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그림으로 기억되는 인왕산의 숨겨진 이야기들
[정윤섭 기자]
한양 도성을 오른쪽에서 든든히 지키고 있는 우백호 인왕산(仁王山, 338m). 인왕산 하면 떠오르는 것이 겸재 정선의 수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국보 216호)'이고 또 하나는'인왕산 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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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왕산 수성동계곡 겸재 정선의 작품 '수성동'의 배경이 된 곳이다 |
| ⓒ 정윤섭 |
338m의 그리 높지 않은 바위산에 호랑이가 살았을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차례 등장한다. 인왕산 호랑이를 검색해 보면 5개의 기사가 검색되는데, 맨 먼저 나오는 것이 1463년(세조 9년) 12월 9일 기사다. 내용은 '세조가 취로정 연못가에서 발견된 호랑이 발자욱을 추적하게 했다'는 것이다.
1463년(세조 9년) 12월 9일 계사
취로정(翠露亭) 연못가에 호랑이 발자취가 있었으므로, 밤에 입직(入直)한 여러 장수를 불러서 말하기를, "좌상(左廂)·우상(右廂)은 백악산(白岳山)·인왕산(仁王山 ) 등지를 몰이하라. 만약 살펴서 호랑이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내가 마땅히 친히 가겠다." 하였다.
세조는 왕권을 잡기 위해 단종을 페위시키고 단종의 복위를 도모한 사육신(死六臣)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임금이다. 세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관상>에서는 세조를 이리의 상이라고 말하며 다소 포악하게 그려지고 있다. 실록에도 나와 있듯이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직접 잡으려고 한 것을 보면 무인 기질의 상당히 대범한 성격을 가진 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기질을 보면 충분히 직접 호랑이를 잡으러 갈 것 같은데, 실제로 다음 해인 1464년 12월 기록에는 세조가 인왕산, 백악산에서 몰이를 하여 호랑이를 잡았다는 기사가 나온다. 1626년(인조 4년) 12월에는 인왕산 호랑이가 나타나 나무꾼을 잡아먹었다.
1626(인조 4년) 12월 17일 을묘
인왕산(仁王山 ) 곡성(曲城) 밖에서 호랑이가 나무꾼을 잡아먹고 이어 인경궁(仁慶宮) 후원으로 넘어 들어왔는데 원유사제조(苑囿司提調)와 도감대장(都監大將)·총융대장(摠戎大將)이 두 영(營)의 군병을 거느리고 뒤쫓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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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왕산 등산로 입구의 호랑이 상 인왕산 하면 호랑이가 생각날 정도로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던 산이다. |
| ⓒ 정윤섭 |
겸재 정선의 그림 배경지 수성동
인왕산을 오르려면 여러 방면의 등산로가 있지만 경복궁에서 약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하는 사직단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사직단은 동쪽의 종묘와 함께 조선왕조를 지키는 상징적인 곳이다. 종묘사직을 지키는 것은 곧 조선왕조를 지키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던 것이 다시 복원되어 있다.
이곳 사직단에서 국궁을 하는 곳인 황학정을 지나 20여 분 정도 가면 겸재의 그림 배경지가 된 수성동이 나온다. 인왕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바위 사이로 작은 계곡을 이루며 주변의 자연과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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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재 정선의 그림 수성동 인왕산 아래에 살았던 겸재가 수성동을 그린 것이다. |
| ⓒ 겸재 정선 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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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왕산 치마바위 인왕산의 주봉으로 중종과 왕비 단경왕후와의 슬픈 전설이 담겨있다. |
| ⓒ 정윤섭 |
중종은 연산군이 폐위된 중종반정에 의해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데 중종의 부인 단경왕후의 아버지 신수근은 연산군 때 좌의정까지 오른 인물로 반정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반정군의 입장에서 보면 역적에 해당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반정공신들에 의해 왕비에서 폐위되어 생이별을 당하게 된다.
이때 단경왕후는 인왕산 아래에 사는 세조의 부마 정현조의 집에 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경왕후는 이곳에 살며 중종이 보고 싶으면 치마바위에 왕이 좋아하는 분홍치마를 덮어놓으며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고 한다. 치마를 덮기 위해 산꼭대기 바위까지 올라갔을 리는 없겠지만 바위의 주름 잡힌 넓은 형태가 마치 치마처럼 생겨 이런 설화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궁중 비사가 전설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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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왕산 석굴암 인왕산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어서 석굴이 많다. 이곳에 불교와 민간신앙등이 결합된 기원처로 이용되고 있다. |
| ⓒ 정윤섭 |
인왕산은 경복궁을 방어하는 외성 역할을 하므로 인왕산 능선을 가로질러 성벽이 둘러쳐져 있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서 관문 역할을 하는 창의문에서 부터 시작하여 능선을 따라 이어진 이 성벽은 인왕산 남쪽 끝자락까지 이어지며 경복궁을 비롯한 도성 안의 궁궐을 보호한다.
성벽을 따라 인왕산 정상에 오르다 보면 도성안의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경복궁과 청와대를 받치고 있는 북악산, 500년 동안 조선의 도읍지가 된 경복궁도 한눈에 들어온다. 경복궁 바로 위는 청와대다. 지금은 주인을 잃고 개방이 되어있지만 한 나라의 권위와 정통성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다시 주인이 돌아와야 되지 않을까?
세종대왕 때의 용비어천가가 생각난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에도 아니 마를새 꽃 좋고 열매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아니 마를새 내를 이루어 바다에 이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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