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발전 축소·송전 병목…남의 일 아닌 스페인 대정전
한국 전력망 점검

스페인 대정전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스페인 전역과 포르투갈·프랑스 일부까지 당시 스페인 전력 공급의 60%가량이 끊기며 발생했다. 전화는 물론 신호등, 결제 시스템, 엘리베이터 같은 도시 기초 시설의 작동이 10여 시간가량 멈췄다. 인공호흡기가 중단돼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유럽 최대 규모 정전 사고다. 원인으로 스페인의 높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태양광 53%, 풍력 11%),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 송전망에 대한 사이버 공격 등이 거론됐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다.
스페인을 비롯한 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국은 국가 간 전력 거래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과잉 전력을 이웃 국가로 보내거나, 부족할 때 수입한다. 한국의 전력망은 스페인보다 취약하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국은 외부로 전력을 보낼 수도, 수혈받을 수도 없어 에너지 공급의 유연성과 자체 대응력이 생존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상당수 전력을 육지에 의존하는 제주도에서 2006년 대규모 정전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 배의 닻이 해저 송전 케이블을 건드려 2시간 30분 동안 섬 전체가 마비됐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만큼 정전 사고를 막으려면 유연한 전력 공급이 중요하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처럼 장시간 일정 출력을 유지해야 하거나 재생에너지처럼 날씨에 따라 출력을 제어하기 어려운 ‘경직성 전원’ 발전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발전 비중은 원자력 31.7%, 재생에너지 10.5%다. 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이 비중은 2038년 원자력 35.2%, 재생에너지 29.2%로 늘어난다.
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수급을 조절할 수 있어 ‘유연성 전원’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은 같은 기간 28.1%에서 10.6%로 줄어든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페인도 정전 사고 이후 LNG 발전을 긴급 가동해 복구에 나섰다”며 “LNG 발전 비중을 축소하는 속도를 조절해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과도기에 ‘브릿지 발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든 전력을 수요처까지 충분히 보내지 못하는 ‘송전 병목’ 현상도 문제다. 대표적으로 동해안 신한울 원전 등이 건설을 마쳤지만, 수도권까지 전력을 보낼 고압 송전망 확충이 지연돼 출력을 제한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집중된 전남과 서남해권은 발전 용량이 넘쳐 2031년까지 추가 설비 진입이 어렵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 공급이 넘쳐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없다면 오히려 전력망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며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려면 송전 인프라부터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스페인 대정전 사고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선 안 된다”며 “‘재생에너지를 줄이고 원전을 늘려야 한다’는 식의 주장 대신 (어차피 가야 할) 재생에너지 확대를 두고 어떻게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할지 생산적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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