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산 '천국의 계단' 올랐더니 펼쳐진 눈부신 세상
2025년 4월 24일부터 7일간 제주 트레킹한 기록입니다. <기자말>
[안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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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과 혼란스러운 세상으로부터 잠시 일탈을 꿈꾸게 한다. 공간을 벗어남으로써 자유를 느낀다면 당신의 여행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홀로 가는 여행이 일탈의 순도를 높여줄 것이다. 더구나 가능하면 멀리 떠나는 여행은 그동안 자신이 보지 못했고, 맡지 못했고, 인식하지 못한 어느 낯선 환경에서 전환적 감성을 솟구치게 만든다.
그 순간의 감성은 쉽게 잊히기도 하지만 내면에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내 삶이 타자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할 때 그것은 적어도 위안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게다. 그런 감성의 경험은 한낱 기억의 편린에 불과할지라도 나를 지탱하게 해주는 하나의 벽돌로 남아 결국 자아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제주도 날씨 예보는 믿을 수 없지만 그날 만큼은 예보대로 탁 트인 하늘을 보여주었다. 어제 서귀포 모 호텔에 여장을 푼 나는 일행과 함께 김밥과 간단한 간식을 구입한 후 201번 버스를 탔다. 성산 고성에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버스로 이동 시간이 도합 1시간 40분은 될 것이다.
제주도 동쪽 해변가를 관할하는 201번 버스는 항상 사람들이 많다. 마실 나가는 동네 사람들도 있고, 먼 나라에서 여행 온 사람들도 그들 사이에서 제주의 공간을 즐기고 있다. 오히려 나의 경우처럼 트레킹 여행을 하는 육지 사람은 많지 않다.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타는 버스는 제주시에서 출발해 애월과 성산으로 가는 200번대 버스이다. 잘못 타면 서서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작년 봄 무심코 제주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성산 가는 버스를 탔다가 한 시간 이상 서서 간 적이 있었고, 애월에서는 제주시로 갈 때 외국인으로 만원을 이룬 버스를 타고 역시 한 시간 이상 부대낀 적도 있었다.
처음엔 그랬지만 제주살이가 좀 길어졌을 때는 요령이 생겨 앉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숙소를 서귀포로 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적한 시내버스를 타고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는 따위의 여유로운 버스여행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 또한 여행의 일부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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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5일 좌보미오름 들머리 |
| ⓒ 안호용 |
좌보미는 전형적인 복합오름이다. 가장 높은 좌보미(344m)와 두 번째로 높은 좌보미알(310m)과 그리고 조금 더 낮은 새끼 오름 두 개가 편자형을 이루며 비정형적인 형태로 구성하고 있다. 오름치고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4개의 오름을 함께 보유하고 있는 오름은 내가 알고 있기론 좌보미 외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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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5일 좌보미에서 본 제주 들녘 |
| ⓒ 안호용 |
제주 오름은 죽은 자의 안식처였다, 오름 부근에는 항상 이런 묘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불특정 하게 공동묘지가 형성된 곳도 있고 단독 묘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오름 굼부리 안에 묘를 쓰기도 한다. 이 중에는 아마도 4.3 때 영혼을 달리 한 망자도 있을 것이다. 처음엔 이런 풍경을 보고 좀 괴이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삶의 역사를 알고부터는 오히려 친근감이 들었다. 산 자와 죽은 자와 그리고 그들이 삶의 체취가 배어있는 오름은 제주 자체인지 모른다.
아무튼, 묘지를 가로질러 오름 능선 숲을 10여 분 오르면 금방 첫 번째 310봉우리가 나타난다. 억새밭으로 형성된 봉우리의 조망은 사방으로 탁 트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육지의 산처럼 아기자기한 풍광을 선사한다. 바로 앞에 주봉인 좌보미가 보이고 그 능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좌보미알이 멀리 보인다. 나는 일행과 함께 사진을 연신 찍어댄 후 그곳을 향해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일행 중 한 명은 나중에 자신이 가본 오름 중에서 좌보미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네 개의 능선을 타고 넘어가는 트레킹에서 특별한 묘미를 느꼈는지 모른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좌보미는 다른 오름에서 볼 수 없는 오밀조밀한 산세를 가지고 있고, 그런 풍경에서 돈오 같은 찰나의 특별한 경험했을 것이다. 나도 그의 투박한 표현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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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5일 제주 들녘길 |
| ⓒ 안호용 |
상대적으로 제주 서쪽은 농경지가 발달되어 있고 그 사이에 많은 촌락도 형성되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동쪽에는 이런 방치된 나대지가 많다. 잣담이나 밭담이 길가 없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런 땅은 대개가 부동산업자나 부동산 투기자들이 미래의 개발을 기대하며 구입한 경우가 많다. 아직도 제주에 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렇게 개발을 기다리는 땅도 생각 외로 많다. 이런 다소 삭막한 들녘 길이 4km 넘게 이어진다.
가다보면 그 들녘 중간중간에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는 게 눈이 띈다. 바로 고사리를 캐러 나온 사람들의 자동차다. 4월 중순이 지나면 고사리 따느라 너도나도 들녘과 오름 주위로 자루를 들고 몰려 나온다. 어디 가나 고사리가 지천이다. 제주 고사리는 육지 고사리와는 달리 줄기가 굵고 식감이 풍성하다고 한다. 이렇게 지천에 깔린 고사리를 캐서 나물로 먹기도 하지만 특이하게도 육개장을 만들기도 한다. 고사리를 가늘게 찢어서 돼지고기 육수와 메밀을 첨가해 오랫동안 삶은 육개장은 제주 특유의 맛을 자랑한다. 이런 제대로 된 토속 고사리 육개장은 음식점에서도 쉽게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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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5일 영주산 초입 숲길 |
| ⓒ 안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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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5일 영주산으로 오르는 계단 |
| ⓒ 안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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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5일 영주산 능선 |
| ⓒ 안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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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5일 영주산 능선에서 본 한라산 |
| ⓒ 안호용 |
사실 영주산에 대해 미사여구를 써댔지만 이번 트레일의 주인공은 바로 투박한 들녘 길이다. 산업적으로나 여행지로서는 거의 죽어 있는 길이지만 나는 그 길에 발자국을 냄으로서 소생시켰다. 방치된 그 길을 걸으면서 나는 새로운 여행의 목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여행이지 하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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