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의 위험성과 자아 해체

주용수 2025. 5. 13. 15:1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왜 세뇌하고, 세뇌 당하는가

[주용수 기자]

세뇌(洗腦, brainwashing). 우리는 과연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말을 되뇌는 것인가. 세뇌는 정보 조작이나 강압적 설득을 넘어선 '뇌를 씻어내는 행위'이다. 인간의 자율성과 태도 자체를 파괴하는 문화적·정치적·심리적 사건이기도 하다. 그것은 개인의 사고를 봉인하고, 타인의 설계도를 자기 운명이라 믿게 만드는 사유의 감염이다.

"인간은 동굴 속에서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實在)라고 믿는다." -플라톤-

세뇌는 오늘날 고문과 억압을 동반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오히려 자발적 동조와 감정의 위로라는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것은 외형적으로 자발성을 띠지만, 감염에서 배양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정 종교 집단에서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이 그 대표적인 예다. 공포와 희망, 죄책감과 자긍심 같은 감정이 교차하면서, 비판적 사고는 서서히 마비되어 간다. 진실은 은폐되고, 가공된 '믿고 싶은 사실'은 마치 진리처럼 그 자리를 차지한다.

세뇌는 윤리를 무너뜨리고, 개인의 주체적인 '판단 능력'을 무력화한다. 아울러 비판적 사고를 '불경(不敬)'으로 전환하며, 질문을 '소란'으로 규정한다. 조종당하는 개인은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외부 각본이 준 선택지만을 붙잡게 된다. 끝내, 외부가 기획한 '진리'에 스스로 진입한다는 점에서, 세뇌는 반(反)지성적이다.
 brain
ⓒ Mohamed Hassan (pb.)
세뇌의 세 단계

첫 단계, 자아 해체다. 곧 자기 정체성의 파괴다. 기존 신념을 부정하게 하는 심리적 붕괴를 유도한다. 고립, 수면 부족, 언어 통제, 고압적 면담 등으로 자기 판단의 기준이 흔들린다. 인간은 이 과정에서 자기 기억과 해석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중간 단계, 공허감 주입이다. 모든 가치 판단이 멈춘 '텅 빈 상태' 안에, 새로운 기준과 서사를 반복적으로 주입한다. 공포, 죄책감, 희망의 감정을 교차시키며 복종을 유도한다. 이 시점의 인간은 외부의 '명령'을 내면의 '소리'로 오인하게 된다.

끝 단계, 새로운 자아를 세운다. 여기에서 신념이 재구축 된다. 세뇌를 당한 자는 외부에서 주입한 사고 체계를 자기의 것으로 인식하고 수용한다. 스스로 생각한다고 믿지만, 그 사고의 뿌리는 타인의 설계도 안에 들어 있다.

정치적 세뇌의 어두운 그림자

북한의 주체사상. 세뇌는 주로 전체주의 체제에서 사용되었다. 우상화 체계는 세뇌의 대표적 예다. 유년기부터 주입된 선전 교육, 외부 정보 차단, 감정 중심의 체제 찬양은 자발적 충성심이라는 환상을 조성한다. 정치적 불복종은, 곧 자아의 배신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체제를 위해 죽는 것이 진리라는 착시가 일어나게 조종하는 것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마오쩌둥은 사상 개조로, 기존 도덕, 가족, 지식인을 구시대의 잔재로 규정했다. 홍위병을 통해 사회 전체를 세뇌의 마당으로 전환했다. 출판, 예술, 언로(言路)를 통제했고, 인민은 개인이 아니라, 그저 혁명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홍위병을 내세워 지식인을 비판하고 살상했던 마오주의는 광신과 선동이 결합한 새로운 세뇌 방식이었다.

독일 나치의 혐오. 괴벨스의 선전부는 유대인을 기생충으로 정의하고, 사회 붕괴의 원인 제공자로 몰아갔다. 그들은 인간의 정서를 통제하는 기제를 만들어 냈다. 청소년들이 학습한 반유대주의는 수백만 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기반이 되었다.
 mind
ⓒ Mohamed Hassan (pb.)
자율성의 종말과 문명의 붕괴

세뇌의 끔찍함은, 인간의 책임 능력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세뇌된 자는 죄의식을 갖지 않으며, 자기 행위를 '정당한 명령 수행'으로 받아들인다. 이기적인 애국 의식에 함몰되는 것도 이런 기제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광기를 발현하는 모티브다. 이 광기는 도덕적 자기 정체성을 잃고, 집단 폭력, 학살, 인종 청소와 같은 파괴를 거리낌 없이 자행하도록 작동한다.

