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서 "죄송하다" 외친 아이들... 너무 슬픈 이 풍경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 <편집자말>
[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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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회 시작 전 "죄송합니다"라고 외친 초등학생들 영상 캡처 |
| ⓒ YTN 유튜브 |
최근 한 초등학교의 운동회가 시작되기 전, 학생들이 인근 아파트 주민들을 향해 사과의 말을 외치는 영상이 화제가 됐습니다. 소음 민원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미리 양해를 구하는 거였습니다.
지난 20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실제 경기도 안양의 한 중학교에서는 지난해 운동회 때 인근 주민들이 소음 민원을 넣어서 경찰이 학교에 출동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 학교 학생들은 올해는 '아파트 입주민 여러분께'로 시작하는 포스터를 직접 만들어서 학교 인근의 아파트 단지 내 게시판에 붙였다고 합니다.
실컷 뛰어놀기만 해도 모자랄 아이들이 운동회를 한다는 이유로 어른에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은 참으로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더군요.
"아이들의 목소리는 소음이 아니다." (고이즈미 신지로)
때마침 일본의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 의원(자민당)이 2023년 4월 12일 국회에서 당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질의응답에서 한 발언도 다시 조명되고 있습니다. 독일에 '아이들의 목소리는 소음이 아니다'라고 명시한 법이 있다는 점을 언급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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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4월 12일 국회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는 소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 의원 |
| ⓒ 일본 TBS 유튜브 |
정훈님, 저는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친구들과 대화하고 웃고, 운동장에서 환호성을 내지르는 그 모든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까 봐 걱정됩니다. '시끄럽다'고 짜증 내는 어른들 눈치를 보면서 놀게 된다면 그처럼 슬픈 일은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진정 '함께' 살고 있는가
한국의 저출생 현상은 '아이 키우기 어려운 환경'에서 비롯됐습니다. 이건 비단 금전적인 문제만은 아닙니다. 아이를 환대하지 않는 것도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입니다.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울거나 시끄럽게 구는 것에 대해서 한국은 굉장히 엄격합니다. 평범한 카페에 이렇다 할 설명 없이 '노키즈 존'이라는 팻말이 붙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들은 부모가 제재해도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기 일쑤입니다. 갓난아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부모 책임'이 된다는 점입니다.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더라도, 기차나 비행기 안 아이의 울음소리 등으로 생기는 갈등에 대해, 부모의 태도를 지적하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부모의 말을 아직 알아들을 수 없는 아기들에 대해선 '애초에 데리고 다니질 말았어야지'라는 댓글이 달리는 것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이러니 아이 키우기가 더욱 힘들 수밖에요. 이미 아이를 돌보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데, 밖에 나가면 아이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진 않을지 끊임없이 눈치를 봐야 하니 말입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선 육아에 전념하고 계시는 정훈님께서 가장 많이 체감하고 계시겠지요.
몇 년 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와 함께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된 한 여성이, 기내에 탄 승객 모두에게 작은 편지와 귀마개·사탕 등을 주면서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좋다", "센스가 좋다"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저는 오죽하면 저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어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아이에게 관대하지 못한 이유는, '빡빡한 사회'이기 때문일 겁니다. 미국 메릴랜드대 미셸 갤팬드 심리학과 교수는 2011년 33개국 6823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빡빡한 사회 지수'를 측정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33개국 중에 5위를 기록했습니다.
겔팬드 교수는 국가들을 '빡빡한 사회'와 '느슨한 사회'로 분류를 하고 그 차이점을 분석했는데, 빡빡한 사회는 '엄격한 규범이 많고 일탈 행위에 대한 관용이 낮은 문화'를, 느슨한 사회는 '사회 규범이 약하고 일탈 행위에 대한 관용이 높은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2014년 발표된 65개국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한국은 9위를 기록했습니다. (KBS 보도 참조)
빡빡한 사회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질서를 잘 지키고 사람들의 자기 통제력이 강합니다. 위기 극복 능력도 강할 수밖에요. 반면 이런 사회에선 아이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고, 아이의 행동조차 일종의 '일탈'처럼 여겨집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는 사회 규범을 익히지 못했고,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아이니까 괜찮다'라고 넘어가지 않는 것이 한국 사회의 모습입니다.
사회적 압력을 크게 느끼고 눈치를 많이 보는 한국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타인에게도 눈치를 요구합니다. 내가 질서를 잘 지키고 사니까, 남들도 그만큼 질서를 지켜주길 바라는 겁니다. 아이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아이를 돌보는 부모나 교사가 아이가 '어른처럼' 질서를 지키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처럼 이해와 관용이 사라진 환경은, 아이와 아이를 돌보는 이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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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빡빡한 사회'에선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
| ⓒ 연합=OGQ |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지사지'하면 남의 행동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빡빡한 사회'에선 이야기가 다릅니다. 어쨌든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규범이나 기준이 우선시됩니다. '나도 그러면 안 되고, 너도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개개인에게도 '규범을 꼭 지켜야 한다'라는 강한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더불어 자신이 실수하거나 튀는 행동을 했을 때 타인들이 나에 대해 공감하거나 도와줄 거라는 기대를 접게 만듭니다. 서로가 서로의 스트레스가 되어, 사회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생률 꼴찌, 자살률 1등의 불명예는 한국 사회가 '사람을 품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우기는커녕, 아이를 '일탈적 존재'로 바라보며 민원을 넣으며 비난합니다. 개인의 실수는 쉽게 용납되지 않고, 주류 질서에서 벗어나서 '다른 모습'으로 사는 것은 이해받기 힘듭니다. 그런 환경에서 개인은 쉽게 움츠러들고, 결국엔 고립되기까지 합니다.
대선 기간인지라 후보들이 다양한 공약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이나 발전을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공약에는 마음이 잘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대선 후보들이 '다 같이 어울려서 사는 법'에 대한 비전을 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와 타인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연대를 기반으로 한 느슨한 사회'로 전환할 순 없는 걸까요? 이를 위해 우리 사회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수한 '환대'의 경험일 겁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배척당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함께 돌보는 사회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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