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전, 600쪽 '구속요청서' 냈는데…동탄女 납치·살해 전말

사실혼 관계의 남성에게 수차례 폭행당하다 끝내 납치·살해된 여성이 숨지기 25일 전 600쪽이 넘는 ‘구속수사 요청서’를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속한 수사와 피해자 보호 조치가 미흡해 납치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자 담당 경찰서는 제출 서류의 양과 수사관 휴직 및 교체 등을 이유로 신속한 조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과는 화성동탄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대한 수사 감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사흘 전 12일 오전 10시 41분쯤 A씨(30대)가 화성 동탄신도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B씨(30대)를 자신의 아파트로 납치해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발생 25일 전 지난달 17일 피해자 B씨의 변호인은 지난 1년간 A씨의 폭행 당시 녹음 파일과 녹취록과 함께 구속수사해 달라고 요청하는 고소보충이유서를 제출했다. 지난 4월 4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지 2주 만이었다. 전체 600쪽 넘는 분량이었다고 한다. 서면에는 B씨가 “신고와 고소에 따른 보복이 우려된다. A씨를 구속한 상태로 수사해달라”고 요청하는 직접 쓴 글도 포함됐다.
앞서 B씨는 지난해 9월과 지난 2월, 3월 총 세 차례에 걸쳐 A씨를 폭행 등으로 112 신고를 했다. 세 번째 신고를 받고 경찰은 B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A씨에게 100m 이내 접근금지와 통신 연락 제한 등 긴급 임시조치를 했다.
경찰은 피해자 보호 임시 숙소에 입주하라고 권유했으나 B씨가 “지인 집에서 머무르겠다. A씨가 주소를 모른다”고 해서 안전한지 전화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B씨 측이 낸 서류를 확인하는 과정에 화성동탄서 담당 수사관은 개인 사정으로 휴직해 다른 수사관으로 교체됐다.
교체된 수사관은 지난 2일과 8일 두 차례 전화를 걸어 A씨의 접근 여부 등을 B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후에 구속영장 신청이 이뤄지지 않았고 지난 12일 A씨는 사건 당일 외출하는 B씨를 렌터카로 납치한 뒤 두건을 씌우고 두 손을 결박해 7㎞가량 떨어진 본인 거주지로 이동했다. 이후 차량에서 내려 도망치는 B씨를 살해한 뒤 자살했다.
동탄서 관계자는 “고소보충이유서를 받고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했으나 제출된 자료가 방대해 검토할 시간이 필요했다”며 “공교롭게도 담당 수사관이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휴직해 새 수사관이 검토하던 중에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 감찰을 통해 신고 내용에 비해 수사가 늦어졌는지 등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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