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를 '이별'이 아닌 '기억'으로 바꾸는 MZ 장례지도사

한시온 2025. 5. 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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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따뜻한 장례문화를 꿈꾸는 청년 장례지도사 김범진

[한시온 기자]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우린 매일 죽음과 가까워지지만 이를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죽음을 매일 마주하며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시신 수습부터 장례식장 선정, 입관, 발인까지 전 과정을 도맡는 장례지도사다. 단순히 의례를 수행하는 것이 아닌, 고인의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하는 일이다.

최근 이 산업에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례지도사 자격증 취득자는 2020년 1602명에서 2024년 2967명으로 85.2% 증가했다. 특히 상조 교육기관에서는 수강생 18명 중 8명이 20~30대일 정도로 청년 세대의 진입이 뚜렷하다. 지난 1일 만난 31살 장례지도사 김범진씨는 '죽음'을 단순한 장례 절차를 넘어, '기억에 남는 이별'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던 내가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까지
 지난 1일 만난 김범진 장례지도사
ⓒ 한시온
범진씨는 25살에 장례지도사 일을 시작해 어느덧 8년 차가 됐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업사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장사에도 도전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장의사로 일하던 친구의 권유로 이 일을 접하게 됐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현장 분위기도, 선배들도 너무 엄격했죠. 못하면 욕이 날아오고, 뒤통수를 맞기도 했어요. 장례는 예고 없이 발생하니까 언제든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합숙하며 몸에 익혀야 했죠. 너무 지쳐서 몸무게가 70kg에서 50kg 중반까지 빠졌어요. 고인을 자주 마주하다 보니 잔상이 눈앞에 남기도 했고요."

그는 처음 시신을 봤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두려움은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았다.

"맨 처음엔 도망갔어요. 임종하면 몸 안에서 피, 이물질 같은 복수라는 게 나와요. 고인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거예요. 처음엔 끔찍하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이 고인에게 뽀뽀를 하고 얼굴을 맞대고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는데 죄송스럽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죠."

장례지도사의 하루는 예고 없이 시작된다. 사망 소식을 들으면 즉시 현장으로 출동해 고인을 장례식장으로 모신다.

"사망 장소는 병원일 수도 있고, 자택이나 길거리일 수도 있어요. 구급대원이 사망을 확인하면 시신은 이송하지 않기 때문에, 저희가 현장에 가서 직접 모셔야 하죠. 부패가 심하거나 신체 훼손이 있는 경우엔 직접 업고 내려오기도 해요."

다음은 유족과의 상담이다. 장례 방식은 종교, 고인의 뜻, 가족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맞춤형 조율과 안내가 필수다.

"유가족이 슬픔을 마주하기도 전에, 저희는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꺼내야 해요. 비용과 절차를 설명해야 하는 첫날이 가장 어렵습니다."

둘째 날은 고인의 몸을 정갈히 씻기고, 수의를 입혀 관에 모시는 입관 절차가 진행된다. 이날은 빈소가 정식으로 운영되며, 본격적인 조문이 시작된다.

셋째 날은 고인을 떠나보내는 날이다. 매장을 택한 경우, 장지의 상태를 미리 확인하고 제사 준비를 점검한다. 화장이라면 수목장, 납골당 등 유골 안치 방식에 맞게 모든 절차를 함께 한다.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유족의 기억도 달라져요. 그래서 장례지도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소방관처럼 일하고도… '깜깜'한 장례, 복지는 없다

장례지도사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나 고정 휴무가 없이 팀원들과 순번을 정해 근무한다. 언제든 일이 생기면 바로 현장에 나가야 하기에 쉬는 날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임종에는 시간이 없어요. 24시간 대기해야 하죠. 이번 설에 시골에 내려가던 길이었어요. 고속도로에 올랐는데 일이 계속 발생해서 팀원들이 한 명씩 빠져나가는 거예요. 결국 차를 돌려 일하러 가야 했죠."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일정과 반복되는 긴장 속에 범진씨는 건강 이상을 겪었다. 심장이 아파서 발인 날에 한 번 쓰러진 그는 결국 심장 조영술을 받았다. 자다가도 벨소리에 벌떡 일어나는 생활이 이어지며, 불규칙한 수면으로 정신과 약까지 처방받았다고 했다.

"진짜 개인적인 시간은 하나도 없어요. 잠도 쪽잠 자고, 하루에 운전만 10시간 넘게 할 때도 있어요. 그렇게 일하면 1000만 원 넘게 벌기도 하죠. 하지만 고정적인 수입은 없어요. 못 벌면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될 때도 있어요. 사실 장례지도사뿐 아니라 어떤 일이든 이렇게 오래 일하면 가능한 거죠."

