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장비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SK하이닉스 신규 발주에 쏠린 눈

고대역폭메모리(HBM)용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한화세미텍의 3자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업계는 이달 내 이뤄질 SK하이닉스의 신규 장비 발주에 주목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선택에 따라 한미-한화 갈등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1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르면 이달 중 TC본더(열압착 장비) 신규 물량 발주를 검토하고 있다. TC본더는 HBM 생산에 필수적인 장비로, 고온과 압력을 활용해 웨이퍼 기판에 D램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역할을 한다. 올해 HBM 생산가능 물량을 이미 완판한 SK하이닉스가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려면 TC본더를 추가로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점유율 70% 한미, 도전하는 한화

SK하이닉스는 그동안 제2의 TC본더 장비 공급사를 물색해왔다. 제조업에서 필수 장비를 ‘솔 벤더(독점 공급)’로 조달하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화세미텍 외에도 싱가포르 업체 ASMPT의 장비에 대해 품질 테스트를 진행했고 지난 3월 한화 장비 12대, 420억원어치를 납품받기로 결정했다. 계약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화세미텍의 모기업 한화비전의 주가는 23%가량 상승(12일 기준)하기도 했다.
한미반도체는 즉각 반발했다. SK하이닉스의 HBM 생산 라인에 상주하던 인력 50~60명을 철수시키는 강수를 뒀다. TC본더 가격을 약 25% 인상하라고 요구하고, 무료로 제공하던 장비 유지·보수도 유로 전환을 통보했다. SK하이닉스가 자신들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경쟁상대인 한화세미텍을 새 공급사로 채택한 데 대한 불만을 표시한 셈이다.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으로 이직한 전 직원에게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승소했으며, 지난 12월에는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HBM 따라 커지는 장비시장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조만간 한미반도체에 발주하는 물량과 가격에 따라 갈등의 지속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랜기간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두 업체가 관계를 끊는건 양사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구조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미반도체는 최근 글로벌 진출에 힘쏟고 있는 고객사 다각화 전략을 가속화 할 것으로 보인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증권은 “SK하이닉스 중심이던 한미반도체 TC본더 매출이 올해부터 마이크론 30% 이상, 중국 반도체 업체 5%, 여기에 미국 내 후공정(OSAT)업체까지 추가돼 다각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갈등이 지속하면 한화세미텍의 공급사 역할은 더 커질 수도 있다. 한화세미텍은 TC본더 개발을 시작한 지 5년만에 SK하이닉스 납품에 성공하면서 엔비디아 공급 체인에 합류한 상태다. 여기에 더해 한화세미텍은 SK하이닉스 제조 사용 편의성을 높이는 장비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엔 차세대 반도체 장비 개발 전담 조직도 신설했다.
SK하이닉스는 “아직 협의하는 중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이 시장은 반도체 업계의 '슈퍼을'인 ASML의 장비(극자외선 노광장비)만큼 진입장벽이 크게 높진 않다. 갈수록 장비사 간 경쟁은 격화 될 것”이라며 “현재 세계 1위인 한국의 HBM 경쟁력을 해외에 뺏기지 않는 방향으로 기업 간 경쟁과 협력관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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