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하지 않고 배우는 사람, 기안84에게서 배운 것

최은영 2025. 5. 1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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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4>

[최은영 기자]

예능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웃음이 흐르고, 음악이 깔리고, 소리 높여 감탄하는 얼굴이 정해진 시간마다 반복된다.

그 안에서 <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4>(이하 태세계)는 다소 비틀린 궤도를 그린다. 웃기지만 고요하고, 화려하지만 낡았다.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기안84(본명 김희민)는 거의 장르가 되어간다.

기안이 있는 장면은 언제나 미묘하다. 대본이 있어도 없는 것 같고, 편집이 되어도 조리정연하지 않다. 그 모호함이 태세계를 시즌4까지 끌고 왔다. 누군가는 '당황스럽다'고 말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건 좀 다르다'고 멈춰 선다.

요즘 관찰 예능에는 단단하게 닫힌 창이 있다. 수십억 짜리 집에서 햇살을 받으며, 구운 아보카도 위에 계란을 얹는 아침, 세면대 옆에 놓인 화장품은 순식간에 완판된다.

태세계 시즌4는 처음부터 다르게 시작한다. 출발지는 네팔, 셰르파 마을이다. 셰르파는 흔히 '짐꾼'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셰르파는 네팔 소수민족 이름이다. 민족 이름이 직업 이름이 됐다. 짐을 옮긴다는 일은 직업이고, 셰르파는 사람이다.

무릎보다 더 낮게

기안은 네팔에서 청소년 셰르파 타망과 라이를 만난다. 그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그 말이 내게 닿았다. 한국에서 자주 듣던 말은 아니다. 할 말을 고민하는 대신, 돈이 많은 어른이 되겠다는 말만 돌아다니던 풍경 속에서 그들의 말은 낯설 만큼 똑바로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타망과 라이는 하루에 서너 번 고산지대를 오르내린다. 발등이 터진 신발을 신고, 30-40kg 짐을 머리끈에 의지해 옮긴다. 그러면서도 눈은 자주 웃는다.

기안은 그런 타망의 짐을 들며 "너는 매일 들지만 나는 오늘 하루만 드니까, 내가 끝까지 들게"라고 말한다. 문장은 간단한데, 어깨에 무게가 걸린다.

기안은 방송 대상까지 받았다. 그래도 셰르파의 삶을 빌려 체험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하루의 루틴을 배우고, 허리를 숙인다. 일부 예능이 배경 지식을 가르치고, 다른 프로그램이 관광지를 보여주는 동안 태세계는 무릎보다 더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

진짜 사람, 진짜 고도
▲ 태어난김에 세계일주 시즌4 기안이라는 장르를 만들고 있는 태세계
ⓒ MBC
짧은 시간에 진심이 통했을까. 타망과 라이는 기안을 좋아한다. 낯선 말투와 행동이 익숙해질 때쯤, 셋은 1박 2일 동안 함께 도보 배달을 나선다. 기안은 중간까지만 가도 된다는 말을 거절하고 끝까지 간다. 그에게는 쉬운 여정이 아니다. 걷는 내내 숨을 고르고, 때때로 길을 되짚는다. 그 녹화 후 앓아누웠다는 말이 이해된다.

기안은 청소년 셰르파를 동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 배우는 태도를 선택한다. 기안의 자유로움은 가볍지 않고, 종종 무거워진다. 이전 시즌에서 '본능적으로 움직인다'는 말이 따라다녔다면, 이번 시즌에서는 '무겁게 따라간다'는 말이 어울릴 거 같다.

화려한 조명이 없는 장면에서 기안은 힘들어하고, 묵묵히 걷고, 다른 사람의 짐을 나른다. 웃기지 않지만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스승의 날에 아이들 선생님에게 기프티콘을 보냈다. 간편한 선물이다. 그런데 문득, 히말라야 어딘가에서 오늘도 짐을 옮기고 있을 타망과 라이가 떠올랐다. 1박 2일이라는 시간 안에 그들이 나눠준 배움은 간단한 모바일 선물로는 환산이 안 된다.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그들이 진짜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문이 막히는 감동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대신, 삶을 바라보는 각도를 조금씩 바꿔주는 장면이 있다. 태세계 시즌4의 시작은 그런 장면으로 채워졌다.

예능이라고 쓰고, 다큐라고 읽게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기안의 여전한 엉뚱함에 웃음 짓다가도 낯선 이해가 함께 스며들었다. 앞으로 남은 태세계 여정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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