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가 되길 거부한, ‘헤다 가블러’ [D:헬로스테이지]
“헤다는 제가 가져본 것 중 최고였어요.” (조지 테스만)
“가블러 장군의 딸이잖아. (중략) 우리 조지가 헤다 가블러랑 결혼을 하다니.”(줄리아나)
헤다의 남편 조지 테스만과, 그의 고모인 줄리아나의 이 짧은 대화에서 헤다 가블러의 처지가 고스란히 비친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들의 집 안에서 헤다는 교수 임용을 앞둔 남편의 ‘트로피 와이프’에 불과하다.

LG아트센터가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만든 ‘헤다 가블러’는 헨리크 입센의 희곡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작품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헤다가 겪는 단 36시간을 그린다. 극 중 헤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트로피’이길 거부하는 인물이다. 조지 테스만과 결혼하면서 헤다 테스만으로 불리지만, 제목부터 결혼 전 이름인 ‘헤다 가블러’인 것부터가 그렇다.
6개월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헤다는 권태로운 일상을 보낸다. 사랑 없이 결혼한 남편과 어떠한 교감도 나누지 못하고, 원치 않는 임신은 헤다를 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던 헤다를 갉아먹는 우울증은, 성공해 나타난 옛 연인 에일레트를 조종하고 싶다는 파괴적 욕망으로 분출된다.
창문 하나 없이 거대한 삼면의 벽으로 둘러싸인 무대는 헤다를 압박하는 사회적 질서와 관습을 보여준다. 무채색의 집은 마치 생명을 박제하고 전시하는 박물관 같다. 유일하게 ‘빛’이 통하는 높은 천장에 뚫린 동그란 구멍도 감시의 눈처럼 작용한다. 퇴장 없이 무대 한편에 위치한 의자에 앉은 배우들의 시선 역시 헤다를 압박하는 요소다. 전인철 연출은 “이 공간(집)은 헤다의 정신적 감옥인 동시에 그의 내면세계”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가장 눈길을 끈 연출은 무대 위의 라이브 영상을 벽면에 띄우면서 헤다 역의 이영애의 표정을 모든 관객에게 밀접하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간 매체 연기를 선보여왔던 이영애의 강점이 무대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한 연출이다. 실제로 이영애는 자신을 따라 오는 카메라 앵글 속에서 냉소적인 표정을 짓기도, 초점 없는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다소 극단적 파괴 성향을 보이는 헤다의 행동엔 일견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에게 묘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를 벗어나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적 질서와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저항한다. 우리의 내면에도 각자의 ‘헤다 가블러’가 숨어 있다는 말이다. 1890년대 작품이 현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공감대 형성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헤다의 서사를 더 완전하게 만드는 건 연극계 베테랑 배우들이다. 조지 역의 김정호, 브라크 역의 지현준, 에일레트 역의 이승주, 테아 역의 백지원, 줄리아나 역의 이정미, 베르트 역의 조어진까지. 이들은 각자 헤다의 주변에 머물면서 극적으론 긴장감을,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선 안정감과 감칠맛을 더하는 역할을 해낸다. 공연은 6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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