적으로 대박을 친 것이다.
"007을 호출하라!" 보다 멋진 건, "보고서 올리셨나요?"
현실의 스파이들은 본드처럼 총을 쏘지 않는다. 그들의 무기는 '관찰력', '기록력', 그리고 끝없는 회의를 감당하는 체력이다. 매일같이 보안교육을 받으며, 컴퓨터 잠금 단축키를 외운다.
007이 "이건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고 말할 때, 현실의 요원은 "이번 업무는 장기예산 계획 보고서입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만약 제임스 본드가 MI6에 실제 입사했다면, 아마도 3개월 수습도 채 못 버티고 징계를 받았을 것이란다. 그 이유? "업무 중 과도한 음주, 폭력적 성향, 그리고 반복적인 보고서 누락."
그러니 영화에서 007 제임스 본드를 볼 때, 이렇게 외쳐보자.
"야, 저거 다 구라야! 다 뻥인 거 아시죠?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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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영기 |
| ⓒ 김성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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