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주민들이 '발전소 폐쇄' 태안으로 향하는 까닭
[재임]
한때는 석탄산업으로 부흥했던 산골 마을, 강원도 태백에서 자랐다. 동네 어른들은 "떠돌이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옛 시절의 농담을 두런거리곤 했다. 하지만 내가 유년을 보낸 2000년대 태백은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이후 이미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엔 카지노가 들어서있었다.
폐광을 딛고 '지역 활성화'를 꿈꾼다는 명분 아래 들어선 카지노는 표면적으로는 도시의 산뜻한 탈바꿈처럼 보였지만, 이면은 조금 달랐다. 한때 하청 탄광 굴을 누비던 광부들과 그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던 가족들에게 돌아온 것은 카지노 호텔 객실을 돌며 청소하는 비정규직 일자리였다.
월급은 형편없었다. 급식비를 밀리던 친구, 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컴컴한 친구의 방에 초대되었던 기억, 폐병으로 광부를 그만두고 머그잔 가득 소주를 채워 마시던 친구의 아빠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는 그 의미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지만, 지역 공동체를 떠받치던 산업이 뿌리부터 전환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란 것을 그 스산한 풍경들을 통해 짐작하곤 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삶 속에서 전기요금 앞에, 식비 앞에, 아픈 가족의 병원비 앞에 빈곤은 모두의 현실로 훌쩍 다가온다는 사실 또한 사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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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활동가들. |
| ⓒ 빈곤사회연대 |
확실한 대안도 내걸고 있다.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고용 보장,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다. 문 닫은 직장을 뒤로하고 홀로 빈곤을 떠안거나, 지구와 삶을 망치는 화력 발전소를 계속 가동하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발전 노동자들은 말한다.
5월 31일, 나는 이 정의로운 전환의 요구에 힘을 보태기 위해 태안으로 향한다. 이 여정에 동자동 쪽방 주민들도 함께한다. 쪽방 주민들이 나의 제안에 흔쾌히 응한 까닭은, 우리의 요구가 연결되어있다는 감각 때문일 것이다. 광산이 닫히며 카지노로 바뀌었던 태백의 기억은, 지금 발전소 폐쇄 앞의 지역사회, 그리고 도시 빈민의 기후재난과 맞물려 반복된다.
기후위기 속 쪽방의 일상은 재난이다. 폭염에는 바깥보다 더운 쪽방에서 버너에 밥을 짓고, 장마에는 우산을 쓴 채 공용 화장실을 다녀오고, 겨울에는 계단에 빙판이 생긴다. 전기장판이라도 들이려 하면 전기세 명목으로 월세가 만 원, 이만 원씩 오른다. 낡은 합판 벽에 냉기가 스며드는 집에서는 에너지 바우처도 무용지물이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말한다. 기후재난의 해법은 냉난방비 지원이나 무더위 쉼터 운영 같은 일시적 처방이 아니라, 누구나 '집다운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 구조적 변화에 있다고. 그래서 몇 해 전에는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생색내기식 대책이 아닌, 저렴한 임대료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선언이었다.
기후위기 앞에 손쉬운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이 우리의 연결고리다. 열악한 주거는 방치하고 무더위 쉼터 개소일만 늘리는 세상, 고용대책 없이 발전소 문부터 닫아버리는 세상. 이 둘은 거울처럼 닮아있다. 삶을 위한 필수적 지출이 과도해질 때 모두에게 빈곤은 가까워진다. 집도, 에너지도 이윤을 따라 흘러갈 때가 그렇다.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고용 보장을 요구한다. 더 커다란 싸움인 셈이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미래의 공공임대주택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친구를 초대해도 충분한 공간과 햇살이 잘 드는 창, 나만 쓸 수 있는 화장실 같은 것들. 태안의 동료들을 만난다면, 또 다른 상상이 보태지지 않을까. 공공임대주택의 에너지원을 무엇으로 할 지, 그것이 지구와 생명을, 또 가난한 지갑을 착취하는 에너지여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모습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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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5.31 대행진 안내 포스터. |
| ⓒ 정의로운전환2025공동행동 |
https://mature-violin-f2c.notion.site/531-1de8542c4cda808193dec75b30c4d71d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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