대부분의 장례지도사는 월급제가 아닌 건당 수당제로 일한다. 이 때문에 장례 건수가 줄어드는 비수기에는 수입이 크게 줄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범진씨는 이러한 구조적 불안정성을 지적하며, 정부가 장례를 공공적으로 관리하고 장례지도사에게 기본적인 급여를 지급하는 등 제도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소방관과 장례지도사의 유사점을 언급했다. 둘 다 불규칙한 호출에 대응해야 하고, 감정노동과 트라우마에 노출된 채 현장에서 일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방청은 소방공무원과 그 가족을 위해 심리상담, 복지 제휴 혜택 등 다양한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장례지도사 역시 이처럼 공적 지원 체계 안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제 친구 중에 소방관이 있어요. 그 친구들은 휴무도 정해져 있고, 주기적으로 정신과 진료도 받더라고요. 사회적으로도 훨씬 더 인정받고요. 우리도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연고자 장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시신을 입관하기 위해 대렴(시신을 이불로 싸서 베로 묶는 일)을 하는 모습
ⓒ 장례지도사 김범진 유튜브 채널
범진씨는 수많은 고인을 모셔왔지만 그중에서도 무연고자 문제는 가장 안타깝고도 심각한 현실로 꼽는다. 무연고자는 유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경제적 이유로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경우가 많아 장례 절차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들이 사망하면 조문 절차 없이 곧바로 입관과 화장이 이뤄진다. 고인이 남긴 재산은 모두 국가에 귀속되지만, 정작 장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매우 부족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비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해요. 무연고자 찾는 기간이 보통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안치실에 모셔야 하잖아요. 안치실 비용이 하루에 10만 원에서 15만 원 정도니까 한 달이면 300만 원이 훌쩍 넘어요. 여기에 수의, 입관, 화장, 장례차 섭외 등을 포함하면 부족한 예산이죠."

그는 정성껏 장례를 치러드리고 싶어도 현실은 사비를 들여야 가능한 상황이라 이 점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한다.

"장례지도사들 중에 무연고자 시신 오면 '어차피 유가족도 없으니까 대충해도 된다'고 생각해 몸도 안 닦이고 그냥 관에 넣어서 비인간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 누구에게 이 장례를 맡겨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어요."

범진씨는 무연고자 장례가 지금처럼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며, 무연고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제도적 개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요. 그러니 이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 거죠. 하지만 무연고자에 대한 대우와 지원은 분명히 바뀌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꼭 이 문제를 국회에 청원할 생각입니다."

"고인을 위한 진짜 장례를 만들고 싶어요"

"죽음에 대한 인식이 조금만 편해지면, 장례문화도 자연스럽게 바뀌지 않을까요?"

청년 장례지도사 범진씨는 말한다.

아직까지 한국의 장례문화는 유교적 전통의 영향으로 조문 예절, 상복 착용, 제사와 같은 절차에서 형식성과 보수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관이나 수의 같은 장례용품의 가격 정보는 제한적이고, '내 밥그릇을 뺏긴다'는 인식 때문에 장례업계 내부는 여전히 폐쇄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젊은 인재들이 장례업계에 발을 들이고 있다. 장례 관련 학과와 교육원이 생기고, 상조업체들도 MZ세대 채용에 적극 나서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범진씨 역시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을 통해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한다.

"밸런스 게임처럼 '수목장 vs. 납골당', '수의 vs. 평상복' 같은 질문을 던지는 장례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가족끼리 보면서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잖아요."
 범진 씨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은 대부분 20~30대의 또래로, 이들 중에는 오랜 친구 사이도 있다.
ⓒ 장례지도사 김범진 유튜브 채널
그가 꿈꾸는 장례식은 결혼식처럼 고인의 삶을 함께 기리는 자리다.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나누고, 영정사진 외에도 생전의 모습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함께 보는 따뜻한 장례식.

"꼭 비싼 수의가 아니어도, 고인이 원했던 옷을 입히는 게 더 의미 있는 장례가 아닐까요?"

죽음 이후를 책임지는 역할임에도, 장례지도사는 여전히 '시체닦이'와 같은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에 놓여 있다. 범진씨는 '시체 만진 손'이라며 악수를 거절당한 적도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짧지 않은 인터뷰를 마치고 악수를 청하자 그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수많은 어려움과 편견 속에서도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온 그 손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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