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 임명 시도, 결코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학교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한국과 영국의 비극적인 과거사를 대하는 모습에 대해 나누고 싶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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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영기 |
| ⓒ 김성수 |
지난 14일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5·18 당시 신군부의 핵심인물이자 학살의 책임자인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을 선대위 상임고문으로 인선했다가 비난 여론에 직면해 5시간 만에 철회한 사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과거사 청산에 둔감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문수는 몰랐다, 실무 과정의 부주의였다. 이렇게 해명해도 내란 목적 살인범 정호용을 선대위 내부에서 추천했었단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영국은 어떻게 진실을 마주했는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비슷한 국가폭력 사건으로 영국의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 떠오른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09074
지난 1972년 1월,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에서 영국 공수부대가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14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엔 시위대가 폭력을 먼저 행사했다는 '위저리 보고서'로 군을 옹호했지만, 26년 뒤인 지난 1998년,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전면 재조사를 지시했다.
그 후 12년에 걸쳐 1400여 명의 증언을 청취하고, 3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새빌 보고서'가 작성됐다. 보고서는 군이 아무런 경고 없이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 2010년 당시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의회에서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며 "이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학살이었습니다"고 고백했다. 단순한 말 뿐 아니라, 위조된 보고서를 폐기하고 유족에게 배상하며 실질적인 조치를 병행했다.
5·18 진상은 아직도 오리무중
반면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공식적으로 191명이 희생된 것으로 발표되었지만, 유족단체 조사에 따르면 600명이 넘고, 실종자와 부상 후 사망자까지 포함하면 1000명 이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발포명령자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학살책임자인 전두환은 숨을 거둘 때까지 그 책임을 지지 않았다.
불행한 것은 현재까지 5·18 정신을 부정하고 왜곡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 아래서는 '북한군 개입설'을 유포하고, 피해자들을 '괴물'로 매도하는 발언이 공공연히 나왔다. 국가기관인 국가보훈처가 5.18민주화운동을 '종북 공작'으로 묘사한 DVD를 배포한 사건, 교과서에서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이라 고치려 했던 과거, 일본군 위안부를 '성노예'가 아닌 '단순한 위안부'로 축소하려 했던 정책들까지. 이것은 피해자를 지우고, 가해자를 위한 망각을 강요하는 퇴행적 국가, 윤석열 정권의 민낯이었다.
민주주의는 기억 위에 세워진다
학살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의 공식적 사과, 피해자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이라는 구체적인 후속조치다. 그래야만 진정한 치유와 화해가 가능해지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다.
영국은 14명의 희생자를 위해 12년간의 조사를 벌였고, 총리가 국회에서 사죄하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반면 우리는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국가적 비극에 대해 여전히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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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사법부 수호 및 민주당 규탄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정호용 같은 학살책임자를 고문으로 앉히려 했던 김문수 후보의 처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과거사 청산에 무감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광주의 아픔이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민주국가, 인권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분명히 묻는 성숙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광주5.18은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인 역사다. 모든 국민이 함께 기억하고, 함께 아파하며, 함께 진실을 추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깊은 상처를 딛고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45년이 지난 지금도 유족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고, 진실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이런 가운데 김문수 후보의 정호용 임명 시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우리는 이 퇴행을 결코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
진실을 말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가 기억하고 분노하며 진실을 외쳐야 할 이유는 아직도 충분하다.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은 더 늦기 전에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고, 광주시민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그것이 한 인간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다.
피해자 앞에 무릎 꿇고, 가해자에게는 분명한 책임을 묻는 것. 그것이 민주국가의 최소한의 양심이며, 광주의 외침에 우리가 응답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우리가 침묵한다면, 역사는 또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오는 6월 3일 우리가 던지는 소중한 한 표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 뿐 아니라, 우리의 과거, 우리의 역사까지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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