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국힘의 노동시간 둘러싼 경쟁... 우려스럽다
[전주희]
광장의 시민과 고공 노동자
2025년 윤석열 탄핵으로 일단락된 촛불집회의 특징은 무엇보다 '개별' 시민들과 '집단적 주체'인 노동자, 농민들이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다. 노동자와 농민, 젠더와 성정체성이 교차하고, 계급, 학력, 지역, 장애, 연령, 민족과 인종을 이유로 주변화된 소수자들, "기층 민중, 인민(people)이라 할 만한 이들"이 광장을 채웠다[1].
그런데 광장에서 노동자와 다양한 시민들이 서로를 각성시키고 더 강하게 연결되는 동안, 탄핵전 고공농성을 이어가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소현숙 노동자들은 여전히 광장으로 내려오지 못했고, 급기야 장기투쟁 사업장인 세종호텔 노동자와 한화오션(구 대우조선) 사내하청 노동자가 탄핵 정국 한가운데 고공농성을 택했다.
이들은 광장정치가 한창인 와중에도 왜 내려오지 못했을까? 왜 이 노동자들은 광장 민주주의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운동을 수평적으로 연결시키기보다 고공농성이라는 '결단'을 선택한 것일까?
광장 민주주의가 작업장 문턱을 넘지 못할 거라는 불안한 예감이 그들을 수직운동으로 강제했을 것이고, 탄핵이 되더라도 노동자의 생존권은 여전히 위협받을 거라는, 신자유주의 이래 변치 않는 '철칙'이 그들의 수직운동을 압박했을 것이고, 12.3 내란에도 눈 하나 꿈쩍 않으며 '경제위기의 심각성으로 규제완화'를 요구한 경총의 메시지를 민주당이 받아 '반도체 특별법'을 통과시키려고 한 순간, 탄핵 이후 바뀐 정권 하에서도 노동자의 삶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서늘한 경고가 그들을 또 한번 올려 보냈을 것이다.
모두가 예상하는 '이재명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것을 이처럼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미지가 있을까. 이들의 고공농성은 적어도 민주당식 신자유주의가 갖는 한계를 집권에 앞서 미리 보여주는 것 같다.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허물벗기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신자유주의를 두 갈래로 정의한다. 하나는 트럼프 식의 '반동적 신자유주의'. 이들은 인종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이며, 국가주의를 내세우며, 억압적인 정책을 구사한다. 반면 빌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신자유주의'는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다문화주의, 환경주의 등의 자유주의 담론을 포섭하며, 시민사회의 진보세력들과 결합해 신자유주의를 평등주
의적이고 진보적인 담론으로 치장했다[2].
한국의 경우, 진보적 신자유주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로 이어졌다. 이재명식 민주당이 탄핵 정국 한가운데, 노동시간 규제완화를 포함한 '반도체 특별법'과 '성장과 통합'을 강조하며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것은 이러한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가 약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탄핵 국면에서 그들은 더 이상 진보적 담론과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계엄'과 '민주주의 수호'의 광장 정치에 대해 민주당은 더욱 보수적인 집권전략으로 응수했다.
민주당 세력은 '진보적'이라는 반쯤은 벗겨진 허물을 벗고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을 하고 탄핵정국을 통과했다. 광장 민주주의는 작업장 문턱을 넘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의회 정치 앞에, 국회의사당이 쳐놓은 투명장벽 앞에서 멈춘 듯하다.
국민의힘의 '주4.5일 노동시간제' 공약은 왜 지금, 나오게 되었나? 민주당의 '반도체 특별법'이 없다면 국민의힘의 '주4.5일제' 공약도 없다. 민주당은 반도체 산업의 노동시간 규제 허용으로 예외적 장시간노동 문제를 건드렸다면, 국민의힘의 4.5일제는 노동시간 유연화와 맞바꾼 주 노동일 단축이라는 점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왜곡한다[3].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내란-탄핵 이후 이 지점에선 더욱 견고한 한몸이 되었다.
노동시간 유연화 공세와 법정노동시간의 해체
대선시기 노동시간 공약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모아진다. 물론 경제계는 '경제위기'를 들먹이며 이를 반대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시기상조론'은 노동시간 단축의 범위 시기 등을 '조정'하며, 시간단축의 효과를 분할하고 파편화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 불평등이 심화된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장시간 노동과 초단시간 노동이 공존하는 노동시간의 극단화, 장시간 노동이 유지되는 한에서 노동시간 유연화가 강화되는 사회가 되었다. 중요한 점은 시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곧 '법정노동시간'이라는 제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단순히 '노동시간 양극화'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유연근무제는 2009년부터 도입되었으나, 코로나19를 계기로 장소와 시간 모두의 측면에서 유연근무제가 대폭 확대되었다. 이는 법정 노동시간의 규제를 더욱 빠른 속도로 허문다. 노동시간과 노동 장소의 유연화는 노동자의 성과를 측정할 도구를 표준화하고, 디지털 감시와 성과측정기술을 보다 정교하게 구축하며, 이를 범용화한다. 이와 함께 호봉제 중심의 임금이 성과급 중심의 임금으
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다.
'노동의 유연화'가 가져오는 이 모든 변화는 불안정 노동과 더불어 불규칙 노동시간을 증가시킨다. 우리는 어떤 노동시간제 아래서 노동하든지 '공통감각'을 상실해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자유'의 증대, '선택'의 증대라는 담론과 결합해, 진보적인 외양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 잡코리아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MZ세대 구직자의 82.3%가 유연근무제를 제공하는 기업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연봉 인상보다 유연근무제 도입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63.7%에 달했다는 점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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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16 작업중지권 실질 보장, 노동자 참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방안 토론회에서 발표하는 전주희 노동시간센터장 |
| ⓒ 노동과세계, 송승현 |
[1] 권창규, '무지개 색깔 동지들의 기억투쟁', 문화과학 121호. 참조.
[2] 낸시 프레이저,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책세상.
[3] 김종진·박관성, '한국의 장시간노동 실태와 노동시간 단축 모색', 2025.
[4] https://www.mobiinside.co.kr/2025/01/03/flextime/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을 쓴 전주희 님은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노동시간센터 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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