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cm 이상은 못 들어가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집'

김성수 2025. 5. 21. 09:3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장 작은 집에서 가장 긴 이름의 마을까지... 작고 무드 있는 나라, 웨일즈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학교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지난 달 아내와 함께 간 웨일즈 여행에 대해 나누고 싶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Great Britain에서 가장 작은 집’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기네스북에도 오른 세계 최소형 주택 앞애서
ⓒ 김성수
지난달, 아내와 함께 영국 웨일즈 북부를 여행했다. 국제결혼 부부인 우리는 각자 '백곰'과 '펭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키 큰 나는 백곰, 아담한 체구의 아내는 펭귄이다. 그런 우리가 마주한 웨일즈는 작고 조용하지만 유쾌하고, 무엇보다 '무드'가 있는 나라였다.

"여보, 이게 진짜 집이야?"

여행 첫날, 우리는 콘위(Conwy) 지역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집을 찾았다. 빨간 지붕 아래 조그만 문과 창이 달린 이 집은 기네스북에도 오른 진짜 '극소형 주택'이다. 182cm 이상은 입장 불가라는 경고 앞에서 181cm인 나는 간신히 통과했다.

집 내부는 인형집 같았다. 1층은 거실 겸 부엌, 2층엔 침대 하나. 계단은 '오르막'보다는 '등 긁힘'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실제 어부가 19세기까지 살았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내는 말했다.

"우리 이 집에서 한 달 살아볼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누구 죽일 일 있나…'

발음 포기 선언! 세계에서 가장 긴 마을 이름

다음날 방문한 곳은 이름만으로 유명한 마을, Llanfair­pwllgwyngyll­gogery­chwyrn­drobwll­llan­tysilio­gogo­goch. 굳이 영어로 번역하면 "St. Mary's Church in the hollow of white hazel near a rapid whirlpool and the Church of St. Tysilio near the red cave."이다. 한국어로 의역하자면 "급류 소용돌이 근처, 흰 개암나무 골짜기 안에 있는 성 마리아 교회와 붉은 동굴 옆 성 티실리오 교회가 있는 마을" 정도된다. 무려 58자의 이 마을 이름은 현지인도 너무 길어서 그냥 '란페어 PG'라고 줄여 부른다.

기념품 가게 주인은 쿨하게 밝혔다.

"이 이름, 19세기 기차역 유치를 위한 홍보용 말장난이에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 긴 이름이 적힌 간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긴 우리 부부는 '웨일즈식 마케팅'에 끄덕였다.
 웨일스(아니 세계)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마을에서
ⓒ 김성수
바닷바람 속 빅토리아 시대 풍경, 란두드노

셋째 날은 19세기 말 빅토리아 여왕 때 지은 해변 도시 란두드노(Llandudno)를 둘러봤다. 이곳은 19세기 들어 산업화와 1858년 철도 개통으로 해변 휴양지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웨일스의 여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877년에 완공된 웨일스에서 가장 긴 피어(해상 산책로)가 있으며, 오락실, 기념품상점, 아이스크림 가게 등으로 유명하다. 또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란두드노에 살던 앨리스 리델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설에 기반해, 앨리스 관련 조각상과 지도, 트레일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는 마치 오랜 흑백영화의 한 장면속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리고 해변 공원 곳곳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테마 조형물도 보였다. 체셔 고양이 동상 옆에서 아내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내가 물었다.

"춥지 않아?"

아내는 웃으며 답했다.

"아이스크림은 날씨가 아니라 '무드'야."

나는 한 입 베어 물고 이가 시려 찡그렸다. 아내는 덧붙였다.

"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어!")

(속으로) "차가운 아이스크림으로 뭘 얻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레이트 오름(Great Orme), 느림의 미학

이곳 해변 도시 중심에 위치한 그레이트 오름(Great Orme)은 고대 석기시대 유적지이자 장엄한 절벽이다. 너무도 느릿느릿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며 우리가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웨일즈인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로마, 아니 웨일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

정상에서 본 웨일스 북부 해안은 가히 장관이었다!

정상에서 내려와 우리는 강한 바닷바람에 몸을 휘청이는 펭귄과 백곰처럼 겨우 겨우 해변을 걸었다. 그때 날아온 갈매기 떼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았다.

아내가 소리쳤다.

"여보! 갈매기가 내 감자튀김 가져갔어!"

내가 답했다.

"그건 당신 점심이 아니라 갈매기 간식이었나 봐!"
 웨일즈의 마을
ⓒ 김성수
중세의 시간 속으로, 콘위 성

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콘위 성에 올랐다. 돌로 쌓인 가파른 계단과 성벽, 해자(Moat)는 마치 중세 게임 속에 들어온 듯한 풍경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을 때 아내가 물었다.

"가장 인상 깊은 게 뭐야?"

나는 대답했다.

"...아직 심장이 멈추지 않았다는 거."

성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은 마치 동화 속 장난감집처럼 옹기종기 너무 귀엽고 아름다웠다. 아내는 말했다.

"이 성은 영국이 웨일스를 정복하려고 만든 거지만, 지금은 하나가 됐잖아. 마치 우리처럼."

나는 조용히 웃었다. 국제결혼도 어쩌면 또 다른 '역사적 합병'인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가장 작은 집, 가장 긴 마을 이름, 가장 바닷바람 심한 해변과 가장 험한 성까지. 웨일즈는 작고, 길고, 바람 많고 동시에 조용하면서도 정말 '무드 '있는 나라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내가 물었다.

"여보, 다음엔 어디로 갈까?"

나는 대답했다.

"어디든 좋아. 다만, 집은 좀 큰 데로 가자. 백곰이 들어가기엔 좀 작더라."

[여행 팁] – 웨일즈에서 살아남기
가장 작은 집: 허리 풀고, 숨 얕게 쉬자.
Llanfair… 마을: 발음은 포기하자. (나처럼) 그냥 사진만 찍자.
란두드노 해변: 갈매기는 당신의 점심을 노린다.
콘위 성: 무릎보다 손잡이를 믿자.
웨일즈 날씨: (영국처럼)비는 일상. 우산은 기본.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