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빗발치는데도 습지에 도시 세운 이유, 이거였구나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도읍이다. 123년은 오로지 사비(泗沘)의 시간이었다. 성곽을 둘러 왕궁을 가두지 않았다. 모든 걸 열어두고 융화에 힘썼다. 격자형 가로망이다. 해양 제국을 꿈꾼 한 사내의 웅혼한 꿈이 금강을 낀 신도시로 구현되었다. 이처럼 열린 도읍을 어디부터 봐야 할까.
먼저 하나로 모든 걸 들여다볼 수 있는 무엇을 찾기로 한다. 충남 국립부여박물관으로 걸음을 놓는다. 백제 문화의 정수인 '금동대향로'를 보기 위해서다.
|
|
| ▲ 금동대향로 능산리 고분군의, 위덕왕 때 지은 사찰 터에서 발견되었다. |
| ⓒ 충청남도청 |
꼭대기 바로 밑에서 5인의 악사가 피리·비파·퉁소·거문고·북으로 백제 노래를 합주 중이다. 맨 꼭대기, 긴꼬리의 봉황이 턱 밑에 여의주를 끼고 날개를 펴 멀리 날아갈 채비 중이다. 봉황의 존재로 향로는 안정감과 아름다움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역시 백제'란 말이 나온다. 절제된 금색으로 치장한 향로는 그 정교함이나 조화로움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런 걸작을 만나는 호사는, 누구 덕분이란 말인가? 당시 아비 잃은 아들의 한이 하늘에 가닿아서였을까?
아비 성왕이 쌓은 나성 밖 능산리에, 아들이 능원을 만들어 아비를 모신다. 아비의 죽음에서 아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비애를 맛보았다. 위급에 내몰린 아들을 구원차, 몸소 전쟁에 나선 아비가 신라의 기습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관산성 전투는 냉혹 그 자체였다. 아들 위덕왕이 애절함으로 아비를 기리는 절을 짓고, 아비 넋을 위로할 향로를 들인다. 살아생전 아비의 꿈이 새겨진 최고의 걸작이어야 했다.
해양 제국으로 뻗어나갈 발판, 여기여야 했다
|
|
| ▲ 부여(1872년지방지도_부분) 백마강을 중심으로 주변의 관청과 경승지 등을 간략하게 묘사하였다. 사비성의 흔적이 약하게 남았다. |
| ⓒ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 |
맞춤한 경사의 부소산이 방어에 유리한 여건을 갖췄다. 바닷물이 닿는 사비하는 천혜의 해자(적의 접근을 막는 성곽시설)로 손색이 없다. 넓게 열린 습지는 백성에게 피해 줄 염려도 없었고, 내륙 깊숙한 강가는 방어에도 유리하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장점일 뿐, 여기에 백성이 살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수시로 물이 차오르는 습지였기 때문이다.
|
|
| ▲ 궁남지 무왕이 파고 물을 채워 뱃놀이 했다고 하나, 사비성 조성 당시부터 물이 고인 곳을 파 두었을 개연성이 높다. |
| ⓒ 부여군청 |
물기 축축한 진흙 덕을 보다... 도읍 세우는 데 들어간 노동력
향로가 발굴된 절터가 단정하다. 사비가 습지였으니, 물기 축축한 진흙은 향로가 1300년 동안 부식되지 않을 필요충분조건이었다.
|
|
| ▲ 관북리와 부소산 백제 왕궁의 중심지인 관북리와 부소산성. 관북리에서 격자형 가로망과 'U형'의 물길 유적이 발굴되었다. |
| ⓒ 부여군청 |
당시 오랜 공사에 물난리가 빈번했다. 고구려의 침범도 무참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반대와 난관을 극복해 냈다. 무른 습지를 결국 도시로 바꿔냈다.
|
|
| ▲ 동 나성 사비의 동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쌓은 나성. 사진 중하단의 네모난 터에서 '금동대향로'가 출토되었다. 멀리 부소산 아래로 부여가 보인다. |
| ⓒ 부여군청 |
사비를 계획하고 건설하는데 십수 년이 소요됐다. 국력은 물론 백성의 헌신적인 공력이 있었다. 갖은 난관을 극복하는데 정림사 중심의 불심이 큰 도움이었다. 이제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적으로 고구려와 신라는 물론 바다 건너 당과 왜까지 경영할 웅대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제국의 기틀이다.
처음부터 원대하게 구상한 신도시다. 제아무리 완벽한 계획이라도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허사다. 도읍 세우는 어마어마한 공사에 백성의 노동력은 필수다. 나라의 스승으로 칭송받는 '겸익' 선사가 나섰다.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내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
|
| ▲ 정림사 사비 한가운데, 도읍 조성에 마음을 모아 준 백성을 위해 지은 사찰이다. |
| ⓒ 충청남도청 |
|
|
| ▲ 국제항 구드래 성왕이 사비를 구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시설. 나중 국제 무역항으로 활발한 교역이 이뤄진다. |
| ⓒ 부여군청 |
물길을 내 상하수도체계를 만들다
다진 땅에 가로를 구획하여 필지를 나눴다. 나뉜 필지에 적정한 용도를 계획한다. 격자형을 기본으로 가로망이 짜였다. 가로를 따라 'U자' 형 물길을 내어 도읍이 쓸 상하수도체계를 구성했다.
|
|
| ▲ 부여 전경 백마강과 부소산성, 그 아래로 격자형 가로망이 중첩된 도시 형상이 뚜렷하다. 사진 중하단에 정림사가 보인다. |
| ⓒ 부여군청 |
|
|
| ▲ 부소산성 흙을 다지는 판축공법과 나뭇가지를 넣어 다지는 부엽토공법을 활용, 2중으로 쌓은 성벽. |
| ⓒ 부여군청 |
긴 세월 쏟아부은 공력에 대한 보답일까. 이후 신라와 연합해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는다. 신라 진흥왕의 배신으로 비록 꿈이 깨졌어도, 한성에서 쫓겨온 근인은 해소한 셈이다.
새 도읍은 '날이 밝는다'는 뜻의 扶餘(부여)로 '새벽의 터전'을 담아냈다. 아비 성왕은 이곳에서 백제 부흥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나라를 강고한 기틀에 재건하고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그의 꿈처럼 백제는 해양 제국으로 거듭난다. 특히 왜에게 불교를 비롯한 각종 문물을 전수한다. 흔적으로 남은 사비성에서 1400년 전 한 아비의 웅대한 꿈이 보인다.
그렇듯 계획된 신도시가 곧은 길과 연못, 절터와 나성으로 남았다. 1400년 된 그의 꿈이, 충남 부여에서 여전한 생명력으로 시민의 삶 속에 꿈틀거리고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주당 입당 김상욱 "폭주하면 직언, 바른 길 가면 앞장설 것"
- "감히 광주에?"... 경찰 대동하고도 5.18 묘역서 쫓겨난 인권위원장
- 이재명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하자, 2026년에 국민 뜻 물어야"
- <소년이 온다> 읽었다면 '소년 버스'도 추천합니다
- 존엄하게 살 권리 지켜줄 이 정책...다시 기본소득을 주목한다
- 대통령에 경고 날린 대법원장... 지금 대법원 보면 뭐라 할까
- 존엄하게 살 권리 지켜줄 이 정책...다시 기본소득을 주목한다
- 친구로부터 온 마지막 메시지... 저는 그를 잊을 수 없습니다
- 김혜경, '법카 10만 4천 원 기소' 상고... 발끈한 국힘
- 화난 NC 팬들, 펼침막 시위 ... 창원시 "안전-복귀 위해 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