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엔 세월에 찌든 누런 책, 그런데 가치가 상당하답니다

김병모 2025. 5. 22. 11:5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만해 기념관... 조선 독립과 자유와 행복을 사랑했던 만해 한용운

[김병모 기자]

남한산성 성벽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만해 기념관'이 눈에 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남한산성과 무슨 인연이 있길래. 지난 주말, 호기심을 가지고 기념관으로 들어서니 만해 한용운 관련 자료가 즐비하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연도별로 정리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생의 연보이다. 단지 <님의 침묵(沈默)>만이 아니었다.

만해 기념관 해설사로 자청한 한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만해 한용운 선생에 대해 사자후(獅子吼) 한다. 만해 한용운은 1897년 홍성군에서 태어나 1905년 27세 때 백담사에서 승려가 된다. 한용운은 일제강점기에 불교의 개혁과 대중화를 위해 「조선불교유신론」(1913년)과 「불교대전」(1914)을 집필하여 조선불교에 파란을 일으킨다.

만해 한용운은 백담사 연곡 스님을 만나 인연을 맺고 불교 경전과 참선에 몰두한다. 1917년 정사년 어느 날 밤 그는 백담사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마음의 문이 열려 깨달음을 얻은 순간 시(詩)를 지었다고 한다. 그것이 「오도송(悟道頌)」이다.

오도송(悟道頌) /만해 한용운

男兒到處是故鄕 (남아도처시고향)
幾人長在客愁中 (기인장재객수중)
一聲喝破三千界 (일성갈파삼천계)
雪裡桃花片片飛 (설리도화편편비)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이거늘
그걸 아는 사람 몇이나 되는가.
한 소리에 온 세상 크게 깨닫나니
눈 속에 복사꽃이 편편이 나부끼네

뿐만이 아니라, 만해 한용운 선생은 민족 대표 33인으로 1919년 3·1운동을 주도하기도 한다. 1919년 3월 민족 대표들은 3.1운동 독립선언서를 태화관에서 발표한 후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다.

그는 옥중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에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시체와 같고 평화가 없는 사람은 인생 최고의 고통이라 외친다. 나라를 잃고 자유마저 잃어버린 만해 한용운은 자유를 갈망하는 시를 옥중에 읊고 시름을 달랜다.

옥중음(獄中吟)/ 한용운

농산앵무능언어(隴山鸚鵡能言語)
괴아부급피조다(愧我不及彼鳥多)
웅변은혜침묵금(雄辯銀兮沈默金)
차금매진자유화(此金買盡自由花)

농산의 농무 새는 말을 잘도 하건만
새 만도 못한 이 몸이 서럽구나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
그 금 덩어리로 자유의 코트를 사고 싶구나.

만해 한용운은 옥중에 갖은 고초를 겪은 이후에도 조국 독립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출 옥을 후, 어느 날 육당 최남선이 길거리에서 아는 체하자 만해는 "내가 알고 있는 육당은 이미 죽었어."라고 무시하였다고 한다. 당시 만해 선생은 민족을 배신한 육당 최남선을 조선 사람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1926년 47세 무렵, 만해 한용운은 백담사 오세암으로 돌아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염원을 담은 불후의 명작 시(詩)를 써 내려간다. <님의 침묵(沈默)>이다.

말년, 만해 한용운은 서울특별시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조선총독부 건물과 등지고 살면서 조국 독립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보인다. 그는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듯 못다 한 구원의 길을 심우장에서 찾고자 한다. 지인들이 십시일반 마련한 거처로 알려져 있다. 만해 한용운은 조국 독립에 대한 치열한 삶 속에서도 심우장 뜰에 앉아 봄 햇살 맞으며 내면 깊숙이 스며있는 서정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 시가 바로 <춘주(春晝)>이다.

춘주(春晝, 따스한 봄날)/ 한용운

따슨 볕 등에 지고 유마경(維摩經)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 읽어 무삼하리요.
<중략>

해설사에 따르면 만해 한용운을 연구해 온 한 학자는 만해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심우장(尋牛莊)을 지켜보면서 만해의 업적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일념을 갖는다. 그 학자는 일념 하나로 우여곡절 끝에 남한산성 둘레 길에 새로운 '만해 기념관'을 세웠다고 한다.

나는 '만해 기념관'의 사료(史料)들에 대한 해설을 흥미롭게 들으면서 눈에 하나하나 담으려 했다. 특히, 세월에 찌든 누런 책 한 권이 눈에 띈다. 회동 서관에서 발행된 초판본(1926년 5월 20일) <님의 침묵> 시집이다. 해설사에 따르면 <님의 침묵> 시집 초판본의 가치가 상당하단다.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저항 시인이요 독립 투사인 한용운 선생은 1944년 6월 그토록 갈망하던 조국 광복과 민족의 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 한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한다.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 외쳤던 만해 한용운은 민족의 등불이 되어 남한산성 둘레 길에서 다시 태어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