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굶고 필름 산 고집불통 사진가…김영갑 20주기 찾은 인연들

올해는 사진작가 고(故) 김영갑(1957∼2005)의 20주기다. week&은 김영갑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루게릭병 판정을 받고 시한부 투병 중이던 김영갑을 2003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 week&이다. week& 보도 이후, 제주도의 비경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아 온 김영갑의 작품세계가 재조명됐고, 김영갑이 폐교를 고쳐 만든 사진 갤러리 ‘두모악’에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2005년 5월 29일 아침, 김영갑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영갑 20주기를 맞아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마침 갤러리에서 전시회 ‘김영갑, 인연 그리고 만남’ 전이 열리고 있다. 생전의 김영갑과 인연을 맺은 40명이 저마다 추억을 늘어놓았다. 전시장 벽에는 김영갑을 알린 22년 전 week& 지면도 걸려 있다.
고집불통 사진가

김영갑은 특히 오름에 빠졌다. 그 시절만 해도 오름은 찾는 이가 드물었다. 제주 사람이 마소 풀어 놓거나 산담 두르고 묘지로 쓰는 정도였다. 지금은 국민 관광지가 된 용눈이오름도 김영갑의 사진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용눈이오름은 최소 3번 이상의 분화 활동을 거친 복합화산이다. 높지는 않지만, 분화구를 에운 능선이 오묘하다. 하여 용눈이오름은 세상의 모든 곡선을 품은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그 곡선을 김영갑은 사랑했다.
김영갑이 루게릭병에 걸린 건 1990년대 중반이다. 어느 날부터 카메라가 무거워졌다고 한다. 루게릭병 판정을 받은 건 1999년이다. 더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된 김영갑은 제주 동쪽 끄트머리 삼달리의 폐교를 빌려 2003년 6월 사진 갤러리 ‘두모악’을 열었다. 그로부터 3개월쯤 지났을 때 week&이 찾아갔다.

루게릭병에 걸린 김영갑은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했다. 숟가락을 들 수도 없고 음식을 씹을 수도 없어 엎드려 죽을 핥아 먹었다. 그렇게 김영갑은 생의 의지를 불태웠다. 1999년 루게릭병을 판정한 의사는 “길어야 3년”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김영갑은 악착 같이 6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2005년 볕 좋은 봄날,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떠났다. 김영갑이 남긴 건 필름 20만 롤과 마당 공사가 채 끝나지 않은 갤러리였다.
영혼이 머문 자리




김영갑 20주기 전시회 ‘김영갑, 인연 그리고 만남’은 김영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차린 스무 번째 제사상이다. 생전의 김영갑과 인연이 있는 40명이 각자 김영갑을 추모하는 무언가를 전시회에 내놨다. 이를테면 작곡가 김희갑 작사가 양인자 부부는 노래 ‘김영갑씨’ 악보를, 시인 이생진은 ‘김영갑’이라는 제목의 시를 보냈다.
22년 전 두모악을 열었을 때부터 입구에 두었던 방명록을 죄 모아 놓고 있었는지 몰랐다. 100권이 훌쩍 넘는 낡은 노트 중에서 아무 노트나 펼쳐봤다. 한 자 한 자 눌러 쓴 글자 안에 ‘저마다의 김영갑’이 살아 있었다.


제주도=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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