"악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아이히만은 세뇌된 체제의 관리자로서, 도덕적인 결정을 스스로 포기했다." -한나 아렌트-

인간은 왜 세뇌하고, 세뇌당하는가. 이것은 공포와 소속 욕구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불안을 피하려 하고, 집단에 소속하려 든다. 세뇌는 이 두 욕망을 자극한다. 고통스러운 '진실'과 위안을 주는 '거짓' 사이에서, 세뇌는 도피를 위한 수단이 된다.

타인을 세뇌하는 이유는 권력과 통제 욕망이다. 타인의 사유를 통제하는 것은 권력욕의 가장 내밀한 속성이다. 세뇌는 권력을 최적화하기 위한 기술적 도구다. 권력은 타인의 정신을 지배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세뇌는 이 욕망을 제도화한 잔인한 수단이다.

세뇌 당하지 않을 용기

세뇌된 사회에는 질문이 사라진다.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주의가 위험한 이유다. 비판할 수 없는 사회는 무모한 자율성이 부양된다. 즉, 자기 검열과 자발적 순응으로 자기 세뇌를 재현한다. 질문하지 않음은 곧 자유의 포기다. 이것은 폭력보다도 더 위험한 상태다. 비판적 사고, 자율성, 타자에 대한 책임감, 진실을 마주할 용기만이 세뇌의 위험성에 대항할 수 있다. 우리가 세뇌를 거부한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질문을 시작하는 용기를 의미한다.

"계몽이란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

에메랄드 바다 말벌은 바퀴벌레의 흉부 신경절을 침으로 쏘아, 다리를 뻣뻣하게 만든 후, 뇌를 한 번 더 찔러 도망할 본능을 없애버린다. 개를 데리고 가듯이 굴속으로 유도한 후, 말벌알이 부화하는 숙주와 먹잇감으로 삼는다.

그 간교함과 사악함을 보면, 자연계의 세뇌 기술자가 결코 인간보다 기술이 부족하지 않다. 인간 사회의 정치적 세뇌와 비견할 만큼 목적 지향적이다. 곤충이든 정치꾼이든 사용 기술과 화학 물질만 다를 뿐, 그 잔인한 본질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psychology
ⓒ Gerd Altmann (pb.)
근거가 부족한 비난

이재명이 겪은 고난은 과연, 그가 저지른 죄에 상응하는 것일까. 그를 비난하는 이들은 객관적 증거로 범죄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까. 이념 성향으로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이 문제의 본질은 평가자의 정치적 처지에 있지 않다. 일반적 상식만으로도, 기소의 논리가 사실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피의 사실과 증거는 객관성을 전제로 해야 하며, 그것이 없는 비난은 누구에게든 옳지 않다.

김문수가 노동운동가로서 군부 정권에게 당했던 핍박은 합당한 처벌이었을까. 이재명과 김문수는 출발점은 달랐으나, 두 사람 모두 험난한 여정을 지나 결승선에 올랐다. 진보든 보수든, 어느 정치인에게도 사실 왜곡의 피해를 주는 것은 부당하다. 세뇌된 시선으로 그들을 증오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인간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국민의 선택은 좌우를 오갔다. 유권자는 두 후보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거는 구성원의 의사를 바탕으로 사회의 균형에 가르마를 긋는 일이다. 세뇌를 거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악의 세력은 평범한 유권자를 기만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조종당한다는 것은 인간의 자존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일이며, 공동체의 지적 수준과도 직결된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신념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고유한 사회적 행위다. 그 신념이 좌든 우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조작, 세뇌 따위를 이겨내는 일이다. 냉철한 사고를 멈추는 순간, 에메랄드 바다 말벌이 우리의 뇌에 독침을 꽂을지도 모른다. 깨어있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찾기 위해, 주체적 이성으로 질문하는 일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