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서 만난 5.18의 힘... 혼자 갔지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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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빵 |
| ⓒ 김아영 |
아시아문화전당으로 가는 길, 5.18 기념 행사 현수막을 보았다. 그 중 눈에 띄었던 건 "세계인권도시포럼"이었다. 사실 김대중컨벤션센터에 직접 가고 싶었는데 게으름을 못 이겨 온라인 중계로 만족해 버린 이틀 전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오늘의 전야제만큼은 현장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여유 있게 약속장소에 도착했으나 동생이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기다리는 동안 배가 고파 궁전제과에 들렀다. '5월 광주 나눔 세일'로 전 상품 10% 할인 중이었다. 빵을 들고 민주광장을 어슬렁거렸다. 옛 도청 앞에는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1980년대의 모습 그대로인 버스와 택시가 있었다. 금남로 일대에는 캐노피 천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행사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궁전제과에는 '6.3'이 찍힌 선거빵이 진열되어 있었다. 괜히 다른 빵을 사 먹은 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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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품점 방명록 |
| ⓒ 김아영 |
그 말에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모른다. 사실, 가장 큰 빚을 진 것은 타지 사람이 아니라 5.18 이후 태어난 광주 시민들, 특히 5.18에 무심했던 나 같은 젊은이들이었음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민주광장으로 나오니 무대에서 합창이 진행 중이었다. 동생이 지나가며 "되게 잘 하신다"고 했고, 나도 동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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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사에서 나눠준 주먹밥과 단무지 |
| ⓒ 김아영 |
펜을 받아 서명을 하려고 하는데 부스에 계신 두 분이 내 얼굴에 밥풀이 묻었다고 알려주셨다. 부끄러워서 얼른 볼을 문질러봤지만, 엉뚱한 곳만 짚었나 보다. 한 분이 밥풀을 떼어 주려고 손을 뻗으셨을 때, 다행히 내가 먼저 발견했다.
감사 인사를 남기고 다른 곳으로 가니, 사람들이 모두 맨손으로 주먹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유일하게 종이컵을 가로로 찢어 입을 파묻고 먹고 있었다. 그러니 얼굴에 밥풀이나 묻히고 다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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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닥에 맘껏 낙서하는 아이 |
| ⓒ 김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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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표현하는 시민들 |
| ⓒ 김아영 |
그 후, '민주 결사대' 프로그램 부스를 발견했다. 사실 이것도 친구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우리 이거 해볼래?"하고 줄을 서는 것을 보고 슬쩍 뒤에 따라 붙은 것이었다. 휴대전화를 보느라 잠깐 정신이 팔린 사이 앞줄이 이동했고, 어떤 여자 두 분이 오셔서 부드럽게 "줄 서신 거 맞으시죠?"하고 물었다. 내가 얼른 앞으로 붙자 그분들은 바로 내 뒤에 섰다.
민주 결사대 프로그램은 소책자에 적힌 임무를 하나씩 완수하며 도장을 받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임무는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빈칸을 채우는 것이었다. 옆에 가사가 적힌 악보도 있고, 라디오에서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어 실패할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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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결사대 두 번째 임무. 민주 열사 사진과 이름 맞추기. |
| ⓒ 김아영 |
그러자 운영자가 다시 질문을 덧붙였다. "245의 뜻은?" 이라고 묻자 남자 분은 "빌딩에 있는 탄흔 수"라고 답했다. 운영자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전일빌딩 9층에 가서 전시를 보고 도장을 받아 오세요"라고 말했다. 전에 245의 뜻을 들었음에도 바로 떠올리지 못한 나는 또 한 번 부끄러움을 느꼈다.
전일빌딩은 예전에 가본 적이 있었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때는 평일이라 한산했는데, 오늘은 승강기 세 대 앞에 모두 대기줄이 있었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단체로 온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 교대 분들 여기로 오세요!" 예전에 조용히 관람했던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전시관이 붐비는 것이 광주의 역사가 덜 쓸쓸하게 느껴져서 훨씬 좋았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 친구끼리 온 사람, 가족끼리 온 사람, 단체로 온 사람들, 우리는 모두 다른 곳에서 왔지만 슬픈 역사 앞에서 한 마음이었다. 한 아버지는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딸아이가 헬기 사격 영상을 제대로 보지 않자, 아이의 등을 떠밀며 이렇게 말했다. "가서 봐. 봐야 알지." 그 말에 내 등도 함께 떠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선물 뽑기를 하러 갔는데, 아직 1, 2등이 나오지 않았다는 말에 욕심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숫자 5를 뽑았는데, 5등이 나왔다. 그런데 선물이 내가 원하던 배지였다. 역시 5는 행운의 숫자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제야 소책자의 맨 앞장을 보게 되었다.
'당신은 우리의 5월을 미래로 이어줄 빛의 아이입니다.
그날 우리에게는 끝내 완수하지 못한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남긴 기억을 모아 그날의 임무를 완수해 주세요.'
그날의 임무는 결국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을 미래로 이어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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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고에서 출발하는 행진대 |
| ⓒ 김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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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진대에게 손을 흔드는 시민들 |
| ⓒ 김아영 |
광주고에 도착하니 거의 4시였다. 30분 정도 기념식을 진행하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동구, 북구, 남구, 서구, 광산구, 교육청 등 단체 별로 질서 있게 학교를 빠져 나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몇몇이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들며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45년이 아니라, 100년이 지나도 5.18의 정신은 대대로 이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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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물패 공연을 보는 시민들 |
| ⓒ 김아영 |
그분이 가신 후, 아이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손바닥을 내밀었고 아이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신나서 손뼉을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한 아이가 자연스럽게 광주 시민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았다. 동시에 나는 이 기념행사를 단단히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축제는 과거로 사람들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를 현재로, 더 나아가 미래로 이어가는 자리였다.
인파가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며, 전혀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사람멀미를 느꼈을 텐데,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시민들의 열정은 질서와 평화를 깨뜨리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리 사람이 많아져도 혼잡함보다는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졌다.
종소리가 울리자, 한순간 풍물패들이 조용해졌다. 이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외딴 멜로디가 흐르는데, 내 귀엔 마치 하늘에서 그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곧 첫 번째 밴드 공연이 시작되었고, 아쉽게도 나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보컬이 "우리가 이긴다!"고 선창하며 시민들이 화답하는 소리가 꽤 오랫동안 들렸다. 지하 상가를 지나며 사람들이 전두환을 입에 올리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광주 이야기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분명 혼자 갔지만, 그곳에서 나는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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