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AI보다 과학자·의사의 명예회복이 더 절박하다

2025. 5. 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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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과학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후보가 늘어나고 있다. 이념적 팬덤과 무분별한 포퓰리즘에 힘없이 밀려난 과학기술의 입장에서는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대선 후보의 관심이 온통 인공지능(AI)에 집중되고 있다. AI에 올인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일 수는 없다. 중국의 딥시크가 2년 전 챗GPT 개발에 성공한 미국의 독주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남겨진 착각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미국·중국에 이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이 대선 후보들의 공통된 꿈이다. 윤석열 정부가 관심을 보였던 반도체·바이오·우주를 비롯한 소위 '초격차 기술'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심지어 아무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초격차 과학기술'을 들먹이는 후보도 있다. 삼성전자의 경영전략에 처음 등장한 K신조어인 '초격차'(super-gap)와 '3대 강국'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이라는 사실은 애써 무시한다.

100조원도 부족하다고 200조원의 투자를 약속하기도 하고, 지방거점국립대에 최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AI대학원 설치를 들먹인다. 심지어 정체불명의 'AI 기반 사회'와 '초격차 과학기술'을 내세우고, '한국형 챗GPT'와 'K엔비디아'를 강조한다.

화려한 말의 성찬(盛饌)에서 후보의 진심이 담긴 미래 비전은 실종 상태다. 실제로 엄청난 투자를 어떻게 마련하고,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당장 필요한 개발 인력 확보를 위해 52시간 근무제를 완화해달라는 반도체 산업계의 절박한 요구도 애써 외면한다.

민주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뛰듯 출렁이던 과학기술 공약에 지쳐버린 연구개발 현장의 과학자에 대한 진정한 관심도 찾아볼 수 없다. 공허한 환상만 추구하는 과학기술 공약을 마냥 반길 수 없는 것이 과학자의 난처한 입장이다. 허황한 과학기술 공약(空約)이 '독약'(毒藥)으로 변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중심사회'가 그랬고, '녹색경제·창조경제·탈원전'과 '사람을 위한 과학'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에 남는 과학기술 대통령'을 꿈꿨던 윤석열 정부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과학자는 '약탈적 카르텔(떼도둑)'로 전락했고, 의사·의대생은 구제불능의 '악마'로 추락했다. 연구개발 현장은 쑥대밭이 돼버렸고, 뒤늦게 확대한 글로벌 국제협력 사업도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으로 길을 잃어버렸다. 의학 교육은 멈춰 섰고, 의료 현장은 난장판이 돼버렸다. 세계 최고의 K의료가 한순간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버렸다. 과기계의 인사도 망사(亡事)가 돼버렸다.

이제 과학기술 공약도 낡은 추격형에서 확실하게 벗어나 21세기의 과학기술 사회가 요구하는 선진·창조형으로 변신해야 한다. 과학기술을 단순히 경제발전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좁은 인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과학기술이 사회·환경을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는 반(反)과학기술 정서도 말끔하게 청산해야 한다.

부나방처럼 대선판만 기웃거리는 함량 미달 선무당급 '폴리페서'들을 확실하게 거부해야 한다. 명문대의 이름을 팔아 사회적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교수회'의 횡포도 용납할 수 없다. 과학계가 빼앗겨버린 명예도 되찾고, 흔들리는 민주주의와 국가 경제를 되살리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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