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테토남, 에겐녀

태원준 2025. 5. 20.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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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논설위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그 어려운 사람의 속내를 어떻게든 알아보려 사람들은 많은 방법을 동원했다. 쉽고 편한 건 유형화여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구분하며 고안한 여러 기준 가운데 혈액형이 있었다. 제국주의 시절 우생학 가설에서 비롯된 혈액형 성격론은 1970년대 일본에서 ‘혈액형으로 알 수 있는 상성(相性)’이란 책이 유행한 뒤 한국에 들어왔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데도 널리 유통된 까닭을 학자들은 산업화로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며 빠르게 사람을 판단하려는 욕구가 커져서라고 추론했다.

아마 ‘태양인 이제마’(2002년)란 드라마의 영향이 컸을 텐데, 혈액형의 뒤를 이어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하는 동의보감의 사상체질 유형화가 인기를 끌었다. 맞춤형 치료를 위해 체질을 나눈 거였지만, 각각의 성격 진단까지 해놓은 터라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로 여겨졌다. 몇 해 전 등장한 MBTI는 혈액형과 사상체질의 서양 버전이었다. 분석심리학 모델에 기초해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나눈 이 심리검사는 2차 대전 후 남성의 공백을 메우며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출할 때 직업 선택을 도와주려 개발됐다. 그것이 2020년대 사회현상이 된 데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알려줄 수 있는 편의성과 함께 ‘나도 내가 궁금하다’는 자기이해 욕구가 한몫했다고 한다.

남을 판단하던 혈액형이 나를 파악하는 MBTI로 진화하는 동안에도 사람의 유형을 일컫는 숱한 조어가 출현했다.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엄친딸(엄마 친구 딸), 도파민 인간(즉각적 자극 추구형)…. 요즘은 ‘테토’와 ‘에겐’의 호르몬 구분법이 대세라고 한다.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많아 보이는 사람을 각각 뜻한다. 강인함·주도성이 눈에 띄면 테토남(녀), 섬세함·공감력이 보이면 에겐남(녀) 하면서 유형별 행동 특징과 자가진단법이 회자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갖은 방법을 동원해 사람을 판단하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것이 또 사람이라서, 이런 조어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나오지 싶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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