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시기 혼자 보낸 딸, 엄마 편지 읽다가 펑펑 운 사연
[권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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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된 양육은 통제보다 격려와 기다림에 있지 책겉그림 |
| ⓒ 다산책방 |
그토록 위대한 종교개혁자였지만 그는 평생 우울증을 안고 살았어요. 그의 부모가 그를 좌지우지하려고 한 이유 때문이었죠. 농부로 태어나 검소함과 부지런함으로 광산업주로 성공한 아버지는 자신의 무지함과 품위 없는 과거를 보상받고자 루터에게 상류층 교육을 시켰고 법관으로 키워내고자 했죠.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루터가 호두 한 알을 몰래 먹다가 걸렸을 때 피가 나도록 어머니에게 맞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로 인해 루터는 '엄격한 하나님', 곧 두려운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었죠.
그만큼 이 땅에는 부모의 훈육방식이 자식에게 엄격한 경우가 많죠. 부모의 바람대로 자식이 커 주길 바라면서 통제하는 방식 말이죠. 그것이 자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분노를 유발케 하고 평생 불화로 지내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도 말이죠.
특별히 자녀의 감정이 럭비공처럼 튄다고 하는 사춘기 시절에는 더더욱 신중해야 할 텐데 그걸 생각하지 않고 부모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죠.
"이제 네가 다 커서 내가 이야기할 사람이 생겼네.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다고. 내가 여태 어떻게 살았는지 전부 다 말해줄게. 나중에 네게도 딸이 생기면 날 떠올리면서 그때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할 거야.
그렇다고 네가 내 딸이라는 이유로 날 용서할 필요는 없어. 너는 날 위해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어, 알았지? 어차피 나는 널 위해 뭐든지 다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니까."(260쪽)
고은지의 〈마법 같은 언어〉(2025년 3월 출간)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이민 2세로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서 태어난 그녀가 15살 때 엄마와 헤어진 후 9년 만에 다시금 만나 나눈 대화였으니 얼마나 감정이 복 받쳐 올랐을까요?
가장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오빠와 함께 미국에 남아 고군분투하며 외로움을 이겨내야 했었죠. 우울증과 공황 증세와 자살 충동을 겪을 수밖에 없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죠.
그만큼 이 책은 한국에 있는 부모와 떨어져 미국에서 생활한 그녀의 10대 시절의 경험담을 담은 에세이라 할 수 있죠. 그녀는 어떻게 그걸 극복했을까요? 아버지가 한국의 대기업 임원 자리를 제안받아 떠날 때, 엄마가 따라 나섰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일주일마다 한 통의 편지를 딸에게 써 보냈죠.
사춘기 시절에도 그녀는 그걸 읽었지만, 그땐 나중에 커서 대학교 졸업논문심사를 앞두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번역하면서 읽은 한국말 수준과는 전혀 달랐죠. 나이가 들어 엄마가 써 보낸 49통의 손 편지를 읽고 번역하면서, 엄마의 마음에 더 깊이 다가섰고 응어리진 마음이 녹아내렸던 거죠. 이 책의 제목을 '마법 같은 언어'로 정한 것도 그런 연유겠죠.
놀라운 것은 이 책에는 제주도의 대학살을 목격한 그녀의 할머니 '구미코'에 대한 상처와 흔적도 담겨 있다는 점이에요. 그녀의 어머니가 한국의 삶을 묘사하면서 용서를 구한 편지들이 그녀에게 한국의 뼈아픈 현대사를 알게 한 계기가 된 거죠.
1948년 4월 3일의 제주도 학살사건의 피해 현장을 목격한 할머니의 삶이 그거에요. 그 부분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떠올리게 하죠.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우리말 '노엽게하다'는 헬라어 파로르기조(παροργίζω)는 '∼옆에'를 뜻하는 '파라'(παρά)와 '몹시 화나게하다'(exasperate)는 '아르기조'(ὀργίζω,마5:22)의 합성어예요. 구약의 히브리어로는 '아네프'(אָנַףּ,신1:37), '카아스'(כָּעַס,신4:25), '카짜프'(קָצַף,출16:20)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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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와 자녀(자료사진). |
| ⓒ drag88 on Unsplash |
'이게 다 널 위한 거야' 하면서 자신의 소유물처럼 취급하고 자녀와 상의도 없이 부모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는 모습 말이죠. 그것이 자녀를 노엽게 하는 길인데도 막무가내로 밀어 부치는 부모가 많죠.
작가 고은지의 이 책은 워싱턴주 도서상, 퍼시픽 노스웨스트 도서상, AAAS 도서상을 수상했어요. 2020년엔 펜오픈북상 후보에 올랐었고요. 그녀는 드라마 〈파친코〉의 작가진으로 참여하기도 했죠. 그야말로 미국의 신예작가인데 청소년기 시절에 그런 어려움을 겪었을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사춘기 시절에 그녀의 엄마가 한국으로 떠나지 않고 함께 보살폈다면 어땠을까,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그려봅니다.
그래도 일주일마다 편지를 써서 위로한 게 큰 격려로 다가왔겠죠. 그리고 9년의 기다림 끝에 온 가족이 다시금 한데 뭉쳐 살게 되었다고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참된 양육'은, 통제보다는 격려와 기다림에 있지 않나 싶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s://brunch.co.kr/@littlechrist12/39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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