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던 80년대 민주화운동, 이젠 사랑하게 될 것 같다
[김혜진]
나는 고등학생운동을 잘 모른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후배가 보내준 <고등학생운동사>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80년대 후반은 내가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그 시기에 그만큼 치열하게 고등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책을 읽고서야 인식하게 된 것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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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생연합집회 1989년 7월 20일 광고협 주최 전교조 지지 고등학생연합집회 |
| ⓒ 김대현 |
그런데 이 책 <고등학생운동사>는 그 민주화운동에서 지워져 버린 중요한 조각, 고등학생 운동의 역사를 기어이 찾아내서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의 민주화운동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구성했다. 그 시기를 온몸으로 통과했던 고등학생 운동 당사자들의 치열함.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공간을 민주적으로 바꾸기 위해 다른 이들을 조직하는 힘들었던 과정, 학교와 가족과 사회의 억압 속에서도 당당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살려냈다. 이 책을 읽고서야 80년대 민주화운동이 의미를 전유해 버린 일부만의 운동이 아니라, 그 시기를 살아온 많은 이들의 치열한 역사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조금은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에게 영향을 준 활동가 권정기, 김소연, 조한진희
이 책을 읽고, 내가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많은 활동가들이 고등학생 운동을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의 저자 몇 분과 함께 활동했던 경험이 있다. 이 분들의 운동 궤적을 알지는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던 분들이다. 구로지역 현장에서 만났던 권정기 동지, 기륭전자 투쟁을 했고 현재는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일하는 김소연 동지 그리고 아프면 쉴 권리 운동을 하면서 만난 조한진희 동지이다. 이 동지들이 모두 <고등학생운동사>의 필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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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착기에 올라간 김소연 비정규직투쟁의 역사를 쓴 기륭전자 투쟁 |
| ⓒ 정택용 |
윤석열 계엄 직후인 12월 10일, 청소년운동 단위들은 '청소년 시국선언'을 조직하여 발표했다. 이렇게 빠르게 시국선언을 조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청소년운동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활동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청소년 참정권, 학생인권법 제정 등 꾸준한 활동이 있었다. 윤석열퇴진 투쟁의 광장에서 '윤석열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여러 인권단체와 진보정당 그리고 노동단체들이 공동행동을 했다. 그 때 그 네트워크의 한 축을 든든히 받치고 있는 동지들이 청소년운동 활동가들이었다. 학교 안팎의 공간에서 청소년운동을 이어가는 활동가들이 있기에 고등학생 운동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온 것 같다.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렇다 하더라도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고등학생 운동사가 그 자체로 오롯이 다시 쓰인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운동이 잊힌다는 것은 그 운동이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가 아직 현실화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학교의 민주화와 참교육을 위한 운동을 오로지 '전교조' 운동으로만 기억한다. 나는 1989년 5월, 전교조가 창립하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갖고 있다. 전교조의 노력으로 참교육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촌지가 없어졌고 학교도 많이 변화했다. 하지만 전교조를 '응원'했던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학교를 민주화 하고자 하는 한 주체로서의 '학생'의 존재가 사라진 지금, "학교는 과연 민주적인가?"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고운'은 사라지고 전교조만 남았으나
지금 사회는 '학생의 인권'과 '교권'의 대립이라는 허구적인 대립을 만들어서 학생들의 주체성을 훼손한다. 여전히 학생은 미숙한 존재이고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고등학생운동의 주체로서의 '학생'이 사라지거나 잊히고 '전교조'만 운동의 주체로 인식되는 이상 이런 현실은 필연적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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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생운동사』(조한진희 외, 동녘, 2025) 40여년 만에 고운을 기록한 책이 출간 되었다 |
| ⓒ 동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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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생운동사> 북토크에서 발언 중인 필자 김혜진 출간 기념 북토크 "고립된 개인의 기억에서 사회적 기록으로" 2025년 4월 19일 |
| ⓒ 청소년인권운동연대지음 |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혜진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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