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근대시민운동의 시초, 동학농민혁명기념일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다. 올해는 반봉건 반외세에 항거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지 7회째 되는 해이다. 근대시민운동의 시초가 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사서 정부는 2004년 3월에 ‘동학농민혁명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어 2019년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을 법정기념일로 제정, 공포했다. 이로써 그동안 역사적 가치를 저평가 받았던 동학농민혁명은 바야흐로 제대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써 대한민국 시민정신의 시초인 동학농민혁명정신은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본지는 정정숙 경기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장의 연재 글을 통해 동학농민혁명과 용인에서의 활동을 발굴해 최초로 싣는다. <기자말>
[용인시민신문 정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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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봉주 장군과 동학농민군상 |
| ⓒ 용인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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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의 기둥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정읍) |
| ⓒ 용인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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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선생 존영사진 |
| ⓒ 용인시민신문 |
21세기 지구 온난화, 기후 위기 문제가 심각해지는 현대에 해월선생의 인오동포 물오동포 법설은 18세기에 이미 앞날을 예견한 것이다. 그리고 해월선생은 여성과 어린아이도 한울을 모셨으니 귀히 여기고 함부로 때리자 말라고 하였다. 여성의 인권과 어린아이의 인권을 주장한 것이다. 이 사상은 일제강점기에 여성운동, 어린이운동과 연결된다.
해월선생의 뒤를 이어 손병희(孫秉熙·1861~1922·호:의암義菴)선생이 동학의 제3대 교조가 된다. 손병희 선생은 시천주, 사인여천 사상을 이어받아 인내천(人乃天) 인 '사람이 곧 한울이다'를 널리 세상에 알리게 된다. 손병희 선생은 동학농민혁명때 북접 통령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게 되고 일제강점기에는 교육운동, 출판운동, 사회운동 등 독립운동가로 활동을 하게 되며 민족대표 33인의 지도자로 3·1운동을 기획하고 전국화 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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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용담정 수운선생 깨달음을 얻은 장소 |
| ⓒ 용인시민신문 |
조정에서는 동학도들에게 "너희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가 직업에 충실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칙령를 내려 동학도들은 칙령을 믿고 일단 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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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접주임명장 유네스코등재기록물 |
| ⓒ 용인시민신문 |
지방 관속들의 동학도들에 대한 박해와 약탈이 심해지고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전라도 고부지역에서 고부군수 조병갑의 혹독한 가렴주구가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병갑은 이평면에 있는 만석보 밑에 농민들을 강제로 일을 시키면서 새로운 보洑를 만들고 수세를 과다하게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비각을 세우는 등 노동력 착취와 수탈 등이 극에 달했다.
이에 시정을 요구하는 전창혁(全昌赫, 전봉준의 아버지)을 곤장을 쳐서 죽게 만든 사건이 터졌다. 훈장을 하고 있던 전봉준은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을 무릅쓰고 만석보의 수세감면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묵살 당하였다. 이에 극비리에 사발통문-砂鉢通文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엎어 그린 원을 중심으로 참가자의 명단을 빙 둘러가며 적은 통문. 1968년 12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송준섭(宋俊燮)의 집 마루 밑에 70여년 동안 묻혀 있던 족보 속에서 발견되었다. 전봉준(全琫準)을 비롯한 동학 간부 20여 명이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宋斗浩)의 집에 모여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이하 악리(惡吏)들을 제거하며, 이어 전주감영을 함락시키고 서울[京師]로 직향(直向)할 것을 결의한 것이다.
서명자는 전봉준, 송두호, 정종혁, 송대화, 김도삼, 송주옥, 송주성, 황홍모, 최흥열, 이봉근, 황찬오, 김응칠, 황채오, 이문형, 송국섭, 이성하, 손영호, 최경선, 임노홍, 송인호까지 총 20인-을 만들어 돌리면서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때에 도인(道人)들은 전후의 방책을 토의·결정하기 위하여 고부(古阜) 서부면(西部面) 죽산리(竹山里) 송두호(宋斗浩)의 집으로 도소(都所)를 정하고 매일 운집하여 순서를 결정하니 그 결의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목을 베어 매달 것.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군수에게 아첨하여 백성들을 괴롭힌 탐관오리들을 처단할 것.
전주 감영을 함락하고 한양으로 곧바로 진격할 것.
거사는 1894년 1월 10일로 정하고 말목장터에 집결하도록 극비리에 연락하였다. 이날 새벽에 모인 동학도 1천여명은 죽창과 곡괭이 등을 들고 고부읍을 습격하였다. 조병갑은 담장을 넘어 도망쳤고 고부관아를 점령한 동학농민혁명군들은 옥에 갇힌 백성들을 풀어주고 강제로 징수한 수세미(水稅米)를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만석보 아래 새로 만든 보를 부수어 버렸다.
동학군이 고부관아를 점령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각지의 동학접주들은 동학군들을 거느리고 고부읍으로 모여 들기 시작하였다. 3월 중순경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은 무장에 4천여 명을 집결시킨 후 호남창의소 명칭으로 창의문을 발표하고 고부읍을 습격하였다. 고부읍 점령 이후 백산에서 편제를 마련하고 전봉준을 동도대장으로 추대, 총영관에 손화중, 김개남을 총참모에 김덕명, 오시영 등 조직을 정비하고 4대 강령과 12개조 기율을 정하였다.
백산에서 대오를 정비한 동학군들은 금구와 부안을 점령하고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두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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