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빗장을 걸어버린 친구, 뒤늦게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김관식 기자]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50대가 돼버렸다. 금방 갔다. 내 20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고, 해도 간다. 그냥 가버린다. 30대도 20대를 따라갔다. 그렇게 내 시절 50대도 40대를 뒤따르고 있다.
그 사이, 다이어트하는 심정으로 모임을 상당히 줄였다. 고교시절부터 우정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모임 한 개와 40년 지기 친구 두 명 모임이 전부다. 세대를 거쳐가면서 이야깃거리도 절로 바뀌었다. '여자친구는 있는지' '적금은 들었는지' '경력은 잘 쌓고 있는지' '좋은 여행 장소 추천해 달라'는 얘기에서 '아이는 공부 잘하는지' '어느 학원이 좋은지' '야근은 많은지' '부모님 건강은 어떠신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제서야 모두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그동안 꽁꽁 숨겨 놓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툴툴 털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4050은 가정을 위해 일하고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박'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 즈음이면 자녀 대부분 고등학생 혹은 대학에 진학할 나이다. 부모님 건강을 챙겨야 하기에 최대한 직장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누구든 예외 없다.
은둔 중년은 정신병 아냐... 마음이 쉴 곳이 없는 4050
지난주, 3년 만에 고교 친구들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그중 두 명의 친구가 참석하지 못 했다. 아니, 그들은 이미 수개 월 전부터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카톡 프로필 사진도 사라졌고, SNS도 2년 전부터 전혀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그저 '바빠서 그러려니' 생각했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얼토당토 하지 않는 말을 그대로 믿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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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제1TV 추적 60분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 은둔 중년' 갈무리. |
| ⓒ KBS |
방송을 보니 최근 '고립·은둔생활인 지원센터'에는 70대 고령의 부모의 상담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집안에만 머물러있는 중년의 아들이 걱정돼 보다 못해 내민 절박한 손길이었던 것이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한 노모는 "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제 우울증 약을 주기도 했다. 강제 입원을 시키려 한다"며 아들을 타박했다. 그 부모에게 이곳 모세종 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드님은 정신병이 아니에요. 그 순간 아드님은 못 본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드님이 올바르게 사는 걸 원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걸 원하세요? (행복하게요.) 자녀분은 지금 편히 쉬고 싶어 해요.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 '지금 내 아이는 마음이 아픈 거다'라고요."
오랜 상담을 마친 부모는 "저는 쉬고 있다고, 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 아니라잖아요"라며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고, 여러 모로 뉘우친 점이 많네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순간, 남의 일이 아니라 생각했고 우리 주변의 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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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제1TV 추적 60분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 은둔 중년' 갈무리. |
| ⓒ KBS |
이들을 향한 댓글도 역시 문제다. 대부분 "부모가 밥 해주고 용돈 주니까 그렇지 혼자 살고 돈 없으면 결국 나가서 뭐라고 할 거다"라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이에 대해 김혜원 호서대학교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이들이 그걸 헤쳐나가는 것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라며 "부모가 지원 끊을 테니 너 마음대로 살아라 하고 말하면 악화되는 더 경우가 많다"라고 선을 그었다.
좋은 학벌, 훌륭한 직장 다녀도 예외 없는 이유
중년의 고립·은둔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다니는 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김혜원 교수가 고립은둔 상담기관을 운영할 당시 서울대, 카이스트, 한양대 졸업한 이들도 많았다고. 국내 대기업 재직하던 이도 상담기관을 찾았단다. 김 교수는 "이들이 거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갈아 넣었는데, 그 사이 그들에게는 그 고통이 조금씩 자라 결국 '이제는 못 하겠다'며 자포자기해 버리는 것"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물론, 이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 걸기까지 개인적인 기질이나 성향에 따른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은둔을 만드는 사회적 구조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고립·은둔에 최적화된 나라라'고 경고하고 있다.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와 정형화된 삶의 시간표, 끊임없이 뭔가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메시지가 쌓이고 쌓여 결국 우리 스스로 감내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에서만 고립·은둔 중년이 많을까. 이에 대해 방송에서는 세 가지 '시옷'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시도, 실수, 실패'다. 시간에 따라 일정한 길을 따라가야 하는 능력주의, 집단주의, 남들만큼 해내지 못하면 주위에서도, 스스로도 낙오자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은둔을 만든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의 허리를 지탱해야 하는 중년이 은둔하게 되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가정을 바로 세우고, 부모를 부양하지 못했다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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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제1TV 추적 60분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 은둔 중년' 갈무리. |
| ⓒ KBS |
은둔에 대한 오해를 깨야 할 때다. 게으르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번아웃이나 탈진한 상태, 완벽주의자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도 방송을 통해 알게 됐다. 또, 사회의 부적응자만이 아니라 누구든 은둔의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도 70대 노모가 40대 아들을 부양하는 사례처럼, 일본도 80대 노부모가 50대가 된 중장년을 케어하는 것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바로 '8050'문제인 것이다.
고립·은둔은 더 이상 특정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삶의 여정 속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4050 세대의 고립·은둔 문제에 대해서도 이제 제대로 된 조사와 통계, 사회적 정책이 필요한 때라 생각한다.
방송을 본 후 두 친구에게 카톡을 남겼고 다행히 내 메시지를 모두 확인했다. '예전에 그 OO 갈빗집서 맛있는 거나 먹자, 연락해라'라고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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