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6월 3일, ‘아무 곳도 아닌 곳’과 ‘지금 여기’의 갈림길

2017년 6월 8일 새벽 5시 미국 워싱턴DC 의회. 뉴욕타임스(NYT) 더그 밀스 사진기자는 216호 회의실에서 고뇌 중이었다. 이날 10시에 시작할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의 상원 정보위 청문회를 어떻게 렌즈에 담아낼 것인가. 이 청문회는 당시 1기 집권 중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타사 기자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그는 코미 바로 맞은편 명당을 차지했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카메라를 삼각대 위 높은 곳에 고정시켰다. 그렇게 그가 담은 주인공 피사체는 코미가 아닌, 코미를 에워싼 기자들부터 당국자들까지 빼곡한 인의 장막이었다. 기자들의 이글거리는 눈과 카메라 렌즈, 당국자들의 피곤한 표정,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속기사들, 관중석에서 핸드폰으로 현장을 찍는 시민들. 코미가 아닌, 코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포착한 그의 사진은 미국 안팎에서 바이럴 됐다. 워낙 화제였기에 NYT가 이례적으로 자사 기자 인터뷰 기사를 냈을 정도. 지난 5일, 퓰리처상 수상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있었던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난해 7월 트럼프 당시 후보의 피격 순간, 총알의 궤적을 찍어낸 것 역시 밀스였기에 가능했다.
![더그 밀스는 위 사진처럼 맥락을 찍는다. 제임스 코미의 사진은 뉴욕타임스에서 볼 수 있다. [EPA=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14/joongang/20250514001434749wphu.jpg)
궁금하다. 그가 2025년 5월 대한민국 대선판에 온다면 렌즈에 어떤 이미지를 담아낼까. 한국의 작금의 혼란을 어떤 프레임으로, 어떤 피사체로 잡아낼 것인가. 아마도 그는 2017년 상원 216호에서와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한 발짝 물러서서 나무가 아닌 숲을 보되, 숲의 모든 나뭇가지의 표정을 상세히 기록하는 행위 말이다. 지금, 이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우리가 할 일도 다르지 않을 터다. 파도에 휩쓸려 이성 또는 감성 또는 둘 다를 잃는 대신, 중심을 잡고 바닥을 단단히 느끼며 지금 이 순간을 똑바로 목도하는 것. 영어 단어 ‘nowhere’를 “지금 여기(now here)”로 읽을 것인가, “아무 곳도 아닌 곳(no where)”로 읽을 것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의 선택이다.
밀스 기자는 트럼프 총알 궤적을 어떻게 포착했을까. 운도 따랐지만 운에만 기댄 우연은 아니었다. 밀스는 수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83년부터 모든 대선 레이스를 취재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린 모두 움찔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이다. 2025년 봄의 우리 역시 그러하다. 스무 밤 자고 나서 우리가 할 선택이 나라를 바꾼다. 움찔하지 말고, 휘둘리지도 말고, 해야 할 올바른 일을, 묵묵히 하자.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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