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남자 교사를 만난 적 있나요?
[문수아 기자]
학기 초 연수 시간이었다. 선임 교사가 말했다. "나와서 시범 보일 선생님 있으신가요?" 잠시 정적이 흐르던 그때, 초임 남자 교사가 손을 들며 앞으로 나섰다. "제가 남자답게 해보겠습니다!" 호기롭게 나선 그의 말에 선임 교사는 미소를 머금고 되물었다.
"남자다운 건, 어떤 건가요?"
학교에서 성 고정관념의 위험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배웠을 텐데 졸업하며 다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 후로 그는 '남자답게' '여자답게'가 아니라 교사 다우려 노력했다.
성평등과 다양성
우리 원은 생태어린이집이다. 생태어린이집은 자연과 사람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평등과 민주의 가치를 실천의 중심에 둔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 교사의 존재를 '특별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다양한 성별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균형 잡힌 자연스러움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남자 교사는 성평등과 다양성 교육을 살아있는 경험으로 만들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유아기에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은 아이의 삶에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남자 교사의 존재는 돌봄과 교육이 여성만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흔들 수 있다. 아빠와의 시간이 부족한 아이에게는 정서적 안정과 함께 성 역할 모델이 되어줄 수도 있다. 활동적인 놀이가 풍성해지고, 다양한 어른을 만난 아이는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서로 다른 성이지만 평등하게 관계 맺고 도움을 주고받는 경험은 교육기관 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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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축구시간 |
|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
남자 교사는 아이들과 몸을 부딪쳐 놀고, 과학 실험이나 코딩 수업에선 아이들보다 더 진지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남자 선생님'이라기보다는 그냥 '우리 선생님'으로 받아들인다. 여러 선생님 중 성이 다른 선생님이 하나 더 있는 것 뿐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섬세하지 못한 경우가 있고, 특히 어린 반에서는 아이들의 미세한 변화에 반응이 늦을 때도 있다. 교실 환경도 여자 교사에 비해 다소 어수선한 경우가 있지만, 이건 성별보다는 개별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여자 교사도 완벽하진 않으니, 아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단점이라 부르지 않아도 될 일이다.
다양성이 곧 교육의 질
우리 원만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남자 교사가 3년 이상 근무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실제로 유아교육기관에서 남자 교사를 찾는 건 쉽지 않다. 2022년 기준 전체 보육교사 중 남성은 고작 1.5%에 불과하다. 특히 0~2세 반에는 거의 없다는 게 현실이다. 보건복지부와 육아정책연구소 보고서에도 이 문제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유는 많다. 가장 큰 건 여전히 유아기는 돌봄의 비중이 높고, '보육은 여성의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남자 교사들은 불필요한 의심과 편견 어린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학기 초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철저히 관리하고 있음에도, 매년 한두 명의 부모가 여자아이 반에 남자 교사가 있다는 이유로 항의 전화를 해온다. 우리는 여자 보조교사가 투입 된다든지 하는 보완조치를 설명하고, 원을 믿고 기다려 달라고 당부한다. 다행히 단 한 번도 부모가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적은 없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혼자'라는 점이다. 같은 성별의 선배나 동료가 거의 없다. 95% 이상이 여성인 조직에서 남자 교사는 특별히 누가 차별하지 않아도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많다. 나와는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버텨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그들 자신도 유아기에 남자 선생님을 본 적이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여성의 저임금 노동으로 버티고 있는 사립유아교육기관의 문제는 남자교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사립기관은 인건비 지원이 없어 호봉제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연차가 쌓여도 최저임금 인상률 외에는 임금 상승이 없다. 군복무의 이점이라고 해봐야 예비군 훈련 시 대체교사가 나오는 정도뿐이다.
독일은 남자 유아교사 비율을 늘리기 위해 'MEHR Männer in Kitas(유치원에 더 많은 남성)'라는 국가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연방가족부와 유럽사회기금이 함께 추진한 이 사업은 남성 교사의 유입을 장려하고 성 고정관념을 해소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홍보 캠페인과 남교사 맞춤형 교육을 통해 남성 교사 비율을 약 6%까지 끌어올렸다. '다양성이 곧 교육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남성 교사를 유아교육의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하게 만든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 역시 아이들이 다양한 성인과 관계 맺으며 자랄 수 있도록 남자 교사를 환영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남자 교사가 유아교육기관에서 오래 버티기 어려운 구조는 우리가 바꾸어야 할 과제이다. 앞으로 우리 기관은 남자 교사가 더욱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유아교육 현장에서 남자 교사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 원의 교육 철학과 잘 맞는 남자 교사가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 다양한 교사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균형 잡힌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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