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현의 시선] 주한미군 조정 시한폭탄이 째깍거린다

차세현 2025. 5. 22.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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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현 논설위원

최근 중동을 순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핵 포기를 압박하면서 “영원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이란이 핵을 포기하면 미국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두 국가가 수십 년에 걸쳐 동지로 남는 길이 험난한 여정인 이유다. 그래서 한국전쟁 이후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오늘에 이른 한미 동맹을 ‘위대한 동맹(Great Alliance)’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6월 새정부 출범 직후 터질 듯
주한미군의 대만 방어가 핵심
미 “동맹 전환점 현실 직시해야”

이런 한미 동맹에 또 한번 시련이 다가오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과 다른 지역으로의 전환 배치를 용인하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강화라는 시한폭탄이 6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곧 터질 기세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방한한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동아태 부차관보가 시한폭탄을 터뜨린 후 22년 만이다. 당시 동인이 9·11 테러와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었다면, 이번엔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가라앉지 않는(unsinken) 항공모함’이라고 표현했던 대만이다. 미국은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고 대만을 본토 방어 수준으로 방어하겠다는 국방전략지침(8월 수립 예정)을 예고한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부시 행정부 때인 2003~06년까지 이어졌던 주한미군 조정 작업은 사실상 한국의 일방적인 수용으로 막을 내렸다. 주한미군 규모는 1만명(당초 1만2500명 감축 예정이었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요구로 3단계 2500명 감축은 중단)이 줄어 현재 2만8500명 수준이 됐다. 일방적인 주한미군 이라크 파병 결정에 밀려 한국은 미국이 요구한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하기로 합의했다. 동시에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도 이뤄졌다. 전국에 흩어져있던 미군기지는 현재의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통폐합됐고, 전시작전권 환수도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는 자주파와 동맹파 간의 갈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보수층엔 ‘동북아 균형자론’을 섣부르게 내세우다 미국의 눈밖에 나 대북 안보태세를 약화시켰다는 이유로, 진보층엔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 미국의 요구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이유로 뭇매를 맞으면서 결국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2025년이 더욱 심상치 않은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여서다. 우선 주한미군 규모는 중국 견제와 대만 방어라는 전략적 목표를 감안할 때 줄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거리가 깡패(tyranny of distance)”라는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말대로, 중국 대륙의 코앞에 버티고 있는 ‘고정된(fixed) 항공모함’ 한국에서 굳이 병력을 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은 유사시 주한미군의 대만 방어 투입을 위해 전략적 유연성 강화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사실상의 주한미군 감축이다. 2006년 한미 공동성명에 따르면 주한미군 전환 배치에 사전 협의 의무가 없는데 미국은 이를 근거로 수시로 주한미군을 이동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2006년 공동성명의 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당시 한미는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예를 들면 양안 무력 충돌 등)에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마이클 디솜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후보는 얼마 전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에 대만에 대한 지원을 장려해야 한다”고 미국의 속내를 드러냈다. 일본은 이미 대만 방어를 사활적 국익이라고 선언하고 군사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집중하고 러시아, 북한, 이란의 위협은 유럽, 중동, 동아시아 동맹국들에 맡기겠다는 국방전략지침에 따라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과 국방예산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경우 북한 핵 억제는 미군이 담당하되, 재래식 공격 억제는 한국군이 맡는 식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수 정권에서 소극적이었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도 서둘러 조건을 맞추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시한폭탄은 새 정부 출범 후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터질 수 있다.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첫 방미 당시 트럼프가 예정에 없던 한미 FTA 재협상 폭탄을 터뜨렸던 것처럼 말이다. 양국 정상은 6월 중순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또는 하순 네덜란드 나토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브런슨 사령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의 새 지도자는 동맹의 전환점(juncture)에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이다. 한미 동맹의 시계는 또다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동지로 남는 길은 역시 험난하다.

차세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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