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앞에선 푸틴보다 시진핑? 김정은 먼저 손 내밀까 [심상찮은 北 쌀값 폭등②]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쌀 값이 최근 몇 년 새 눈에 띄게 상승한 배경에는 중국과의 관계 경색 등 대외 변수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기간 러시아가 파병·무기 지원 대가로 밀가루를 비롯한 식량 작물을 지원했음에도 장마당 ‘쌀 값 고공 행진’을 막지는 못했는데, 이는 러시아를 통한 북한의 경제난 타개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향후 쌀로 대표되는 필수 소비재와 원부자재의 안정적인 조달 문제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밀착하는 동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연일 “알곡증산투쟁”…배경엔 중국 쌀 유입↓

북한 당국이 양곡 관리법인 양정법 등을 개정해(2022년)으로 쌀 판매를 국가가 주도하도록 구조 전환을 꾀하면서 쌀 생산량과 가격 동향은 김정은의 리더십과도 직결된 문제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장마당에서 쌀값이 오른 근본적 배경은 이 같은 국가 주도 경제의 무리한 추진에 있으며. 이런 과정에서 지난해 중국으로부터 쌀 수입량마저 크게 줄어들자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의 중국 쌀 수입량은 지난해 5만t 가량이다. 전년도인 2023년(약 28만t)의 5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추산한 북한의 곡물 식량 부족분은 매년 80만t~100만t 가량이다. 이에 비춰봐도 줄어든 쌀 수입량(23만t)은 적지 않다. 2023년 북한의 쌀 생산량은 한국의 36% 수준인 177만t이었다.
중국 쌀 수입량이 크게 줄어든 건 우선 북한 당국이 2022년 2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복원을 선언한 ‘국가유일무역제도’의 영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앙 정부가 국가 무역의 모든 부문을 세밀하게 통제하는 제도다. 기존에는 기업소 등 하부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중국산 곡물을 개별 수입하곤 했는데, 이를 철저히 틀어쥐다 보니 유입량이 줄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북한군 러시아 파병 이후 본격화한 중국의 ‘북한 길들이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해관총서 따르면 지난해 북·중 교역액은 2023년 22억 9500만 달러(한화 약 2조 2022억원)에서 21억 8000만 달러(약 3조 1368억원)로 줄었다. 중국이 북한군 러시아 파병 이후 북한의 제재 우회 등 불법 행위를 묵인하지 않는 ‘합법적 압박’을 강화하면서 곡물 뿐 아니라 전체 무역량이 줄었다는 이야기다.
러시아 효과로 버티지만 장기 지속 어려워

최근 표출되는 북·중 간 관계 회복 움직임도 이와 무관치 않을 수 있다. 김정은이 시진핑 주석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먼저 움직인다면, 이는 무리한 지방건설, 러시아 지원을 위한 군수물자 생산 강행으로 나타난 환율, 물가 불안을 바로잡기 위한 측면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특히 김정은은 올해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일과 내년 초 9차 당대회 같은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알곡 증산 투쟁과 지방 공장 건설 등 경제 성과에 집착하고 있다. 김정은이 주민 생활과 직결된 식량, 각종 소비재 생산을 원활히 하기 위해 결국 중국에 다시 기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면, 북·중 간에 전격적인 해빙 이벤트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국정원은 지난달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한이)러시아-우크라이나전 종전에 대비해 리스크 헤징(위험 회피) 차원에서 중국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국의 북한 길들이기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답보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혈맹으로 거듭난 북·러 관계를 고려할 때 당분간 ‘러시아 효과’의 영향이 지속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임을출 경남대 북한학과 교수는 “공식 무역이든 밀매든 중국 시장에서 들여오는 수입량은 북한 경제에 곧바로 영향을 준다”며 “다만 현재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밀가루 등 대체 식품 수요 증가 등으로 예전만큼 쌀 값 폭등으로 인해 북한이 중국에 매달릴 요인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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