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목 쓰던 76년 전 수건 생산…타월의 역사가 되다 [비크닉]
■ b.멘터리
「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
한때 수건은 ‘돈 주고 사기 아까운 물건’이었습니다. 욕실에 걸려 대충 물기나 닦는 소모품에 가까웠고, ‘축 개업’ ‘축 팔순’과 같은 문구가 박힌 답례품으로 받아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최근 수건 시장에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민무늬를 넘어서 바둑판·스트라이프 등의 디자인이 담기기 시작하더니 강렬한 색깔의 진한 초록·파랑·노랑, 심지어 검정 수건까지 등장합니다. 최근엔 수건 재질로 만든 옷까지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실제로 수건 소비도 늘고 있습니다. 무신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편집숍 ‘29CM’에선 지난해 5월 수건 거래량이 전년 대비 170%나 증가했다고 발표했어요. 인스타그램엔 ‘수건답례’ 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10만 건에 달하고, 서울 성수동이나 용산에선 수건 전문 팝업스토어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고급 수건 브랜드 ‘테클라’ ‘테토’까지 시장에 뛰어들며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고 있죠.

이런 변화 속에서 새삼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송월(2018년 사명을 송월타올에서 변경)’입니다. 이곳은 지난 76년 간 사업을 이어 온 ‘수건의 대명사’로, 브랜드의 역사가 곧 한국 수건의 역사라 할 수 있죠. 긴 세월 한 우물을 판 내공 덕에 최근에는 시장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도전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비크닉에서는 송월이 걸어온 길을 통해 수건의 달라진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려 해요. 브랜드의 박창환(38) 상무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76년 간 국내 수건 업계 독보적 1위
송월의 시작은 1949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32살의 창업주 고 박동수 회장은 동생 박찬수와 함께 수건 제조에 뛰어들었죠. 그전까지 박 회장은 미군 부대에서 나온 양말을 표백해서 팔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미군의 누런 수건을 표백하면서 자체적으로 수건을 만들어보기로 했죠. 수건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당시엔 ‘광목’이라 불리던 천으로 몸을 닦곤 했다고 합니다. 그가 세운 ‘송월타올공업사’는 처음엔 가내수공업 수준이었지만, 1966년 제조공장을 세우면서 기업형 생산 체계를 갖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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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과의 끈끈한 유대로 IMF 위기 극복
업력만으로 1위를 지킬 수는 없습니다. 송월은 늘 현장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대리점에서 말이죠. 1992년부터 송월을 맡은 박병대 회장(박찬수의 아들)은 전국 100여 곳의 대리점을 직접 찾아가 수건 디자인을 논의하고 피드백을 받아 제품을 개발하곤 했습니다. 대리점은 소비자 취향을 가장 가까이에서 포착하는 현장의 눈이었기 때문이죠.
이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송월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여전히 대리점을 통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커머스가 중심이 된 요즘, 많은 기업이 온라인으로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D2C(Direct to Customer) 전략을 택하지만, 송월은 오히려 대리점과 함께 다양한 제품을 기획하며 생태계를 유지합니다. 매년 전국 대리점주와 국내·외 워크숍을 진행하며 끈끈한 관계도 다지죠.

남다른 유대감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외환위기로 부도가 난 송월을 다시 일으킨 건 전국 대리점들이었죠. 이들은 자발적으로 나서 ‘송월타올 살리기 운동본부’를 결성해 약 30억~40억원 규모의 한 달 치 매출을 선수금으로 지급했죠. 송월은 이 지원 덕분에 5년 만에 부채를 모두 갚고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송월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2000년대부터 ‘기프트 회사’로서의 정체성을 굳히기 위해 우산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수건처럼 우산에도 행사 문구를 찍어 답례품 품목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엔 베트남 공장을 세우면서 제조 효율화를 높였고, 일본 시장 수출도 준비하게 됐죠.
수건에서 의류까지…욕실 밖 넘어 패션 아이템으로

개인 수건 구매가 늘면서 프리미엄 수건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장에 1만원이 훌쩍 넘는 고급 수건이 한 달에 2만~3만장씩 팔리고 있습니다. 송월은 이미 2010년 ‘호텔 수건’ 콘셉트의 제품으로 홈쇼핑 첫 방송에서만 2만장 이상을 판매하면서 프리미엄 시장에 선제 대응했습니다.

최근 송월은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3년에 자체 캐릭터 ‘타올쿤’을 선보이며 브랜드를 재정비했고, 최근엔 수건 소재를 활용한 의류·주방용품·가방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죠. 타올쿤 캐릭터를 기획한 박 상무는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2년 연속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참여하고, 최근엔 하루 평균 1~2건의 브랜드 협업 문의가 들어온다고 해요. 2023년부터 2년간 유니클로·빈폴부터 아난티·웜그레이테일 등 14개 기업과 콜라보를 진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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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만든다’는 기업 철학
수건이 욕실을 넘어 거실로, 소모품에서 감성을 담은 패션 아이템으로 확장된 건 단지 소비 변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일상 속에서도 나를 표현하고 싶은 시대가 왔고, 수건 역시 그 표현의 도구로 진화한 겁니다. 그 흐름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간파하는 건 브랜드의 몫이죠.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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