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저장'이 가능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김대경]

흥미로운 점은 식량과 물은 오랜 시간 동안 저장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입니다. 저장이 가능해지면서 공급 체인의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이를 통해 수요와 공급의 변동성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는 여전히 저장 기술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이로 인해 에너지 시스템의 효율성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장이 가져온 식량과 물의 혁신
식량의 경우 저장 기술이 발전하면서 계절적 수확의 영향을 줄이고 공급 안정성을 높였습니다. 냉장 및 냉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신선 식품의 유통이 기능해졌고, 곡물 저장고의 대형화는 곡물 가격 변동성을 줄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가공식품과 장기 보관이 가능한 식품의 확대는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고, 세계 각지에서 균형 있는 식량 공급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물 저장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대형 저수지는 가뭄 시기에 물 부족을 방지하고 농업 및 공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정수 시설의 발전과 해수 담수화 기술을 통해 지속적인 식수 공급이 기능해졌으며, 이는 대도시 인구 증가와 기후 변화에도 안정적인 물 공급 체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장 기술 덕분에 인간 사회는 물과 식량의 계절적, 환경적 변동성을 극복하고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에너지, 왜 저장이 필요한가?
반면 에너지는 아직까지 저장의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전력 시스템은 공급과 소비가 실시간으로 일치해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공급과 수요의 미세한 차이에도 시스템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는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석탄, 원자력, 천연가스 같은 기저부하 발전원이 공급 안정성을 담당해 왔지만,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함께 공급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 에너지 저장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다면,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의 잉여 전력을 대규모 저장 후 필요할 때 방출할 수 있다면, 재생에너지의 활용도는 극대화될 것입니다. 또한 산업용 및 가정용 전력 소비 패턴의 최적화, 전기차와 연계한 분산형 저장 시스템 구축 등도 가능해집니다.
도전 과제
에너지는 대규모로 저장하는 데 있어 기술적, 경제적 어려움이 따릅니다. 전통적인 화석연료는 그 자체로 일종의 저장된 에너지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저장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후 변화와 환경 보호를 위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에너지를 저장하는 문제는 가장 큰 도전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도전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가 원하는 에너지전환은 결코 완성될 수 없습니다.
1. 기술적 도전 : 에너지 저장 기술은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개발 단계에 있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현재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배터리의 방전 시간과 수명, 그리고 자원 채굴로 인한 환경적 영향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배터리 기술, 예를 들어 고체 상태 배터리, 플로우 배터리 등은 잠재력이 있지만,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수소 에너지 저장과 같은 혁신적인 기술들이 개발 중이나, 이들 역시 안정성과 효율성 면에서 더 많은 연구와 발전이 필요합니다.
2. 자금 조달의 어려움 : 에너지 저장 인프라 구축은 대규모의 자본을 필요로 합니다.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서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가 필요하지만, 아직 많은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수익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저장은 초기 투자 비용이 높고, 투자 회수 기간이 길기 때문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벤처 캐피탈이나 사모펀드 등에서의 투자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적 인센티브가 필수적입니다.
3. 제한적인 비즈니스 모델 : 에너지 저장을 활용한 수익 모델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에너지 저장의 직접적인 수익 창출 모델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주로 전력망 안정화, 피크 시간대의 에너지 공급, 그리고 재생에너지와의 통합 등의 모델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시장의 성장을 이끌기 어렵습니다. 에너지 서비스 제공, 스마트그리드 연계, 전력 거래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돼야 합니다.
4. 레거시 규제와 정책의 한계 : 기존의 에너지 규제와 정책은 주로 전통적인 에너지 생산 및 소비 구조를 기반으로 설계됐습니다. 이러한 규제는 새로운 에너지 저장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의 도입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력 가격 규제, 송배전망 운영 규제, 에너지 저장 시설의 환경 규제 등이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확산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규제 당국은 이러한 레거시 규제를 재검토하고, 혁신적인 에너지 저장 기술을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 프레임 워크를 마련해야 합니다.
에너지 저장의 혁신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에너지 시스템은 '생산-소비'라는 단순한 구조를 넘어서, '생산-저장-소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 증대 차원을 넘어, 에너지 안정성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축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입니다. 식량과 물이 그러했듯, 에너지도 저장을 통해 비약적인 혁신을 경험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이제 우리는 '에너지를 어떻게 저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아울러 에너지 저장의 확산을 어렵게 하는 다양한 도전 과제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대경씨는 아시아개발은행 컨설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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