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동안 창고에 있던 영화, 배두나가 살렸다
[김동근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 오는 걸까.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왔다가 가는 걸까. 그건 정말 '온다'고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일까. 우린 이 감정이 어떤 식으로 찾아오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없어져 버린 순간, 어딘가에서 사라져버린 사랑이 왜 그렇게 가버렸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 안에 들어왔다가, 어느 날 낯선 표정으로 우리를 갑자기 떠나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우리는 항상, 너무 늦게야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의학적 의미의 바이러스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바이러스처럼 겹쳐 놓는다. 한 사람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진짜였을까? 진짜였다면, 그게 진짜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영화 <바이러스>는 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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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바이러스> 장면 |
| ⓒ ㈜바이포엠스튜디오 |
번역가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녀는 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한다. 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중, 동생이 주선한 소개팅 자리에 나간 그녀의 얼굴은 처음부터 짜증으로 가득하다. 소개팅에 늦었지만 사과조차 없는 남자, 수필(손석구)에게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이내 일 때문에 먼저 자리를 뜨고, 자신의 우산까지 가져가버린 별종을 바라보며 더 큰 우울감에 빠진다. 원래 우울함을 가지고 있던 택선은 수필을 만나 우울이 증폭되어 버린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택선에게는 사랑 따윈 없을 것만 같았다. 영화는 행복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수필이 자신이 만든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택선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설정을 따른다. 이후 수필은 택선을 사랑하게 되고, 그 감정은 어느새 그녀에게도 전염된다. 그렇게 택선은 강제적으로 '행복'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택선이 느낀 건 정말 바이러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택선의 마음 속에 원래 자리하고 있던 몽글몽글한 감정이 튀어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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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바이러스> 장면 |
| ⓒ ㈜바이포엠스튜디오 |
택선이 경험했던 모든 감정이야말로, 그게 진짜 사랑이었다는 증거 아닐까.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이균 박사(김윤석)와 가까워지며 그녀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균은 그것이 감염 때문이라고 단정하며 택선을 밀어내지만, 서로를 향한 호감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영화가 재난 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후반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이러스보다 두 사람의 감정 변화다. 이 사랑이 진짜인지, 아니면 병적인 착각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응원하게 된다.
그건 진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감염된 신경전달물질의 결과였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밝은 모습으로 웃던 택선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온전히 긍정의 세계에 몸을 맡기던 택선. 아마도 그게 진짜 택선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울했던 택선이나, 공허했던 택선보다 더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에게 다가가려 했던 그 모습이 가장 택선답게 느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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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바이러스> 장면 |
| ⓒ ㈜바이포엠스튜디오 |
그곳에서 이균 박사를 다시 만난 택선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이균 박사는 조용히 되묻는다. "정말 감정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요?" 택선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살짝 달라진다. 조금 밝아진 그 표정. 아마도 택선은 자신이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떠올렸던 게 아닐까.
6년 동안 창고에 있던 영화, 빛을 보다
<바이러스>는 장르적으로 정의하기 애매한 영화다. 예고편을 보고 기대했던 감정적 파국은 초반 10분에서 정점을 찍고, 이후에는 한없이 조용하고 모호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로맨스도 아니고, 재난영화도 아니며 스릴러도 아니다. 어쩌면 6년간 창고에 잠들어 있었던 이유가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배두나만큼은 이 역할을 정확히 이해한 듯하다. 사랑에 빠진 얼굴이 너무도 사랑스럽다가도, 금세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눈빛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끝까지 버티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김윤석은 묵직하게 감정을 던지는 역할을 맡았고, 장기하는 첫 연기에도 생각보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손석구는 짧은 출연이지만 분명한 인상을 남긴다.
강이관 감독은 차갑고 낯선 정서를 아주 천천히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쉽게도 그 정서를 끝까지 관객에게 전이시키지 못한다. 감정은 있고, 질문도 있지만, 답이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미지근함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깊은 여운이 될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묻는다. 사랑이란 감정은 단지 호르몬의 장난일 뿐일까? 영화가 던지는 사랑에 대한 질문이 궁금하다면, 지금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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