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먹으면 어떡해요" 어른이 버린 쓰레기 주운 아이들
[이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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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리서 보면 깨끗하기만 한 해변. 곳곳에 숨은 쓰레기가 있었다. |
| ⓒ 이준수 |
우리는 단순한 봉사 활동 중이었다. 따로 마음을 낸 '기획 봉사 활동'이 아니라 학교 봉사활동. 한 학기에 두 시간씩 나가기로 되어있는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마침 그날이 1학기 날짜였다. 단체에서 왔으면 조끼나 유니폼이라도 입었을 텐데 담임인 나를 비롯해 아이들 복장은 제각각이었다. 외투를 허리에 감기도 하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기도 했다.
봉사 활동에 참가한 사람은 담임교사까지 여섯. 시내에 위치한 학교였다면 상상하기 힘든 일행 규모다. 학교는 하조대 해변까지 400m 남짓한 거리라 우리는 걸었다. 자동차 사고가 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골목길을 따라서.
연필 대신 집게를 든 날
학교 후문을 벗어나자마자 아이들은 좀 들떴다. 연필 대신 집게를 들었을 뿐이데 마법처럼 기분이 두 단계는 좋아 보였다. 만나는 동네 할머니마다 인사를 드렸고, 시멘트 담장 틈에 끼어있는 빈 담뱃갑을 뽑았다. 학교가 은근히 잠재워주고 있던 에너지가 폭발한 듯했다.
교실 밖 세상은 모두가 구경거리였다. 광정천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다리를 건너며 물고기를 보았다. 새끼손가락만 한 치어가 떼를 지어 다녔다. 물고기들이 물살을 가로지를 때마다 수면이 반짝였다. 그 옆으로 키가 큰 물풀 사이 스티로폼 상자가 박혀있었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듯했다. 햇빛에 삭아 누렇게 뜬 스티로폼이 작은 조각으로 흩어져 물에 떠내려갔다.
"선생님 내려가서 주으면 안 돼요?"
"나도 줍고 싶지만 위험해. 내려가는 길도 없고."
"물고기가 먹으면 어떡해요."
"실제로 많이들 먹고 아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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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은 작은 쓰레기도 지나치지 않았다. |
| ⓒ 이준수 |
해변은 대체로 깔끔했다. 하조대를 찾는 인구를 고려하면 지저분할 법도 한데 양양군에서 제법 꼼꼼히 관리를 하는 듯했다. 그래도 완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모래 속에 숨은 낚시 도구와 폭죽 껍질, 플라스틱 컵을 주웠다. 모래사장은 넓고 할 일은 많았다.
기세 좋게 집게질을 하던 어린이 봉사단은 점점 힘이 부치는 듯 헉헉댔다. 그늘 없이 햇볕에 노출되니 체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먼 모래밭까지 나가보려 했는데 계획을 접었다. 멀리 나가면 먼 길을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인근 하조전망대로 발을 돌렸다. 해안 데크 길이 깔려있어 외지인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카페와 횟집이 늘어선 길답게 도로에는 꽁초가 많았다. 음료수 캔과 카페 테이크 아웃 플라스틱 컵도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자주 멈추어 쓰레기를 주웠다. 학교도 교실 한 복판이 아니라 구석에 쓰레기가 많다. 구석에 무언가를 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의 심리는 뭘까. 쓰레기통이 뻔히 있어도 거기까지 가기 귀찮아서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언젠가는 치우겠지 하는 무책임함 일까. 어느 심리든 양심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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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가 흩어져 있는 땅에서도 틈만 있으면 새 꽃과 잎이 돋아났다. |
| ⓒ 이준수 |
니코틴 쩐내가 손에 배어버릴 것만 같은 찝찝함을 않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다들 지쳐 발바닥이 질질 끌렸다. 그때였다.
"얘들아, 들어와서 음료수 하나씩 받아 가."
방파제 길 옆 '대게집' 사장님이었다. 조금 전에 쓰레기를 주우면서 가게 앞을 지나쳤는데 그 사이 보신 모양이었다.
"바닷가에서도 열심히 줍던데 도로까지 치워주네. 아이고 착하다."
나는 아이들 집게와 봉투를 받아 들고 가게 밖에서 기다렸다. 그 사이 아이들은 냉장고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 음료를 골랐다. 사이다와 콜라, 두유(아무래도 판매용은 아닌 것 같은)를 고른 아이도 있었다.
"초코파이도 가져가. "
아이들은 얼떨결에 양손에 음료수와 과자를 들게 되었다. 기쁘게 당황한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요새 이 동네에 애들이 많이 없죠?"
"그래도 농어촌 유학생이 늘어서 전교생이 서른일곱은 됩니다."
"그렇게나 많나요? 그래, 바다가 좋긴 좋죠. 머리도 식히고."
한때는 시골 초등학교의 학생이었을 분들이었다. 그분들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아담한 교정이 제법 북적였을 테다. 11명이서 축구팀을 꾸리고, 피구도 라인 꽉꽉 채워 긴장감 있게 공수가 이루어지는 그런 학교. 농구 경기조차 정식 룰에 따라 팀을 짜기 어려운 요즘과는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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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사활동을 달콤한 간식파티로 만들어 준 응원 음료수와 초코파이 |
| ⓒ 이준수 |
음료수를 홀짝이며 걷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는지 E가 물었다.
"선생님, 아까 아주머니는 우리한테 왜 먹을 걸 주셨을까요?"
"말씀하셨잖아. 좋은 일 한다고."
"봉사활동이 그 정도로 대단한 건가?"
E는 집게를 쳐다보았다. 엄청난 수의 꽁초를 집어 올린 집게였다. 이제는 세상에 얼마 태어나지도 않는 어린이가 어른이 버린 쓰레기를 줍는 광경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생면부지인 아이들에게 음료수와 간식을 건넬 때에는 분명 어떤 종류의 동기가 작용했을 것이다.
"저번 청소 시간에 C가 너 책상과 의자 주변까지 쓸어줄 때 기분이 어땠어?"
"진짜 고마웠어요. 안아주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이 친절하거나, 따뜻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사람은 행복해지나 봐."
희망이라는 단어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면, 어린 세대가 좋은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는 세월 따라 나이를 먹지만 어린이가 어른이 버린 쓰레기를 열심히 줍고 있으면 어딘가 대견하고 미안하고, 기쁜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한 시간 이십 분 짜리 짧은 봉사활동을 하고도 칭찬을 듣고 선물을 받았다. 작은 움직임도 눈에 잘 띄는 시골이라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2학기 봉사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특정 날짜를 기다릴 것 없이 그냥 평상시에 쓰레기 안 버리면 되는 건데 뭔가 속셈이 있어 보인다.
사이다와 초코파이를 다시 노리는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떤가. 덕분에 마음 훈훈해지는 만남도 생기고, 환경미화를 하겠다는 열의도 생겼다. 이래저래 봉사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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