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게 없는’ 자들이 세상을 뒤엎는다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역사적인 증거는 없지만 일본 역사 드라마를 보면 자주 언급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성병인 매독(梅毒)이다. 문신 관료와 달리 군인인 사무라이는 가정을 떠나 먼 전쟁터에서 전투를 벌이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젊은 남성이 모여 생활하는 전쟁터에는 매춘이 성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1500년경 서양에서 새로운 성병인 매독이 일본에 전염되었는데 매독은 전염도 빠를 뿐 아니라 수년이 경과하면 대부분 감염자가 비참한 모습으로 사망하는 질병이었다. 즉 단순히 질병으로 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모가 추하게 변화하고 문란한 성생활이 세상에 드러나 불명예스럽게 죽는다는 의미다.
경제학에서 잘 알려진 개념으로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있다. 한 가지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이 잃게 되는 것. 죽음이 두려운 이유도 바로 기회비용 때문이다. 지금 내가 죽어 인생이 끝나면 앞으로 남아서 살아갈 수 있었던 즐거운 나날이 모두 사라진다. 이때 죽지 않고 살아남아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죽음의 기회비용이 된다. 그런데 매독에 걸린 사무라이의 경우 지금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고 해도 어차피 매독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죽게 될 뿐 아니라 외모가 허물어지면서 사람들 손가락질을 당해야 하니 기회비용이 오히려 죽음보다 작았던 셈이다.
매독을 바로 치유해주는 페니실린이 1943년에 판매되었는데 아마 일본 사무라이들이 지금 살아 있다면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신라의 유명한 학자를 뽑으라고 하면 대부분 최치원을 떠올린다.
당나라에서 과거를 보고 장원급제한 최치원이 당나라로 건너간 것은 그의 나이 겨우 12세 때 일이다. 그 후 6년간 각고의 노력을 한 결과 빈궁과에 장원급제를 한다. 당나라 유학을 갈 정도라면 신라에서 최치원 집안은 상당한 지위를 누렸을 텐데 어째서 12살 어린 자식을 언어와 문화가 다른 당나라로 보냈던 것일까? 최치원은 어째서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를 했던 것일까?
최치원의 신분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신라는 왕족인 성골과 진골이 다스리던 나라였다. 모든 고위 관직은 성골과 진골이 차지했다. 그다음 왕족이 아닌 귀족이 6두품이었다. 최치원은 성골이나 진골이 아닌 6두품 신분으로 태어나 능력은 뛰어났지만 관료로서 출세길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당나라로 가서 장원급제를 한 후 다시 신라로 돌아오면 6두품임에도 불구하고 출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을 테다.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은 결국 6두품이 할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아찬 벼슬까지는 했지만 그 위로는 올라가지 못했다. 당나라에서 장원급제를 했음에도 신라의 성골, 진골을 넘을 수는 없었다.
최치원을 보고 당나라로 유학을 간 인재 중 최승우와 최언위가 있었다. 당나라에서 장원은 아니지만 두 사람 모두 과거에 급제를 해 최치원과 더불어 ‘신라 삼최’라는 이름을 얻었다. 최치원의 후배였던 두 사람은 최치원이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신라에서 출세길이 막힌 것을 보고 결국 최승우는 후백제 견훤의 밑으로 들어가고 최언위는 고려 왕건 밑으로 들어가서 중용되었다. 신라의 삼최는 어차피 6두품이라는 신분 때문에 신라에 남아봤자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었으므로 당나라로 유학 가 고생하는 기회비용이 낮았던 것이다. 아마 신라에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성골이나 진골로 태어났다면 그 모든 것을 버리는 기회비용이 높아 절대로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당나라 유학생 중 경주 김씨가 없었던 것은 이런 이유일 테다.
일본 사무라이든 신라 삼최이든 결국 상식을 깨는 혁신적인 또는 혁명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그런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행동으로 잃게 되는 기회비용이 낮다는 점이다.
낮은 기회비용의 대표적인 인물로 조선의 정도전, 한명회, 유자광, 홍경래도 꼽을 수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정도전은 외조모가 노비 출신이었다. 정도전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지만 외조모 출신이 비천했던 정도전은 개경 귀족 가문 출신 관료들에게 밀려났을 것이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출신 성분이 아니었던 셈.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이성계 장군에게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자고 건의했던 것이 아닐까.
한명회는 좋은 가문 출신이긴 했지만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고 힘든 생활을 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시험에 약해서인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 음서 제도를 통해 38세 늦은 나이에 겨우 얻은 지위가 개경 경복궁 궁지기였다. 38세에 궁지기 직책을 얻었다는 것은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게 되었다는 의미와도 같았을 것이다. 수양대군을 따라 혁명을 일으키다 설사 실패해서 죽더라도 별로 잃을 것이 없다 생각했을 법하다. 역시 기회비용이 작았다는 얘기다.
유자광은 더 심했다. 친모가 노비였던 유자광은 조선 사회에서는 벼슬을 할 수 없는 서자 신분이었다. 과거를 볼 수 없던 유자광은 군인이 되어 궁궐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었다가 세조 눈에 띄어 이시애의 난 등에서 무공을 세우고 비로소 출세길에 올랐다. 그러나 출신 성분 때문에 한계가 명확한 처지였다. 그때 유자광이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왕실 역적을 찾아내 공신이 되는 것이었다. 서자 신분이더라도 왕실을 해치려는 역적을 찾아내면 그 공이 인정되어 출세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이 장군을 옥사시킨 사건을 시작으로 연산군 때는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인 데 이어 연산군을 몰아내는 중종반정에까지 가담했다. 무고한 선비를 많이 죽인 이유로 유자광은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어차피 천대받는 서자 신분이었던 유자광 입장에서는 선비를 모함했다고 받는 비난의 기회비용이 절대 크지 않았을 것이다.
홍경래의 난을 일으킨 조선 후기 평안도 사람 홍경래도 낮은 기회비용을 가진 대표적 인물이다. 청나라와의 무역으로 부유하고 인재가 넘치던 평안도였지만 평안도 사람들은 과거에 급제해도 관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 붙고도 사또 벼슬 한 번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홍경래뿐 아니라 당시 평안도 사람들 불만은 대단했다. 한양 정부에 반기를 들고 난을 일으킨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많은 경제학자의 존경을 받는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의 유명한 이론으로 ‘최소 극대화 기준(Maximin criterion)’이 있다. 여기서 최소(min)를 극대(maxi)화한다는 의미는 어떤 사회가 살기 좋은가 아닌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그 사회에서 경제적 신분적으로 가장 하층인 사람인 ‘최소(min)’를 비교해서 그 최소가 가장 잘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통치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가장 하층민인 ‘최소’가 잘 살도록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정도전, 한명회, 유자광, 홍경래는 분명히 자신이 최소라고 느꼈을 것이라 짐작된다.
불우한 처지에 놓여서 나는 어차피 잃을 것이 없다는 낮은 기회비용을 가진 사람들을 잘 살펴야 한다는 롤스의 최소 극대화 기준을 모든 리더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0호 (2025.05.21~2025.05.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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